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동완 전 기상통보관
1990년대까지 한국의 TV 일기예보는 단연 김동완 기상통보관의 모습으로 기억됩니다.
그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하얀 지도 위에 검은 매직펜으로 등압선과 전선의 배치를 마술사처럼 그려내며 날씨를 전했습니다.
한국 방송의 일기예보를 개척한 '제1호 기상캐스터' 김동완 전 기상청 기상통보관이 오늘(15일) 오전 5시쯤 부천 한 병원에서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전했습니다.
향년 89세.
경북 김천에서 태어난 고인은 대구공고 졸업 후 1958년 12월 수학 교사가 되려고 상경해 서울대 사대 원서를 내러가는 길에 우연히 국립중앙관상대 국립기상기술원 양성생 모집 공고를 보고 응시, 15대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습니다.
1959년 국립기상기술원 양성소를 수료한 뒤 김포국제공항 측후소와 부산 수영비행장 측후소 근무를 거쳐 서울로 올라가 관상대 예보관으로 활동했습니다.
예보관 시절, 퇴근한 뒤 예보가 적중할지 궁금하고 불안해서 한밤중에 몰래 집을 나와 매일 1시간쯤 하늘을 보는 버릇이 생기는 바람에 부인으로부터 '바람피우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은 적도 있다고 합니다.
라디오에 나온 것은 1967년부터였습니다.
1965년부터 중앙관상대 직원이 방송국와 직통전화로 날씨보도를 거들기 시작했습니다.
선배 방송요원이 그만둔 뒤 그 뒤를 누가 이을지 논의한 끝에 고인이 1967년 3일에 한번씩 교대로 돌아가며 하는 방송요원으로 뽑혔고, KBS 라디오의 어업 기상통보관으로 방송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통보관으로 활동하는 한편, 교대 근무를 이용해 연탄 배달을 하거나 택시를 몰기도 했습니다.
고인은 "1950년대에는 기상 업무라는 것이 생소한 개념이어서, 내가 관상대 다닌다고 하면 시골 어르신들이 '아니 젊은 사람이 관상 보는 일을 하다니, 쯔쯔…'하고 혀를 찼다"고 당시 를 회상한 바 있습니다.
고인은 청취자들이 날씨 방송을 듣게 만들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날씨와 일생생활 간 연결고리'를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체감온도'라는 말도 그가 처음 도입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고인은 "여우가 시집가는 날", "파리가 조는 듯한 더위" 등 독특한 비유와 친근한 날씨 해설로 시청자들의 기억 속에 남았습니다.
기상청의 '기상통보관'이라는 직책도 원래는 없었는데 고인 때문에 만들어진 직책입니다.
1970년대에 들어 동양방송(TBC)과 문화방송(MBC)에서도 제1호 기상캐스터로 활약했습니다.
국내 최초로 직접 매직펜으로 일기도를 그려가며 전달해 장안의 화제가 됐습니다.
1981년 초 MBC가 "관상대 기상 통보관을 사직하고 방송만 해달라"고 섭외했고, 고민 끝에 1982년 10월부터 MBC 기상보도요원으로 전직했습니다.
이후 케이웨더 이사로 활동했고, 2001년부터 케이블TV 기상정보채널인 웨더뉴스채널에서 '김동완의 기상뉴스'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1997년∼1999년 한국일기예보회장을 지냈습니다.
(사진=EBS 시대의 초상 - 내일의 날씨 김동완입니다 유튜브 캡처,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