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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왕비에서 조선의 왕비로"…뉴욕타임스가 주목한 한국인 배우 [스프]

[더 골라듣는 뉴스룸] 뮤지컬배우 이태원

이태원 더골룸3
현재 30주년 기념 공연 중인 '명성황후'는 미국과 영국, 캐나다, 일본 등 해외 무대에서 공연되며 한국 뮤지컬 해외 진출사의 첫 장을 쓴 작품이죠. '명성황후'의 해외 무대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배우 이태원 씨는 30주년 감사패를 받았습니다.

그는 중학교 때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줄리어드 음악원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브로드웨이에서 활동하다가, 1997년 뉴욕 공연에 처음 합류했는데요. 한복을 입고 한국 이야기를 하는 작품이라는 말에 출연을 결심하고 바로 제작사인 에이콤 윤호진 대표에게 먼저 연락했다고 하죠. '저를 캐스팅하면 후회 안 하실 겁니다'라고 자신만만하게 약속했던 그는 '명성황후' 해외 공연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데요, '명성황후'를 계기로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 활동을 접고 한국에 정착하고, 2014년까지 무려 17년간 '명성황후' 역으로 무대를 지켰습니다.

좌충우돌 우여곡절 끝에 '명성황후' 호에 탑승한 '왕비 전문 배우' 이태원 씨의 이야기, 직접 들어보세요.
 

이태원 배우 : 제가 96년도부터 브로드웨이에서 '왕과 나' 공연을 하고 있었는데 그 당시만 해도 한국 배우들이 많이 없었어요. 그리고 제가 또 줄리어드에서 성악을 전공하고서는 이제 뮤지컬 배우로 들어갔는데 주조연으로 딱 들어간 케이스였으니까 그때 인터뷰를 하셨던 한국 기자분들이 계셨어요. 근데 어느 날 갑자기 전화가 온 거예요. 한국일보 기자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신문 사설을 보다가 '명성황후'라는 뮤지컬을 미국 뉴욕에서 하려고 하는데 주인공을 현지에서 뽑으려고 한다는 사설 기사를 보셨다는 거예요. 근데 지금 왕비 하고 있으니까 어울릴 것 같은데 한번 연락해 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윤호진 대표님 성함하고 제작사인 에이콤 전화번호를 딱 주신 거예요.

근데 제가 성격이 조금 되게 용감하다고 말해야 되나 무모하다고 그래야 되나, 가만히 있는 스타일은 좀 아니다 보니까 '어, 그래요? 알겠습니다'라고 하고 전화번호를 받아서 전화를 했어요. 다행히 그때 윤호진 대표님이 계셨고 '혹시 윤호진 대표님 계시냐'고 하니까 계신다고 해서 '제가 이러이러한 얘기를 들었는데 그 사실이냐'고 그랬더니 사실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럼 아직 유효합니까?' 한까 유효하대요. 그래서 '저 한번 써보시지요'라고 했어요. (웃음)

김수현 기자 : 미국에서 전화를 하신 거예요?

이태원 배우 : 네, 제가요. 그러니까 '누구냐'고 해요. 그래서 저는 지금 뭘 하고 있고 제 이력에 대해서 쭉 얘기를 했죠. 그랬더니 대표님이 뉴욕에 어차피 극장 때문에 한번 오실 일이 있으시니까 와서 한번 보자 그래서 뉴욕을 오셨어요. 오셔서 제 공연하는 걸 보셨어요. 그때 이제 마티네하고 저녁 공연이 두 번 있을 때였기 때문에 낮 공연을 보시고 저랑 같이 식사를 하는데 그때 이제 이야기를 나누죠.

식사하면서 근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제가 그 당시에는 태국 왕비였잖아요. 근데 외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동양인은요, 동양인 분장을 할 때는 뭐 뮬란 같은 거 보시면 왜 중국 인형같이 눈도 이렇게 찢어지게 만들고 입술은 새빨갛게 쥐 잡아먹은 것 같이 만들어 놓고, 거기다 머리를 태국이 왕관을 머리 꼭대기에다 써요. 다 뒤집어가지고 머리를 묶고 왕관을 쓰거든요. 그러다 보니 저녁에 공연이 있으니까 이걸 못 풀잖아요. 그 상태로 왕관만 빼고. 메이크업도 그 상태. 그리고 나가서 밥을 먹은 거죠. 근데 속으로 그러셨대요. '와, 저 얼굴로 어떻게 무대에 서지' 이 생각을 하셨대요. '노래는 잘하는데...' 왜냐면 분장한 거 보셨으니까. 볼은 또 막 시뻘겋게 돼 있고.

김수현 기자 : 원래 얼굴을 볼 수 없었던 거죠.

이태원 배우 : 네네. 그래서 같이 얘기하면서도 '노래는 정말 잘하는 것 같은데'라면서 걱정을 하셨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대답을 안 하시고 '고민해 보자'라고 하셨었어요. 근데 이제 외국 작품이 브로드웨이에 와가지고 공연을 하려면 그냥 공연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거기는 특히 링컨센터에서 공연을 한 거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필요한 게 되게 많아요. 제너럴 매니저도 있어야 되고 프레스 에이전트, 무슨 에이전트 그래서 엄청, 한 4종류의 팀들이 있어야 돼요. 그걸 잘 모르시잖아요. 저는 공연을 하고 있었으니까 '제가 연결을 시켜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했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뭐라고 말씀드렸냐면 '제가 다른 건 몰라도 한 가지는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해요. 그래서 '저를 캐스팅하시면 후회를 안 하시게 할 자신은 있습니다.' 그냥 그랬죠. 그랬더니 그 당시에 본인이 만났던 한국 여자들 중에서 가장 용감하다고 말씀을 하셨어요. 근데 나중에 들어보니 되게 황당하셨대요. (웃음)

근데 대답을 안 하고 그냥 가시고 그다음에 이제 연락을 계속 주고받는 걸 잘 못 했죠. 저한테 이것저것 자료는 다 보내주셨고 저도 이제 보고. 근데 그 당시에는 음악이 많이 없었어요. 연극적인 요소가 되게 많이,

김수현 기자 : 초연했을 때는요? 아, 네네.

이태원 배우 : 그래서 '혹시 음악은 이대로 쓰실 거냐' 그랬더니 다 바꿀 생각이 있다고 해요. 왜냐하면 아무래도 외국으로 가져간 작품이니까 한국말로 대사가 많이 들어가는 것보다는 '송스루'로 해야지 이게 또 효과가 있잖아요. 그리고 어차피 1980년대부터 뮤지컬이 송스루가 많이 진행이 되고 있는 상황이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일단은 '명성황후' 자체가 그 시대의 흐름을 쫓아가려고 송스루로 바꾸신 것 같기도 하고요. 어쨌든 저희같이 노래하는 사람이 들어가서 그런 것도 물론 있겠죠. 다행히 제가 또 브로드웨이에서 공연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게 아무래도 도움이 좀 됐을 거고요.

그래서 캐스팅을 나중에 하시긴 했는데 저는 '뭐, 되겠지' 그냥 이렇게 생각하고 제가 그때는 거기 일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냥은 못 나오잖아요. 휴가 신청을 하고 비행기표를 끊어놨어요. 그랬는데 대답이 안 오는 거예요. 일주일 전까지.

이병희 아나운서 : 비행기표까지 다 끊어놓으셨는데.

이태원 배우 : 그래서 전화를 했어요. 일주일 전에. 근데 그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냐 하면은 에이콤이라는 단체는 운영위원 체제가 있었어요. 회장님들이 계셔가지고. 근데 거기 에이콤 운영위원장님이신 회장님께서 미국에 오셨었어요. 그래서 그때 사석에서 만나서 식사를 한번 한 적이 있거든요. 그때는 사복을 입고 되게 캐주얼한 모습으로, 원래 모습대로 가서 뵌 거잖아요.

김수현 기자 : 분장 안 하고. 네네.

이태원 배우 : 근데 윤호진 대표님 말씀 들어보니까 '아, 저 얼굴을 무대에 세우기가... 어떻게 저걸 무대에 세우지'라는 생각이 많으셨대요. 그래서 고민을 하고 결정을 못 하고 계셨는데, 그분이 갔다 와서 이제 제 평소 모습을 보시더니 '괜찮던데?' 이러셨나 봐요. 그때 갔다 오셔서 이제 이야기 나누시고 난 다음에 제가 전화했는데 '어떻게 됐나요?' 그랬더니 '같이 일해 보죠' 이래가지고 일주일 후에 바로 비행기 타고 한국 나왔죠.

김수현 기자 : 그러니까 분장을 지운 얼굴을 빨리 보여드렸어야 됐는데. (웃음)

이태원 배우 : 그때는 그럴 수가 없었죠, 전혀. 공연이 있었으니까.

김수현 기자 : 분장이 좀 과했던 걸로.

이태원 배우 : 네, 그때 좀 과했어요.

이병희 아나운서 : 무대 분장은 사실 공주 분장도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면은 눈이 막 이렇게 돼 있잖아요.

이태원 배우 : 이제 왕비이긴 한데... 그나마 거기서 공주 같은 경우는 그나마 좀 예쁘게 가는데 저는 왕비니까 예쁠 필요가 없어. (웃음)

이태원 배우 : 좀 그래서... 그렇게 했던 기억이 나요.

김수현 기자 : 그러면 그렇게 음악도 다 뜯어고치고, 그러면 한국에 오셔서 여기서 같이 처음부터 연습을 하고 그리고 가신 거예요?

이태원 배우 : 여기서 저한테 주어졌던 시간이, 제가 휴가를 딱 2주를 받았거든요. 14일이잖아요. 근데 왔다 갔다 2일을 버려야 돼요. 그래서 한 12일 정도 여기 있었는데 시차 적응도 안 된 상태에서 도착해가지고 바로 연습실로 갔어요. 그날부터 3일 동안 '명성황후'를 다 외웠어요.

김수현 기자 : 그게 가능한가요?

이태원 배우 : 급하니까요. 외우고 악보를 놔야지 동선을 받을 수가 있잖아요.

김수현 기자 : 그렇죠.

이태원 배우 : 그래서 3일 만에 다 외웠던 것 같아요. 제 기억으로. 그다음에 이제 동선 다 하고. 그렇게 연습을 딱 12일을 하고선 다시 돌아가고 공연 때 오셨어요.

김수현 기자 : 아, 진짜요?

이태원 배우 : 공연하기 한 일주일 전쯤 오셨나. 연습도 거기 미국에서도 해야 되니까. 근데 다행히 제가 줄리어드 나왔는데 링컨센터 그 뒤쪽에 줄리어드 기숙사 거기 연습실을 빌려서 거기서 연습을 했었거든요. 근데 그 당시에 저는 브로드웨이에서 공연을 하고 있었으니까 하루는 여기 가서 공연하고 하루는 여기 가서 공연하고 이런 식으로. 그때는 거의 더블이었어서 공연을 번갈아가면서. 그래서 그때 뉴욕타임스 전면에 제 기사가 난 적이 있었거든요. 그것 때문에. '태국의 왕비에서 조선의 왕비로' 이게 타이틀이었어요. 그래서 번갈아가면서 공연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하루 종일 24시간 취재를 하더라고요. 뉴욕타임스에서 아예 풀로. 전면에 난 사람이 그때 한국 사람이 처음이라 그랬었어요. 뉴욕타임스 자체에 나기가 쉽지가 않으니까요.

이태원 더골룸3
이병희 아나운서 : 그거 사진 찍어서 저희에게 보내주시면.

이태원 배우 : 너무 오래돼서 그게 없어요. 저한테.

이병희 아나운서 : 없어요?

이태원 배우 : 우리 부모님은 가지고 계시려나 모르겠네요. 진짜 오래돼가지고.

김수현 기자 : 그때 '명성황후'가 뉴욕 링컨센터에서 공연하는 것 이거 자체가 사실은 그전에 없었던 일이니까. 저는 가서 보지는 못했지만 한국 안에서 소식만 전해 듣고도 야단이 났었죠, 그때.

이태원 배우 : 진짜 힘들게 공연하셨었어요. 그때 하필이면 IMF 터져가지고 너무 힘들어가지고 진짜... 그 유명한 '뗏목 타고라도 우린 간다' 그 말씀을 그때 하셨었잖아요.

김수현 기자 : 온갖 빚을 다 내고.

이태원 배우 : 집 담보 잡히고 뭐 많이 하셨다고 그러더라고요. 근데 저는 별로 걱정을 안 했던 게, 저는 이미 일을 하고 있었던 상황이라서 '저 돈 안 받아도 좋다. 괜찮다. 개런티 안 받아도 좋다.' 저는 한국 작품을 하고 싶었고, 식구들이 다 미국에 있기 때문에 저는 재미교포라서 어릴 때 미국을 갔거든요. 한국을 나오고 싶어도 연고지가 하나도 없어요. 근데 저는 한국을 되게 좋아했거든요. 그래서 미국에 있으면서도 왜 그런 거 있잖아요. 뭐 한국적인, 사물패가 온다거나 아니면 뭐가 있다거나 이럴 때는 저는 빠지지 않고 다 찾아갔었어요. 그리고 여기 계신 분들은 잘 모르겠지만 오히려 교포들은 되게 애국자가 되는 게, '그리운 금강산' 부른다 하면 '아, 가곡이구나' 이렇게 생각하는데 저희가 부르는 '그리운 금강산'은 고국이 너무 가고 싶어서 부르는 가곡이에요. 그러다 보니까 그냥 가곡 부르는데 눈물이 나요.

이병희 아나운서 : 아, 그래요?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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