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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패럴림픽 철인3종 '감동의 완주' 김황태 출연…국가대표를 꿈꾼 계기는

[편상욱의 뉴스브리핑]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SBS <편상욱의 뉴스브리핑>'을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SBS에 있습니다.

■ 방송 : SBS <편상욱의 뉴스브리핑> 월~금 (14:00~16:00)
■ 진행 : 편상욱 앵커
■ 대담 : 김황태 패럴림픽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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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김황태 패럴림픽 국가대표 두 팔 없는 철인 김황태

"젊은 시절부터 육상에 두각…사고 후 마라톤 도전"
"2000년 고압선 기사로 근무 중 감전 사고에 양팔 절단"
"수영, 트라이애슬론 중 가장 힘들어…매번 목숨 건다 생각"
"패럴림픽 선수 지원 부족 느껴…장비 후원사도 직접 구해"
"아내 김진희 씨, 사고 후에도 보호자·경기 보조인으로 옆자리 지켜"
"몸 불편해도 밖에서 활동하며 밝은 삶 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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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상욱 / 앵커: 양궁의 김우진 높이 뛰기 우상혁, 탁구의 신유빈이 우리가 알고 있는 파리 올림픽 국가대표 선수들이죠. 너무 자랑스러운 이름입니다만 우리가 또 기억해야 할 국가대표 선수의 이름이 있습니다. 두 팔 없이 한국인 최초로 프랑스 파리 생강을 헤엄쳐서 건넌 패럴림픽 철인 3종 국가대표 김학태 선수입니다. 바로 김학태 선수 저희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어서 오세요.
 
▶ 김황태 / 패럴림픽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 예 안녕하십니까?

▷ 편상욱 / 앵커: 아 실물로 보니까 더 올림픽 하실 때보다 훨씬 젊어 보이세요?

▶ 김황태 / 패럴림픽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 아 좀 살이 쪄서 얼굴이 펴진 것 같습니다.

▷ 편상욱 / 앵커: 잘 모르시는 분들도 혹시 있을 수 있습니다. 이미 너무나 많이 올림픽 갔다 오셔서 주변에서 알아보는 분들 많죠.

▶ 김황태 / 패럴림픽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 일단은 워낙 제가 패럴림픽에 이제 무사 완주한 거 이슈가 돼서 그런지 많은 분들이 알아봐 주셔서 좀 바쁘게 지냈습니다.

▷ 편상욱 / 앵커: 혹시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자기소개 간단하게 부탁드리겠습니다.

▶ 김황태 / 패럴림픽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 안녕하십니까. 저는 장애인 천의 3종 국가대표 김황태입니다.

▷ 편상욱 / 앵커: 올림픽 끝나고 삼겹살에 소주 한잔 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그건 드셨습니까?

▶ 김황태 / 패럴림픽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 일단은 귀국하자마자 대전에 있는 저희 장애인 태권도 국가대표 주장 선수가 배웅을 와서 오자마자 그 친구랑 같이 환영을 나가 나가서 소주 한 잔을 먹었습니다.

▷ 편상욱 / 앵커: 삼겹살도 맛있게 드시고

▶ 김황태 / 패럴림픽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 일단은 뭐 맛집을 찾아가서 맛있게 먹었고요. 그 이슈 때문에 그런지 몰라도 인천시장님께서도 연락이 와서 그다음 주에 또 시장님이 직접 삼겹살 구워주시고

▷ 편상욱 / 앵커: 삼겹살 말고 좀 비싼 거 사달라고 그러세요.

▶ 김황태 / 패럴림픽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 일단은 인터뷰를 삼겹살에 소주라고 얘기했기 때문에 삼겹살과 오리고기를 잘 먹었습니다.

▷ 편상욱 / 앵커: 유정복 시장님 혹시 보시면 삼겹살이 꼭 아니어도 됩니다. 소고기도 좀 소고기도 좋아하시죠?

▶ 김황태 / 패럴림픽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 소고기 사주는 사람 만나지 말랬다고 일단은 그런 얘기

▷ 편상욱 / 앵커: 그런 루머가 있어요? 소고기 몸에 안 좋아요? 왜 소고기 사주는 사람 왜

▶ 김황태 / 패럴림픽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 워낙 비싸니까 대가성 있는 거 아니냐 그런 뜻 아니겠어요 (하하)

▷ 편상욱 / 앵커: 시장은 그러시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자 일단 명절 때는 어떻게 보내셨어요?

▶ 김황태 / 패럴림픽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 일단은 명절은 저희 친가, 외가가 이제 저희 집하고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일단은 가족들과 소주 한잔 하면서 대회 얘기하고 그리고 즐겁게 잘 지냈던 것 같습니다.

▷ 편상욱 / 앵커: 무엇보다 이 패럴림픽 장면 정말 저도 감명 깊게 봤습니다. 인간의 투지가 저렇게 강할 수 있구나 이러면서 사실 눈물도 글썽이고 그랬었는데 패럴림픽 도전하시기 전에도 다른 여러 종목들에 도전하셨던 적이 있더라고요.

▶ 김황태 / 패럴림픽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 제가 일단 다치기 전에도 이 마라톤을 했었고요.

▷ 편상욱 / 앵커: 마라톤을 원래부터 좋아하시던 스포츠인가요?

▶ 김황태 / 패럴림픽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 아니 군대 있을 때 제가 해병대를 나왔는데 무적해병이라는 그런 선발대회가 있어서 그 선발대회를 준비하면서 마라톤도 하고 윗몸 일으키기도 하고 그랬던 기억을 찾아서 제대 후에 직장 상사분에게 권유해서 서울 동아마라톤 하프를 뛴 적이 있고요. 그런데 그때 당시에는 두 번 다시 못하겠다 너무 힘들어서

▷ 편상욱 / 앵커: 그때는 장애를 갖기 전

▶ 김황태 / 패럴림픽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 전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해 8월달에 제 사고가 나고 1년 정도 다쳤으니까 병원에도 있고 퇴원하고 먹고 놀다 보니까 이제 살이 좀 많이 쪄서 그래서 이제 다시 이제 운동할 걸 찾다 보니까 두 팔이 없이 할 수 있는 운동이 많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마라톤을 시작했죠.

▷ 편상욱 / 앵커: 태권도도 도전하셨다고 들었어요

▶ 김황태 / 패럴림픽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 마라톤을 하다 보니까 뭐 마라톤도 이제 진짜 건강에 진짜 많이 도움이 되거든요. 그리고 2015년 전국 체전을 뛰었을 때 평창 패럴림픽이 발표된 이후였기 때문에 노르딕 스키팀에서 연락이 왔고 그래서 노르딕 스키팀을 들어가서 일단은 상비군까지 열심히 잘 갔는데 후방 십자인대가 끊어지는 바람에 노르딕 스키팀에서는 이제 하차를 하게 됐고 이제 재활하는 도중에 태권도팀에서 또 연락이 옵니다.
도쿄 패럴림픽에 장애인 태권도가 들어갔으니 해보자고 그래서 저도 패럴림픽에 가는 줄 알고 또 들어가서 노력을 했는데 제 등급이 없더라고요. 장애 등급이 없더라고요. 왜냐하면 그때만 해도 등급이 k 41, 42, 43, 44가 있었는데 그때 이제 제 등급인 k41이 패럴림픽이 없었고요.

▷ 편상욱 / 앵커: 그건 어떻게 나눠지는 등급입니까?

▶ 김황태 / 패럴림픽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 그거는 이제 양팔이 없으면 k41이 되고 양손 한 손이 없으면 k42 양손이 없으면 k43 그다음에 한 손이 없으면 K44가 되는데 이제 도쿄 패럴림픽에는 42하고 43, 44가 통합돼서 경기를 치렀어요. 그래가지고 지금은 k 41하고 44만 있게 됐고요. 그래서 이제 태권도도 그렇게 잘하고 열심히 하고 있는데 이제 철인 3종경기도 하게 돼서 여기까지 온 것 같습니다.

▷ 편상욱 / 앵커: 철인3종을 근데 어떻게 도전을 하실 생각을 하셨어요?

▶ 김황태 / 패럴림픽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 철이 3종은 제 같이 운동하는 지인 중에 데플림픽 마라톤 동메달리스트 오상미 선수라고 있어요. 그런데 그분이 이제 청각장애인 올림픽 데플림픽에서 마라톤 종목에서 동메달을 두 번 획득한 누나가 장애인 철인 3종도 패럴림픽에 들어갔으니까 한번 도전해 봐 해서 이제 저희 문재홍 매니저 전화번호를 직접 건네주는 바람에 제가 이제 전화해서 찾아가게 되면서 시작하게.

▷ 편상욱 / 앵커: 그런데 철인3종이 일단 원래 주종목이었던 마라톤이 있고 거기에 자신이 있었을 테고 그런데 수영이 있지 않습니까? 두 팔이 없으신데 수영을 한다는 건 저로서는 저도 수영을 배워봤습니다만 정말 힘들 것 같은데 그것 때문에 좀 어떻게 꺼려지거나 그러지 않았어요?

▶ 김황태 / 패럴림픽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 아니요. 일단은 저는 제 고향이 일단 안면도라는 섬이기 때문에 물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어요.

▷ 편상욱 / 앵커: 어렸을 때부터 그냥 바다 수영 정도는 그냥

▶ 김황태 / 패럴림픽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 그렇기 때문에 이제 두려움이 없어서 수영에 대한 그런 걱정을 하고 시작한 건 아닌데 일단 이제 자전거에 대한 걱정이 제일 컸었던 것 같아요.

▷ 편상욱 / 앵커: 수영은 어떻습니까? 파리 없이 센 강의 이른바 오픈워터잖아요.
거기 그냥 흐르는 강물인데 야 이러다가 내가 죽을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 안 하셨습니까?

▶ 김황태 / 패럴림픽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 일단은 수영을 항상 그 생각을 하고 들어갑니다. 왜냐하면 수영이라는 종목 자체가 물속에 사는 거고 물에서 이제 제가 떠 있기 위해서 발을 안 차게 되면 가라앉으면 죽는 거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항상 목숨 걸고 수영한다고 생각하고 이제 발을 열심히 차는 것 같아요.

▷ 편상욱 / 앵커: 어쨌든 뭐 좀 가슴 아픈 얘기고 이걸 질문할까 말까 망설였는데 팔은 어떻게 읽게 되셨습니다.

▶ 김황태 / 패럴림픽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 제가 2000년도 군대 가기 전이나 갔다 와서 제가 하던 일이 무정전 고압선 기사였습니다. 그래 고압선을 전기를 안 끊고 작업하는 그런 설비 기사였는데 그때 이제 무정전 고압선 작업을 하다가 2만2900볼트에 감전돼서 그래서 양쪽 팔을 잃게 됐죠.

▷ 편상욱 / 앵커: 양 팔을 꼭 절단해야만 되는 상황이었나요?

▶ 김황태 / 패럴림픽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 일단 워낙 큰 고압선에 감전됐기 때문에 일단은 혈관하고 피부들이 화상을 입었고요. 그러고 나서 계속 살리려고 노력을 해봤지만 의사 선생님도 많은 기회가 있고 많이 수술을 하고 했지만 점점 살이 타고 들어가고 혈관이 타들어가서 뼈도 점점 죽어가고 어쩔 수 없이 이 정도 길이까지 절단을 했던 것 같습니다.

▷ 편상욱 / 앵커: 결혼을 앞두고 있던 시기라고 들었습니다.

▶ 김황태 / 패럴림픽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 일단은 사고 나기 그 전달부터 상견례를 잡자 해서 상견례를 예정하고 있었는데

▷ 편상욱 / 앵커: 그때는 이제 건강한 청년일 때 상견례를 잡고 있었고

▶ 김황태 / 패럴림픽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 그러고 나서 이제 사고가 생겼으니까 그 이후로는 상견례는 일단 물건너간 거고 제가 이제 목숨이 왔다 갔다 할 때여서 그 이후로는 뭐 열심히 잘 헤쳐나갔던 것 같습니다.

▷ 편상욱 / 앵커: 사모님이 결혼 못하겠다 이런 얘기는 혹시 안 하셨나요?

▶ 김황태 / 패럴림픽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 지금 아내는 한 번도 그런 얘기를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처음에 제가 다쳤을 때부터 그 전부터 사귀고 있었기 때문에 다친 후나 지금까지는 항상 저를 믿고 지원해 주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 편상욱 / 앵커: 사모님이 계속 이번에 경기 때도 핸들러라고 하나요? 계속 도와주는 역할을 하시죠?

▶ 김황태 / 패럴림픽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 그렇죠. 평생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 경기는 또 경기이기 때문에 경기 보조자로 대회를 같이 참가하고요. 그 와중에 이제 철인3종이라는 경기는 수영에서 나오면 쇼트도 벗고 물 안경도 벗고 이제 그리고 사이클로 전환하기 위해서 이제 제 의수도 채워줘야 되고 사이클 신발도 신겨줘야 되고 그리고 헬멧도 씌워줘야 되는 그런 역할을 하는 역할이거든요. 그런데 거기서 진짜 많은 합을 맞춰놓고 시간을 줄이는 게 저희 목표이기 때문에 그래서 항상 최상위 컨디션으로 같이 해가지고 다른 선수들보다는 좀 빠른 것 같아요.

▷ 편상욱 / 앵커: 사모님이 직접 해 주시니까

▶ 김황태 / 패럴림픽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 그렇죠 왜냐하면 평생 옆에서 했던 일이 이제 경기장으로 옮긴 것뿐이기 때문에 확실히 혼자 하는 선수보다는 좀 빨리 잘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아요.

▷ 편상욱 / 앵커: 저도 결혼생활을 오래 하고 있습니다만 부부가 너무 그렇게 오래 붙어 있으면 좀 싸우기도 하고 그러지 않습니까?

▶ 김황태 / 패럴림픽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 싸우는 거는 진짜 매일 싸웁니다. 매일 싸우는데 일단은 칼로 물베기라고 저희는 그냥 자연스럽게 또 넘어가고 서로 그리고 일단은 아내가 저를 일단 케어를 해야 하는 부분이 항상 있기 때문에 싸움을 오래 갈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감정을 가지고 뭘 할 수가 없으니까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빨리빨리 풀리는 것 같아요.

▷ 편상욱 / 앵커:
주로 사과는 누가 먼저 하시는 쪽인가요?

▶ 김황태 / 패럴림픽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 잘못을 하든 안 하든 제가 먼저 사과를 하는 편입니다

▷ 편상욱 / 앵커: 다른 남자들도 다 비슷하죠

▶ 김황태 / 패럴림픽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 그렇죠 살기 위해서는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는

▷ 편상욱 / 앵커: 저도 그렇긴 합니다. 경기 얘기도 좀 해보죠. 철인3종 수영 사이클 달리기지 않습니까? 이게 올림픽 종목에도 있고 패럴림픽 종목에도 있어요. 올림픽 종목하고 패럴림픽 종목은 어떻게 다른가요?

▶ 김황태 / 패럴림픽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 일단 올림픽 종목과 패럴림픽 종목은 경기가 딱 절반으로 줄어듭니다. 길이가 무조건 절반으로 줄어듭니다. 수영이 올림픽은 1.5km, 사이클 40km 달리기 10km면 저기 패럴림픽은 수영 750m, 사이클 20km 달리기 5km로 이렇게 절반으로 딱 줄어듭니다.

▷ 편상욱 / 앵커: 세 가지 종목 중에 어떤 게 가장 힘드셨나요?

▶ 김황태 / 패럴림픽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 저는 일단은 팔이 없기 때문에 수영의 핸디캡이 가장 커서 저는 수영이 가장 힘들고요. 그리고 가장 힘든 이유는 딱 그겁니다. 살기 위해서 계속 발을 차야 되기 때문에 쉴 수 있는 타이밍이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일단은 가장 힘든 종목이 수영입니다.

▷ 편상욱 / 앵커: 수영 팔을 저을 때는 다리는 좀 쉬고 다리를 물장구 칠 때는 팔은 좀 쉬고 그러는 건데 어떻게 훈련을 하셨어요?

▶ 김황태 / 패럴림픽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 일단 저희 저기 김종호 감독님이 항상 코어 운동을 많이 하라 주문을 해 주십니다. 왜냐하면 일단은 코어가 무너지면 하체가 다리를 가라앉으면 저항이 생겨서 더 빨리 못 가기 때문에 그래서 항상 주문하는 대로 열심히 따라는 가고 있는데 아무래도 나이가 좀 있다 보니까 그렇게 많이 완벽하게는 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 편상욱 / 앵커: 젊어 보이셔서 그렇지 지금 올해 벌써 47이나 되셨더라고요.

▶ 김황태 / 패럴림픽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 지금 한창이죠

▷ 편상욱 / 앵커: 한창인 겁니까? 원정 선수들은 좀 많은 나이잖아요.

▶ 김황태 / 패럴림픽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 장애인 체육회 쪽에서는 아직 중간쯤 되는 것 같아요. 위에 누님 형님들도 많이 계시거든요 저희 종목도 마찬가지고 우리나라 전국 체전에 뛰는 선수들이 한 20여 명 되는데 그중에서도 한 중간 약간 위 그 정도 되는 것 같아요.

▷ 편상욱 / 앵커: 사이클 할 때 이 의수로 이제 핸들을 잡아야 되는데 그것도 뭐 속썩여가지고 굉장히 고생하셨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 김황태 / 패럴림픽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 이번에 패럴림픽 가기 전에 이 모든 국제대회를 뛸 때는 제가 이제 의수 하나만 들고 갑니다. 왜냐하면 의수도 다 짐이기 때문에

▷ 편상욱 / 앵커: 굉장히 큰 짐이 되겠네요.

▶ 김황태 / 패럴림픽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 그래서 의수도 이제 하나만 들고 가는데 패럴림픽은 이제 워낙 큰 무대고 혹시나 이제 저희 이제 대회 코스 자체가 코블 코스가 한 70% 정도 되는데

▷ 편상욱 / 앵커: 코블 코스라는 거는 이제 바닥이 평탄하지 않은

▶ 김황태 / 패럴림픽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 중세시대에 마차가 다니게끔 돌멩이 박아놓은 그런 길에 들어가는데요, 그게 한 70%가 되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의수를 2개를 들고 왔는데 일단 첫 첫 번째 이제 코스 코스를 탔을 때 이제 의수가 이제 팔꿈치가 이제 고장 나는 게 느껴져서 수리를 맡겼고요. 그다음에 이제 새로운 의수를 또 꺼내서 탔는데 똑같이 또 그 코블 코스를 못 견디더라고요.

▷ 편상욱 / 앵커: 덜덜덜덜 하니까.

▶ 김황태 / 패럴림픽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 그리고 일단은 몇 년 동안 계속 대회를 뛰었던 의수들이라 그걸 이제 많이 버티지 못했던 것 같아요.

▷ 편상욱 / 앵커: 일단 의수도 의수지만, 사이클도 이른바 올림픽에 나가는 선수들은 굉장히 특수 제작된, 어떻게 보면 좀 약간 비싼 사이클을 타지 않습니까?

▶ 김황태 / 패럴림픽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일단은 사이클이 가장 고가의 장비인데, 그나마 저는 우리나라의 사이클 제작회사인 위아이스라는 곳에서 후원을 해주셔서 최상급 자전거를 받아서 일단은 진행이 됐고요. 자전거를 받았으면 일단 제 몸에 맞게끔 고쳐야 하거든요. 또 이제 고치는 건 분당에 조상필 사장님이 진짜 제 몸에 잘 맞게 개조를 잘 해주셔서 그런 식으로 해서 이제 하나하나 이제 조립해 가면서 이제 완벽하게 가져갔던 것 같아요.

▷ 편상욱 / 앵커: 만약에 자비로 부담해야 한다면 마련할 수 없는 장비였겠군요.

▶ 김황태 / 패럴림픽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일단은 사이클 기본 가격이 1,500만 원대부터 시작하거든요.

▷ 편상욱 / 앵커: 1,500만 원이나 해요?

▶ 김황태 / 패럴림픽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그러니까 개인 부담하기에는 너무 크고요. 그 와중에 개조 비용도 꽤 비싼데 그 정도는 거기서 후원을 받을 수가 없으니까 개인 자비로 고치는 그런 실정이고, 그리고 의수 같은 경우도 일단은 지금 이제 워낙 제가 산업재다 보니까 근로복지공단 재활 공학소에 계시는 분이 제 정영교 선생님이라고 항상 잘 고쳐주고 계시는데, 그것도 너무 자주 가고 오래 쓰다 보니까 삭았어요. 그래서 그런 부분들도 지원이 많이 생겼으면 좀 더 운동하는 데 수월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 편상욱 / 앵커: 올림픽 선수들한테 올림픽 선수들보다 지원이 많이 떨어진다, 이런 보도는 많이 봤습니다. 섭섭하시고 그런 건 없나요?

▶ 김황태 / 패럴림픽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일단은 그게 피부적으로 느껴지고요. 그리고 저 같은 경우는 일단 장비가 진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종목 중에 하나인데, 일단은 대부분은 저희가 찾아가서 후원을 요청하거나 그래야 하는 부분인 걸로 알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 체육회 문재용 매니저님이 직접 발로 뛰어가면서 후원사를 구해오거든요. 그래서 이 패럴림픽을 그나마 잘 갔다 온 거지, 안 그랬으면 많이 힘들지 않았나 싶어요.

▷ 편상욱 / 앵커: 어쨌든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이렇게 완주라는 큰 실적을 낸 데는 역시 아내의 도움을 빼놓을 수가 없겠죠. 패럴림픽 내내 김황태 선수와 함께했던 아내 김진희 씨, 직접 방송 출연은 안 하시겠다고 그래서 저희가 전화로 물어봤습니다. 국가대표인 남편에게 전하고 싶은 얘기는 뭘까요?
 
[김진희 / 김황태 국가대표 아내·경기 보조인 : 여태까지 준비하는 과정이 많이 힘들었는데 본인이 또 운동을 좋아하고 잘 이겨내서 대회 잘 마무리해서 좋았어요. 우선 패럴림픽 잘 진출해서 행복했고 또 무사히 완주한 게 제일 기쁘더라고요.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한 거에 우리 신랑한테 진짜 감사하다는 말을 못 한 것 같아요. 우리 신랑 내가 한 번도 제대로 얘기 못한 거 같은데 여태 고생한 거 아는데 내가 제대로 말을 못 한 것 같아. 항상 애써주고 아껴주고 나를 잘 챙겨주려고 하는데 항상 어긋나는 부분도 있었지만 잘 이겨냈으니까 앞으로도 잘 부탁하고 그리고 사랑하고 앞으로도 운동 다치지 말고 최선을 다해서 운동했으면 좋겠어. 조금 쉬엄쉬엄하면서 했으면 좋겠다. 사랑해.]

▷ 편상욱 / 앵커: 아내한테 평상시 집에서 사랑한다는 얘기는 잘 못 들으시죠?

▶ 김황태 / 패럴림픽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이제 그건 제가 전적으로 제가 하는 얘기라. 아내는 이제 듣는 입장이고 제가 하는 입장이라.

▷ 편상욱 / 앵커: 하시는 입장인 거는 믿을 수 있는 얘기입니까?

▶ 김황태 / 패럴림픽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네. 왜냐하면 한동안은 진짜 그걸 안 해주면 잠을 안 잔다고 그래서.

▷ 편상욱 / 앵커: 그래요. 여기서도 증명을 한번 해주십시오. 아내는 이렇게 고백을 하셨는데.

▶ 김황태 / 패럴림픽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진짜 그동안 이제 신랑이 운동한다고 지금 나와서 이제 뛰어다니기부터 패럴림픽까지 긴 시간 동안 운동을 했는데 항상 옆에서 헌신해 줘서 너무 고맙고. 그리고 내가 운동하는 만큼 자기도 이제 항상 그걸 스트레스를 받은 걸로 알고 있어, 왜냐하면 몸이 점점 아프다고 얘기하는 것도 다 기억하고 있지만 내가 운동 욕심이 워낙 강해서 자기한테 그렇게 좀 쉴 시간은 못 주고 여태까지 끌고 온 것 같아. 그래서 너무 미안하고. 그리고 이 기회를 삼아서 너무 옆에서 고생했고, 챙겨줘서 감사하고, 그리고 너무 존경하고,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사랑하고, 행복하게 계속 잘 살았으면 좋겠어. 고맙고 사랑해, 김진희.

▷ 편상욱 / 앵커: 이제 집에 가서 혼나지는 않으실 것 같습니다.

▶ 김황태 / 패럴림픽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아무래도 또 혼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 편상욱 / 앵커: 어쨌든 철인 김학태 선수 방송 인터뷰 거의 안 하셨는데, 제2의 김황태를 꿈꾸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비슷한 장애를 가지신 분들도 있을 테고요. 하실 말씀이 있을 것 같아요.

▶ 김황태 / 패럴림픽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일단 저도 장애를 갖고 나서 1년여간은 좀 가족, 지인들과의 삶을 살고 있었다가 운동을 시작하다 보니까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교류를 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성향도 좀 넓게 밝아지고. 그리고 활동을 하다 보니까 점점 활동적인 사람이 되고, 그러다 보니까 목표가 생기고, 목표가 생겨서 꿈을 이루게 되고, 그런 과정을 저는 겪어봤습니다. 그러니 저를 본보기로 삼아서 많은 분들이 나와서 활동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원하는 밝은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 편상욱 / 앵커: 알겠습니다. 저도 새겨듣도록 하겠습니다. 도전과 희망의 아이콘 김황태 선수, 자랑스러운 태극 전사의 이름으로 기억하겠습니다.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죠. 고맙습니다.

▶ 김황태 / 패럴림픽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감사합니다.

※ 자세한 내용은 동영상으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SBS 디지털뉴스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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