
'올해의작가상 2024’ 최종 수상자인 양정욱 작가는 따뜻한 일상의 이야기를 움직이는 조각에 담아내는 작업을 해왔습니다. 그는 8년간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며 편의점에서 밤샘 근무하던 시절 겪었던 경험이 자신의 작업에 바탕이 되었다고 고백했는데요, 춥고 배고픈 성냥팔이 소녀가 성냥불을 켜고 행복한 상상을 했듯, 그도 일상에서 겪었던 힘든 일을 따뜻한 이야기로 다시 상상해 써보는 습관이 생겼고,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의 작품들이 탄생했다는 겁니다.
양정욱 작가는 그의 이야기들은 아플 때 찾는 '흰죽'이고, 작품은 '책 표지'와 같은 것이라고 했는데요, 무슨 뜻일까요? 현대미술은 어렵다는 편견을 깨는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세요!
골라듣는뉴스룸 커튼콜 254회 작가 양정욱 편 풀영상은 아래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양정욱 작가 : 이런 작업을 한 거는 조금은 슬픈 사연이 있어요.
김수현 기자 : 뭔데요?
양정욱 작가 : 8년 정도 되게 힘든 시간이 있었어요. 저희 집도 너무 어려웠고. 저희 집이 8년간 편의점을 운영했었는데, 인건비가 나오지 않는 위치에 장사도 잘 안 돼요. 거기 모든 생계가 달려 있고, 집은 너무 좁아서 제가 밤에 8년간 한 번도 빠짐없이 일을 하고 잠은 냉장고 뒤에 박스 깔고 자고, 그렇게 하면서 학교를 8년 다녔어요. 휴학하면 학교를 오래 다닐 수 있으니까 강제로 계속 휴학하고, 휴학해 놓고 '야, 이거 내 자리야 건들지 마!' 하고 거기서 작업을 하고. 작업실도 그런 식으로 만들고 그렇게 했는데.
거기가 강남 어딘가였는데 장사는 많이 안 되는데 유난히 술 먹고 온 사람들이 많아요.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은 경찰이 무조건 와야 되는 그런 곳이에요. 막 엎고 가고 난리가 나는 그런 곳. 근데 밤에 상대하니까, 밤에 제일 험하거든요. 따귀도 많이 맞아보고 별의별 일들이 다 있었거든요. 그럴 때마다 생각했던 게 그 사람들의 사정을 생각해 보는 거. '왜 저렇게 힘들까?'
예시를 들기로는 성냥팔이 소녀라고 했어요. 성냥팔이 소녀가 너무 춥고 막 힘들 때 창문에서 따뜻한 상상을 하잖아요. (성냥) 하나씩 켜면서. 저도 그랬던 것 같아요. 근데 저는 운 좋게 성냥이 많아서 살아남은 거고(웃음), 안 얼어 죽고. 그런 상상을 계속하다 보니까 8년이 지나고 나서부터는 자동으로 습관이 돼서 뭔 일만 있으면 탁 뭔가 좋은 이야기로 자꾸 환원이 되는 거예요. 환원이 계속되니까 콘텐츠가 너무 많아.
김수현 기자 : 그러니까 소설 같은 그런 이야기가.

양정욱 작가 : 네. 따뜻한 이야기로 환원시키는 것들이. 그때부터 그거를 글로 쓰기 시작했죠. 쓰다 보니까 '이 글을 조금 더 매력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지?' 어휘와 의미를 넣고 수정하고 퇴고하는 과정들을 계속하면서 훈련이 됐던 것 같아요. 이야기들을 만드는 데. 그래서 잠깐만 보고 이야기 딱딱 떠오르는 게 그런 거예요. 저는 반대로 되게 예민하기 때문에 밖에서 불편한 것들을 많이 느껴요. 누구보다 빨리 느끼는 것 같아요. 불편하고 비뚤어져 있어요, 속으로는(웃음). 와이프가 그러잖아요. 나쁜 놈이라고. '넌 밖에서 그러고 다니면서 어떻게 글은 그렇게 사람 좋은 글을 쓰고 다니냐?' 그래요.
김수현 기자 : 반대라고 하신 거 제가 본 거 같아요.
양정욱 작가 : 네. 그래서 반대예요. 조금 불편하고 '저 사람은 왜 안 가? 나 바쁜데' 그런 생각도 많이 하고 불평불만이 많아요. 근데 저녁에 되돌아오고 가족들 보고 혼자 조용히 있을 때면 그 생각들이 다시 또 떠올라서 '그래, 내가 근데 그때 그거를 이렇게 생각하면 어땠을까? 이런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오, 그래 이런 이유를 사람들한테 설명하기 위한 이야기를 또 만들어보자. 나 같은 애들을 위한 그걸 또 만들어보자'해서 이야기를 계속 만들어 보는 거야. 그러다 보면 그 이야기를 설명하기 위해서 애정을 쏟게 되고 재미도 넣게 되고, 이야기로 안 끝나니까 어느 순간부터 뭔가를 만들기 시작했죠. 저는 그거를 책의 표지라고 얘기해요.
김수현 기자 : 작품이요?
양정욱 작가 : 네. 작품을 책의 표지 정도다. 이야기들이 세상에 너무 많고 사람들은 요만한 면적의 책의 표지를 (보고) 꺼내서 앞의 몇 페이지를 읽어볼 텐데 '앞의 몇 페이지를 어떻게 읽게 만들지?' 하는 수단으로 지금의 작업 형태가 된 거예요. 움직이며 소리 나며 거대하며 공명하며 반복하며 나무를 쓰며... 그게 다 책 표지의 요소들이거든요. 요새 든 생각인데 어쩌면 그런 게 불교의 어떤 부분하고 좀 비슷하다고도 생각이 들었어요.
김수현 작가 : 불교요?
양정욱 작가 : 네. 그러니까 스님하고 목사님하고 신부님하고 차를 마시고 있으면 가장 멀리서 눈에 띄는 게 누굴까요?
김수현 작가 : 스님이 눈에 띄겠죠.
양정욱 작가 : 네. 옷도 그렇고 머리도 밀고 있고. 그리고 절도 굉장히 강렬해요. 색깔도 그렇고 시간성도 느껴지는 것도 그렇고. 불교에서는 어떤 상을 없애라고 하는데, 상을 없애기 위한 게 중심인데 반대로 우리가 보는 것들은 가장 누가 뭐래도 눈에 띈단 말이야.
김수현 기자 : 불교에서?
양정욱 작가 : 네, 불교에서. 그런 부분들을 좀 저도 이용해요. 이야기는 별거 아니고 그냥 일반적인 이야기인데 조금 더 눈에 들어갈 수 있게, 오히려 반대로. 어떻게 보면 이 소소한 사람들의 이야기의 표지는 하얘서 '사람들'(이라고) 흐리게 쓰여 있는 표지가 맞을 수도 있어요. 이런 식의 이야기는. 근데 표지는 블록버스터란 말이에요. 한번 '뭐야? 무슨 내용이야?' 읽어보게 하고.
그래서 흰죽이라는 얘기도 많이 하는데, 이야기들이 다 흰죽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흰죽을 평소에 잘 안 먹잖아요. 따뜻한 물도 잘 안 먹잖아요. 찬 거나 아니면 뭐 차라도 돼야 마시지. 근데 아프게 되면 찾는 게 흰죽하고 아무것도 안 들어간 거, 속 안 좋으니까. 그리고 적당히 미지근한 물. 그런 걸 찾게 되더라고요. 근데 평상시에는 절대 안 찾아. 먹을 게 너무 많고, 그것만 고르기도 너무 벅차. 건강하라는 물건도 음식도 너무 많기 때문에 굳이 안 해.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