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라리 영화 속 이야기라고 하면 이 서글픔이 덜어질 수 있을까.
타이완 배우 서희원이 지난달 29일 남편 구준엽을 포함한 가족들과 명절 연휴를 맞아 일본 도쿄 여행을 갔다가 첫날부터 시작된 독감 증상이 점차 심각해져 지난 2일 아침 7시 병원에서 임종을 맞았다. 사망 전 서희원은 폐렴 증세가 악화되고 산소포화도가 급감해 병원에 여러 차례 실려가서 치료를 받았고, 타이완으로 이동해 입원을 하려고 출국을 서두르려던 날 결국 세상을 떠났다.
두 사람의 사랑을 질투한 건 얄궂은 운명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해도 해도 너무한 건 한국, 타이완 양국의 저널리즘도 마찬가지였다. 중년이 된 두 사람의 재회를 마치 올림픽 경기 중계하듯 집요하리만큼 실시간으로 전하던 일부 타이완 언론 매체들은 이젠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나버린 서희원의 사망과 관련한 각종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시끄럽게 보도하고 있다. 덩달아 국내 언론도 외신을 그대로 옮겨 자극적인 보도를 하고 있다.

사망 직후 나온 대표적인 가짜 뉴스는 전세기에 대한 것이었다. 서희원이 타국에서 사망한 터라 유족은 행정 절차를 밟아서 고인의 유골함을 타이완으로 옮겨와야 했다. 그런데, 전 남편인 중국인 왕소비(왕샤오페이)가 서희원의 유골함을 옮길 전세기를 마련해 주었다는 내용의 기사가 보도되기 시작했다. 왕소비 측이 자신의 이미지를 포장하고자 한 목적이었을지 모르겠지만 이 내용은 완전한 가짜였다. 참다못한 유족이 "그건 서희원의 동생이 지불한 것"이라고 입장을 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전 시모와 전 남편은 서희원이 타이완에서 양육하던 두 자녀의 양육권과 학교 전학 등을 입에 올렸다. 이 내용은 기사로 전해져 유족을 두 번 울렸다. 결국 보다 못한 동영상 플랫폼 사이트가 전 시모와 전 남편의 계정을 영구 폐쇄하는 특단의 조치를 했다. 사후약방문이 아니었더라면, 서희원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조금 더 일찍 그런 조치를 취했으면 어땠을지 아쉬움을 남긴다.
서희원은 구준엽과 결혼한 직후부터 현재까지도 타이완의 가짜 뉴스에 시름하고 있다. 그녀가 소셜미디어에 남긴 흔적만 봐도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서희원은 지난해까지도 소셜미디어에 자신이 범죄를 저지른 적이 없다는 증명서, 마약을 하지 않았다는 증명서, '가짜 뉴스 유포를 멈춰달라'는 호소문 등을 올려놓았다. 대부분의 사람은 서희원이 구준엽과 결혼해 가정을 꾸린 뒤 소위 '꽃길'만 걸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오해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전 시모, 전 남편이 하는 거짓 폭로는 불륜 의혹, 마약 의혹 등의 이름으로 기사화돼 그녀를 괴롭혔었다. 전 남편은 이혼 전 약속했던 두 자녀에 대한 양육비 지급을 이행하지 않았고 서희원은 생전 전 남편과 소송을 하고 있었다.
그 사이 국내 언론은 구준엽이 상속받을 수 있는 재산에 대한 보도를 이어갔다. 서희원은 1994년부터 가수로, 또 그 이후에는 연기에 도전해 타이완의 '국민 첫사랑'으로 활동했다. 이후에는 굵직한 영화에 출연하며 배우로서 이름을 높였다. 30년 가까이 성실하게 연예 활동을 이어온 덕에 일각에서 고인은 한화 1천200억 규모의 자산을 남긴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에 국내외 일부 언론 매체들은 구준엽이 고인의 재산을 상속할 가능성을 언급하며, 유언장 존재 여부를 운운하기도 했다. 절망과 상실감이 채 수습되기도 전에 이와 같은 기사를 접한 구준엽을 포함한 유족의 참담함이 어떠했을지 상상조차 어렵다. 구준엽이 황망한 가운데서도 직접 소셜미디어에 "상속될 수 있는 내 몫은 모두 장모님에게 드릴 것이고, 아이들이 재산을 상속받을 수 있도록 법적으로 돕겠다"는 글을 남긴 것은 언론 보도의 영향이 크다.

두 사람의 재회 소식이 들려왔던 시기는 전 세계가 코로나바이러스에 지칠 대로 지쳐있던 시기였다. 다른 나라로의 이동과 가족이 아니면 만나기도 어려웠던 그 시기에 구준엽은 한국에서 서희원과의 혼인 신고를 한 뒤 타이완으로 혼자 건너갔다. 그곳에서 구준엽은 10일 동안 호텔에서 자가 격리를 한 끝에 격리가 해제되자마자 서희원을 만나러 달려갔다. 그렇게 성사된 만남은 국경도, 시간도, 코로나바이러스도, 유명인의 굴레도 막을 수 없는 단단하고 뜨거운 것이었다.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도 덩달아 용기와 인류애를 얻었다.
서희원의 사망 직후 모친은 타국에서 싸늘하게 숨을 거둔 딸의 유해를 가져오는 행정 절차를 준비하면서 항공편 일정을 비밀에 부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도 모자라서 유족은 전세기를 수소문한 뒤 일정을 하루 앞당겼다. 그리고 도착해서는 딸의 유골함을 가리기 위해 커다란 우산 여러 개를 들어서 절대로 카메라에 이 모습이 포착되지 않도록 했다. 언론에 딸의 마지막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는 처절한 몸부림으로 보인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