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쏟아지는 콘텐츠 홍수와 나도 헷갈리는 내 취향, 뭘 골라야 할지 고민인 당신에게 권해드리는 '취향저격'.
OTT 시대에 감독판 8부작으로 돌아온 19년 전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양다리 걸치다 들켜 당당하게 헤어지자는 나쁜 남자 앞에서 눈물 뚝뚝 흘리다 화장실에서 판다가 되어 울던 삼순이는 요즘 MZ세대들에게는 도통 이해 안 될 이야기지만 그때는 또 왜 그렇게 내 얘기 같았을까.
인트로는 참기 힘든 신파지만 삼순이와 진헌의 사랑 이야기는 손발 오그라드는 장면을 다 걷어낸 김윤철 감독의 편집 때문인지 꽤 스피디하게 전개된다. 2024년 웨이브에서 뉴클래식 프로젝트로 선보인 첫 번째 콘텐츠는 19년이 흘러도 이름이 가지고 있는 힘을 보여준 브랜드 삼순이의 귀환이었다. <내 이름은 김삼순>은 당시 50%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하며 전국의 삼순이란 이름을 가진, 그리고 그 시대 모든 여성의 욕망을 대변하며 달콤한 해피엔딩으로 끝났던 추억의 이름이자, 여전히 유효한 레트로 열풍 속 다시보기 버튼을 작동시킨다.
삼순이가 보여준 2005년 우리의 풍경, 그땐 그랬지
여자는 돈이 필요하고 남자는 거래를 제안하고, 어쩔 수 없이 수락한 계약 관계를 통해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진다. 사실 삼순이는 지금 기준으로 보면 노처녀도 아니고 별로 뚱뚱하지도 않다. 서른 살에 파리 유학까지 다녀올 정도로 자기 발전을 이룬 삼순이는 늘 남자에게 차이는 사랑을 했다는 것과 삼순이란 촌스러운 이름 말고는 기죽을 것도 없는 엄청난 고스펙 전문가이기도 하다.
2005년 이 드라마의 인기 비결은 화끈하고 통쾌면서도 사랑스러운 삼순이의 매력 때문이었다. 사장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할 말 다 하면서도 당당했던 여주인공 김삼순은 그 당시 워킹우먼들의 꿈이었다.
90년대 신데렐라와 캔디 드라마의 2000년대 버전인 김삼순은 여주인공의 성장과 자기 발전을 그리며 끝났다는 점에서 연애와 밀당만 주야장천 보여주던 그전 드라마들과 달랐고 <파리의 연인>, <옥탑방 고양이>처럼 자기 주관 뚜렷하고 독립적 성향을 보인 여주인공을 거쳐 진일보한 여성 캐릭터였다고도 할 수 있다. 서른 살이지만 아줌마 소리를 밥 먹듯 듣는 삼순이 캐릭터는 동네 욕쟁이 할머니 같다가도 엉뚱하고 사랑스러운 김선아의 연기는 지금 봐도 찰떡처럼 찰지고, 풋풋한 현빈의 모습을 보는 것도 재미난다. 삼순이가 자주 쓰는 당시 유행어 미지왕(미친놈, 지가 왕잔 줄 알아)과 자주 등장하는 '얼마면 돼?' 현빈 버전 덕분에 <가을동화> 원빈 소환까지, 추억은 방울방울 솟는다.
삼순이가 바꾼 것들 : 절반의 성공을 이룬 드라마 여성 캐릭터
또한 드라마 속 삼순이 아빠가 빚보증을 잘못 서 집을 날리거나 남편의 외도로 이혼하는 삼순이 언니가 등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순이는 여전히 혼자가 아닌 태평양을 건널 조각배를 같이 탈 동반자를 구하는 데 진심이다. 혼자 살고 말지, 아이도 낳지 않고 결혼도 선택이 된 지금 2024년의 대한민국과는 너무나 다른 결혼은 필수라는 당시의 시대상과 작가의 가치관이 부담스럽지만 극 중 삼순이는 꿋꿋하게 커리어를 쌓으며 나아간다. 아마도 삼순이는 그 후 우리가 만나게 될 <시크릿 가든>의 길라임 같은 진취적이고 100%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나아가는 진격의 여주인공들의 완성되기 전 성장형 캐릭터의 절반의 게이지를 채운 과도기적 캐릭터라고 할 수 있겠다.
이제 오십이 된 삼순이는 행복하게 잘 살고 있을까?
2024년 삼순이는 어디선가 자신의 베이커리를 내고 잘 살고 있을까? 진헌과 결혼해서 아들딸 낳고 알콩달콩 행복했을지 아니면 메기같이 생긴 시어머니의 구박과 등쌀에 재벌가 청담동 며느리 사표 내고 이혼한 뒤 다시 파리로 훌쩍 떠나서 파리지앵과 만나 새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