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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하지 못 한 독립운동 영화…<하얼빈>이 아쉬운 이유 [스프]

[취향저격] (글 : 홍수정 영화평론가)

홍수정 취향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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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극장가에서 사랑받는 <하얼빈>은 흥미로운 영화다. 내용에 관한 말이 아니다. 이 영화에 숨겨진 모순이 흥미롭다. <하얼빈>은 멋진 이미지를 자랑하지만, 여기에는 정작 가장 중요한 한 가지가 빠져있다. 끝내 <하얼빈>을 긍정할 수 없는 이유다. 그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아래부터 <하얼빈>에 관한 스포일러가 나오니, 유의해 읽어주길 바란다.

<하얼빈>은 장점이 많다. 일단 촬영이 뛰어나다. 초반부터 필름 누아르를 향한 지향을 선언하고 시작한다. 그리고 누아르 특유의 미장센과 조명, 연기 등을 훌륭하게 구현한다. 한국의 근대기를 누아르의 창을 거쳐 볼 수 있다는 점이 신선하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서부극 형식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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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얼빈>은 현빈, 이동욱, 박정민 등 젊은 스타 배우를 전격 기용한다. 이는 독립운동가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고려하면 새로운 시도다. <영웅>(2022)에서 정성화가 연기한 안중근 의사 역을 현빈이 맡았다는 점도 그렇다. 그러나 안중근 의사가 고작 31살에 의거한 사실을 고려하면, 젊은 배우를 발탁한 점도 설득력 있게 느껴진다.

그런데 문제는 이 영화가 고전 장르에 너무 심취해 있다는 데 있다. 필름 누아르는 색채가 강한 장르다. <하얼빈>은 누아르를 추구하며 그것의 쾌감을 전달하는 데 성공하지만, 그 반대급부로 장면들이 어딘가 본 듯하다는 단점을 떠안게 되었다. 이것은 모든 장르 영화의 장점이자 한계이기도 하다.

만일 <하얼빈>이 누아르를 추종하는 동시에 독창적인 연출이나 문법도 제시했다면 평가는 달랐을 것이다. 장르의 외연을 넓힌 독특한 작품으로 인정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하얼빈>은 거기까지 이르지 못하고, 한국의 역사를 누아르 장르 안에서 착실하게 선보이는 선에서 그친다.

영화 후반에 등장하는 '서부극' 형식도 마찬가지다. 공부인(전여빈)이 등장하며 영화는 본격 만주 서부극을 표방한다. 사실 이 부분은 영화의 맥락에서 다소 동떨어져 있고, 분량을 줄여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서부극을 보여주기 위해 넣었다는 인상이 강하다. 이 장면들도 '한국 영화가 서부극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이상의 느낌을 주지 못한다. 앞선 누아르 장면들의 한계를 답습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얼빈>은 정작 '독립'에 관한 영화라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이 영화가 의사(義士)의 삶을 소재로 활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정신까지 고민했다면, 이미 고안된 장르의 문법을 따라가는 데 만족하지 말고, 어느 지점에선가 자기만의 고유함을 보여주었어야 했다. <하얼빈>은 과연 그런 시도를 했을까. 혹시 특정한 장르를 재현하려는 욕망이 너무 커서 다른 고민을 압도해 버린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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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가지 언급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 영화 속 김상현(조우진)은 끊임없이 '잊히는 일'을 두려워한다.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죽는 일. 이것은 관객을 향한 영화의 당부로 느껴진다. 독립운동가를 잊지 말자는, 그래서 이 영화를 만들었다는 당부 말이다.

그런데, 정말로 기억되기 위해서는 이전의 역사를 소환하는 것만으로 부족하다. 과거가 생명력을 지닌 채 되살아나기 위해서는 현재와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의 세대도 공감할 만한 정서와 메시지가 거기 있어야 한다. 과연 이 영화에는 그런 점이 있나?

<영웅>과 달리 <하얼빈>은 고뇌와 좌절에 시달리는 독립운동가의 모습에 집중한다. 이것은 숙명적 죽음을 맞이하는 누아르의 주인공이나, 서부극 속 고독한 단독자의 모습과 가까워 보인다. 특별히 현시대의 인간상을 반영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니까 <하얼빈>은 인물을 설정할 때 역시 현재보다 과거(의 장르물)를 더 의식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품게 만든다.

홍수정 취향저격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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