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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어빠진 무리·방자한 오합지졸"…'버럭'한 김정은 [스프]

[안정식의 N코리아 정식] 간부 비판하며 김정은은 책임 회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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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을 어떻게 정확히 볼 것인가? '기대'와 '관점'이 아니라 객관적 '현실'에 기반해 차분하게 짚어드립니다.
 

북한이 지난달 27일 노동당 비서국 확대회의를 김정은 총비서 주재 하에 개최했습니다. 비서국 회의는 공개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데, 북한이 이날 회의를 공개한 것은 대대적인 간부 문책을 알리기 위해서였습니다.

북한이 지난달 27일 개최한 노동당 비서국 확대회의
이번 회의에서는 남포시 온천군 당위원회와 자강도 우시군 농업감찰기관이 비판대에 올랐습니다.

온천군 당위원회는 음주 접대를 받은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북한은 "당의 각급 지도 간부들이 봉사기관들에서 음주 접대를 받는 것과 같은 안일해이된 생활을 하지 말 데 대한 당내 규율을 난폭하게 위반"했다고 비판했습니다. "집단적인 음주 불량 행위는 규율 건설에 관한 당의 노선에 전면 배치되는 행위이며 사건의 주모자, 가담자들은 지도 간부로서의 초보적인 자격도 없는 썩어빠진 무리, 방자한 오합지졸의 무리들"이라고 날을 세웠습니다.

우시군 농업감찰기관은 "법권을 악용하여 인민의 이익과 재산을 난폭하게 침해"했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았습니다. 농업감찰기관의 권한을 이용해 주민들의 재산을 빼앗았다는 취지인데, 북한 전문 매체 '데일리NK'는 군량미를 징수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이 키우는 집짐승까지 빼앗아가 원성을 샀다고 보도했습니다.

북한은 이날 온천군 당위원회와 우시군 농업감찰기관을 해산하는 초강력 조치를 취했습니다. 관련자들도 당연히 처벌 대상에 올랐습니다. 김정은이 참석한 회의에서 처벌 대상이 됐으니, 엄벌에 처해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데일리NK'는 우시군의 농업감찰기관 감찰원과 안전부장 등 10여 명이 이번 일로 공개 처형됐다고 보도했습니다. 비서국 확대회의가 끝난 뒤 나흘 만인 지난달 31일 우시군 주민들 앞에서 공개 처형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새해 초부터 김정은 주재 회의에서 간부들이 비판받고 일부는 공개 처형을 당하는 상황이니 북한 간부 사회의 분위기가 어떨지 가히 짐작이 가는 상황입니다.
 

온천군과 우시군은 당의 주요 관심 대상 지역들

비판의 표적이 된 온천군과 우시군의 간부들. 이들은 정말 당의 규율과 방침을 마음대로 어기다가 이런 처벌을 받게 된 것일까요?

주목해 볼 점은 온천군과 우시군이 북한에서 최근 관심의 대상이었던 지역들이라는 것입니다. 북한은 지난해부터 '지방 발전 20x10 정책'이라는 지방 발전 정책을 시행 중인데, 매년 전국 20개 시, 군에 현대적인 경공업 공장을 만들어 10년 안에 지방 주민들의 물질문화 생활 수준을 한 단계 향상시키겠다는 내용입니다. 이에 따라 지난해 전국 20개 지역에 경공업 공장이 건설됐는데 온천군과 우시군도 여기에 포함돼 있습니다. 북한은 지난해 말부터 20개 지역의 공장 준공식을 순차적으로 열고 있는데, 온천군에서는 지난달 20일 우시군에서는 지난달 25일 준공식이 열렸습니다.

N코리아 정식 지난달 20일과 25일 각각 개최된 온천군, 우시군 지방공장 준공식
김정은이 주도하는 '지방 발전 20×10 정책'의 첫 해 성과물이 만들어지는 곳인 만큼, 온천군과 우시군은 노동당 중앙의 주요 관심 범위에 들어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김정은이 모든 공장의 준공식에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일의 진행 상황을 실시간 보고받고 있었을 것이고, 노동신문과 조선중앙TV가 각 공장들의 준공식을 대대적으로 보도할 정도로 북한 전체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기 때문에 간부들의 일탈 행위가 쉽게 일어나기는 어려운 분위기였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문제가 된 간부들이 정말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사람들이거나, 일상적으로 행해지던 일들이 특대형 사건으로 과대 포장됐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상적 일들이 과대 포장됐을 가능성

온천군 간부들의 음주 접대는 과연 이러한 일이 온천군만의 일이겠느냐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온천군 지방공장 준공식이 지난달 20일이었고 비서국 확대회의에서 비판받은 날이 지난달 27일이었던 것을 보면, 지방공장 준공식이 끝난 뒤 온천군 당 간부들이 회식을 세게 한 것이 문제가 됐을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데, 다른 지역의 당 간부들은 과연 이런 회식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시군 농업감찰기관의 '인민 재산 침해 행위'도 데일리NK의 보도에 따르면, 일상적으로 행해지던 군량미 징수 과정에서 집짐승까지 빼앗아가는 '과도함'이 더해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군량미를 내라고 농민들의 집 수색을 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데, 이번에는 집짐승이나 가전제품까지 가져가면서 주민들의 원성을 크게 샀다는 것입니다.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집짐승까지 빼앗아가는 과도한 행위가 문제이긴 했지만 위에서 시킨 군량미 확보를 열심히 한 죄로 공개 처형까지 당한 우시군 간부들은 그야말로 억울함에 땅을 칠 일입니다.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김정은의 간부 잡도리

김정은의 간부 잡도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해 7월 삼지연 현지 지도 당시 김정은은 건설감독기관의 직무 태만을 지적하며 "초보적인 도덕과 자격도 없는 덜 돼먹은 자들"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관련자들이 경질되고 처벌받은 것은 물론입니다. 2023년 8월에는 김덕훈 당시 총리까지 비판대에 올랐습니다. 평안남도 안석간석지의 제방이 붕괴되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김덕훈 총리의 무책임한 사업 태도가 문제라면서 김덕훈 내각이 무책임한 '일본새(일하는 태도)'로 국가 경제 사업을 다 말아먹고 있다고까지 비판한 것입니다.

안석간석지 제방 붕괴 현장에서 화를 내고 있는 김정은 (2023년 8월)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최고 지도자의 이런 역정은 공포의 대상일 수밖에 없습니다. 자칫 본인뿐 아니라 가족들까지 어떤 처벌을 받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리일규 전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참사는 SBS와의 인터뷰에서 "김정은이 화났을 때는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며, 김정은이 눈길을 왼쪽으로 돌리면 왼편에 서 있던 사람들이 뒤로 숨고 눈길을 오른쪽으로 돌리면 오른편에 서 있던 사람들이 뒤로 숨는 현상까지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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