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
선거에 나선 후보자를 위해 비용을 들여 사무실을 빌렸지만 관련 내용을 후보자가 몰랐다면, 사무실을 임차한 이를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됐습니다.
정치자금을 불법적으로 기부하려 했으나 결과적으로 전달되지 않은 셈으로, 미수범 처벌 규정이 없는 정치자금 부정수수죄 규정상 정치자금을 받지 않은 사람이 처벌받지 않는 것은 물론 주려고 한 이도 처벌할 수 없다는 판단입니다.
대법원 2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오 모 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지난 10월 31일 확정했습니다.
오 씨는 2017년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이흥수 당시 인천 동구청장의 재선 선거운동에 쓸 목적으로 선거사무실을 빌리고 임대료와 관리비 등을 지급해 1천407만 원의 정치자금을 불법으로 기부한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검찰은 이 전 구청장도 오 씨의 임대료 지급 사실을 알았을 거라고 보고, 두 사람을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함께 2019년 재판에 넘겼습니다.
법원은 불법 정치자금을 기부받은 혐의를 받은 이 전 구청장에 대해서는 1·2심 모두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그가 사무실을 빌리는 과정에 관여했거나 최소한 빌렸다는 사실을 알았는지도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준 쪽'인 오 씨에 관한 판단은 엇갈렸습니다.
1심은 오 씨가 이 전 구청장의 재선 선거운동에 쓸 목적으로 사무실을 빌려 임대료 상당액을 정치자금으로 준 게 맞는다고 보고 벌금 90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하지만, 2심은 '대향범' 법리를 주된 근거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대향범이란 2명 이상의 참여자, 즉 기부자나 수수자가 서로 다른 방향에서 동일한 목표를 실현하는 범죄로, 주는 행위와 받는 행위가 둘 다 있어야 죄가 성립합니다.
이 전 구청장이 정치자금을 받았다고 평가할 수 없으므로, 오 씨가 정치자금을 줬다고 인정할 수도 없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었습니다.
나아가 정치자금 부정수수죄는 미수범 처벌 규정이 없어서 오 씨가 기부하려고 했다는 것만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고 재판부는 설명했습니다.
검찰은 이 전 구청장의 무죄에는 상고하지 않았지만, 오 씨에 대해서는 법리 오해 등을 이유로 상고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원심 판단에 잘못이 없다며 검찰 상고를 기각했습니다.
대법원은 "한쪽에 의해 정치자금이 마련은 됐으나 건네지지 않은 단계에서는 정치자금법 위반죄로 처벌할 수 없고 해당 사건에서 오 씨가 정치자금 제공행위를 완료했다고 볼 수 없어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단은 잘못이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무죄 원심을 단순히 수긍했을 뿐 명시적으로 법리를 밝힌 것은 아니기 때문에 향후 다른 유사 사건에 미칠 영향에 관해서는 예단할 수 없다고 대법원 관계자는 설명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