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지금 팔십 하나인데, 이렇게 물가 비싸보기는 처음이에요.]
[정말 말도 안 되게 오른 것 같아요]
[먼젓번보다 더 비싸]
올해 내내 비싸다, 올랐다는 말 수없이 했습니다.
사과 배추 김, 우리 땅 먹거리 뿐 아니라 올리브 오렌지 커피 초콜릿, 수입 식자재도 전방위로 요동쳤는데, 왜 이렇게 비싸졌을까 상황은 과연 나아질까 현지에서 답을 찾아봤습니다.
아프리카 대륙 서부에 위치한 가나 공화국, 수도 아크라에서 100km 떨어진 최대 규모의 코코아 농장으로 향했습니다.
초콜릿의 원료가 되는 코코아 열매, 본격적인 수확을 앞둔 시기인데 열매 곳곳에서 시커먼 반점이 보입니다.
열매에 치명적인 곰팡이가 피는 '검은 꼬투리병'입니다.
현재 치료법이 없어 나무째 베어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 병이 급격하게 번진 건 열매가 성숙하는 올해 초 태평양의 해수면 온도 상승으로 고온에다 폭우가 쏟아졌기 때문입니다.
[압둘 마지드/농장 관리자 : 폭우가 쏟아지면 코코아 농장에 습하고 축축한 환경이 생기고, 여기서 곰팡이가 번식해 기공(숨구멍)을 감염시킵니다. 이게 바로 검은 꼬투리병입니다. ]
이상기온으로 인한 폭우에 전염병까지 겹치면서 이 농장의 코코아 생산량은 45%나 줄어들었습니다.
가나는 바로 옆 코트디부아르와 함께 전 세계 코코아 열매의 60% 이상을 생산합니다.
두 국가에서 연간 코코아 생산량이 급감하자, 공급 충격은 전 세계로 퍼졌습니다.
지난해 1월 톤당 2,600달러 수준이던 코코아 가격은 올해 4월엔 1만 1천 달러를 돌파했고, 현재도 고공 행진 중입니다.
같은 무게의 구리보다 비싼 가격이고, 같은 기간 비트코인보다 빠른 가격 상승률입니다.
그런데 가격이 올랐는데도 정작 생산국인 가나는 오히려 수출액이 3억 달러 넘게 급감해 재정 위기에 처했습니다.
코코아는 원유와 금에 이어 가나의 3번째 수출 품목으로 국가 전체 수출액의 12%를 차지하는데, 올해 작황이 워낙 부진하다 보니 이미 계약된 공급량조차 맞출 수 없게 된 겁니다.
전염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감염된 나무를 빠르게 베어내고 살균제를 뿌려야 하는데 그 비용조차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조셉 아이두/코코보드 위원장 : 우리는 코코아 산업을 유지하기 위해 연간 약 5억 달러를 빌리고 있습니다. (코코아를 다시 심는 데) 3년이 걸리고, 완전히 성숙하려면 7년이 더 걸립니다.]
농부들의 열악한 환경도 한몫합니다.
가나의 코코아 농업 종사자는 약 80만 명, 대부분은 한 달에 30달러, 우리 돈 약 4만 2천 원 이하로 생활하는 극빈층입니다.
이들은 평생 코코아를 길렀지만 그걸로 만든 초콜릿은 먹어본 적도 없습니다.
초콜릿 가격에서 거대 제조·유통업체와 가나 정부가 가져가는 몫을 빼면 농부들에게 돌아가는 돈은 6%도 채 안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들은 코코아 농사를 포기하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금광 등 더 위험한 곳으로 내몰립니다.
[조셉 아이두/코코보드 위원장 : 많은 농부들이 문맹입니다. 그들에게 적절한 생활소득을 보장하지 못하다 보니 대부분의 농부들이 코코아 농장을 버리고 떠납니다. 이들이 떠나가면 공급망에서 초콜릿이 사라질 겁니다. 더 이상 초콜릿은 없습니다.]
초콜릿이 없어진다'는 말은, 기후변화 측면에서도 과장이 아닐지 모릅니다.
앞서 미국 국립해양대기청은 지구 평균 기온이 2.1도만 올라도 2050년엔 코코아나무 자체가 멸종 위기에 처할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코코아 수출에 경제를 의존하고 있는 서아프리카의 '코코아 공화국'들에겐 사실상의 사형 선고인 셈입니다.
(취재 : 김형래, 영상취재 : 유동혁, 영상편집 : 원형희, 디자인 : 장예은·박천웅, 제작 : 디지털뉴스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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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호치민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닥락성, 중부 고원 지대에 위치한 이곳은 기후, 토양 등 커피 재배에 적합한 환경을 갖추고 있어 베트남 최대 커피 산지입니다.
이 지역도 기후 변화의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직접 찾아간 이 농장은 극심한 가뭄으로 아예 일부 커피나무의 관리를 포기했습니다.
푸르른 이 커피나무 잎과는 달리 조금만 이동을 해도 물이 부족해 잎이 노랗게 변해버린 나무도 있습니다.
[가뭄 피해 농장주 : 생산량이 60%에서 70%까지 감소할 수 있습니다. 물 부족으로 인해 나무의 뿌리가 약해지고, 잎은 마르고, 가지는 말라 죽는 상태입니다. ]
근처의 다른 농장으로 가봤습니다.
갑자기 불어닥친 이례적 돌풍으로 50그루의 나무가 부러지는 등 피해를 봤습니다.
[돌풍 피해 농장주 : 새로운 나무를 심고 수확하려면 5년이나 걸릴 수 있습니다. ]
대규모로 운영하는 커피 농장은 그나마 사정이 낫습니다.
가뭄에 대비하기 위해 농장 깊숙한 곳까지 호스로 연결해 물을 주고 있습니다.
[농장주 : 그늘목을 심어 나무를 보호하고, 물이 부족하지 않도록 저수지를 만들어 물을 미리 저장.. ]
베트남 정부가 관개시설 설치 등을 지원하고 있지만 턱없이 부족해, 일부에서는 경작을 포기하거나 다른 작물로 눈을 돌리면서, 전 세계 최대 커피 생산국 가운데 하나인 베트남의 지난해 생산량은 2022년 대비 10% 넘게 뚝 떨어졌습니다.
원두 생산 자체가 줄다 보니, 커피를 유통하고 수출하는 업체들도 비상입니다.
평소 같으면 이곳 창고에는 커피 원두가 저장돼 있어야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포대만 잔뜩 쌓여 있습니다.
베트남에서 40% 이상 생산되고 저가 커피에 주로 쓰이는 로부스타 원두 가격은 1톤에 5,500달러까지 1년 새 무려 2배 넘게 뛰었습니다.
상대적으로 고가였던 아라비카 원두 가격의 절반 이하였지만 한때 이를 따라잡았을 정도입니다.
[커피 수출업자 : 커피 가격이 1kg당 30,000동에서 40,000동 사이였지만, / 올해는 심지어 134,000동까지 올랐습니다. 이는 지난 25~30년간 전례가 없는 일입니다. ]
'아라비카 원두' 최대 생산지 브라질에서도 최악의 가뭄과 대형 화재로 생산량이 크게 줄고 있는데, 이상 기후에 대처할 수 있는 뾰족한 수가 없다 보니, 2050년까지 전 세계 커피 생산 면적의 절반 이상이 사라질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옵니다.
커피 가격에서 원두가 차지하는 비율은 5~10% 정도로 크지 않지만, 급등한 원두 가격은 커피 판매 가격을 자극할 수밖에 없어 커피가 자칫 '기호식품'에서 '사치식품'으로 바뀔 수도 있습니다.
(취재 : 김수영, 제작 : 디지털뉴스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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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 밭이 나무 윗부분을 제외하곤 모두 물에 잠겼습니다.
폭우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는 진흙으로 뒤덮였습니다.
지난달 말 스페인 남동부 발렌시아. 8시간 만에 1년 치 폭우가 쏟아지며 22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도로 등 기반시설은 물론 수확을 앞뒀던 올리브, 오렌지 나무 등이 물에 잠기며 삶의 터전이 한순간에 망가졌습니다.
[호세 안토니오/오렌지 농부 : 도로가 다 망가졌어요. 관개시설도 망가져서 언제 밭에 물을 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이 언제 다시 작동할 수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
폭우에 아수라장이 된 이곳. 불과 한 달 전, 취재진이 찾았을 땐 극심한 가뭄을 겪고 있었습니다.
지난해와 올해 오렌지 주산지인 이 지역에서 생산량이 15% 줄자, 주스 원액 가격이 58% 급등하기도 했습니다.
[호세 안토니오/오렌지 농부 : 이번 겨울 서쪽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으로 나무들이 잎을 많이 잃고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여름 폭염으로) 비가 부족해서 상황이 더 악화됐습니다. 평년에 비해 오렌지 수확량이 4분의 1밖에 안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
인근 올리브밭도 상황은 마찬가지였습니다.
흙은 갈라졌고, 겨우 맺힌 열매는 표면이 마르거나 썩었습니다.
크기도 기름을 짜기엔 턱없이 작습니다.
수확을 한 달 가량 앞둔 올리브 밭입니다.
평소 같았음 나무 한 가득 열매가 맺혀 있어야 하지만 지금은 가지당 열매가 한두 개 맺힌 수준에 불과합니다.
[루이스 홀리안/올리브 농부 : 지금 현재 물이 부족해서 올리브 나무가 열매를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보시다시피 나무에 맺힌 올리브 열매도 있지만 땅에 떨어져 있는 올리브 열매가 더 많습니다. ]
전 세계 올리브 생산량 70%를 담당하는 스페인이지만, 40도를 웃도는 폭염과 가뭄으로 올리브 생산량이 몇 년째 크게 줄었기 때문입니다.
평소엔 나무 한 그루당 50킬로그램 나오는 열매가 7킬로그램 밖에 안됩니다.
[루이스 홀리안/올리브 농부 : 비가 오지 않는다면 이 올리브 나무들이 앞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가뭄이 심한 해에는 나무가 올리브 열매를 스스로 떨어뜨립니다. 올해 이 지역에서는 수확량이 절반 정도만 가능할 것 같아요. ]
올리브 열매에서 기름을 짜내는 이 공장은 지난해 거의 기계를 돌리지 못했습니다.
[호아킨 산타나/올리브유 공장 관계자 : 극심한 가뭄이 이어지면서 2년 전에는 (올리브유를) 30만~40만 킬로그램까지 짰었는데, 현재는 15만 킬로그램까지 감소했습니다. 매년 200명의 농부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
국제 올리브유 가격은 벌써 1만 달러를 넘어섰고, 소매가도 치솟았습니다.
[미세르꼬르디아 게레로/스페인 소비자 : 어느 정도 좋은 품질의 올리브유를 사려면 이제는 50유로(약 7만 5천 원)는 듭니다. 가격이 많이 비싸졌어요. ]
비슷한 기후대인 이탈리아, 그리스 등 지중해 연안국가들도 극심한 기후 흉작을 겪으면서 '올리브유' 품귀 현상까지 생긴 상황. 유럽 국가들이 앞다퉈 튀르키예산 올리브유 수입에 나서자 튀르키예 정부는 수출을 아예 중단하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몇 주 전 스페인을 덮쳤던 폭우가 농작물들의 수확을 앞둔 시기에 닥쳤다는 겁니다.
이미 천정부지 치솟은 농작물 가격이 떨어지지 않고 장기화 되거나 더 오를 수 있는 이유입니다.
[호세 안토니오/오렌지 농부 : (밭에 물을 주는) 관개시설이 손상돼 복구하는데 많은 비용이 들 것입니다. (농작물) 가격은 오를 수도 있습니다. ]
비옥한 토양과 높은 일조량, 채소 과일이 자라기 안성맞춤이라 '축복의 땅'이라 불렸던 곳도 종잡을 수 없는 기후의 위협에 속수무책 무너지고 있습니다.
(취재 : 박예린, 영상취재 : 이용한, 영상편집 : 오영택, CG : 조수인, 제작 : 디지털뉴스편집부)
※ 본 보도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 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