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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지방소멸』 출간 10년…일본의 반성

마스다_타이틀
안녕하세요. 지적인 당신을 위한 인사이트 SBS D포럼에서 전해드리는 SDF다이어리입니다.

대한민국 제2의 도시로 불렸던 부산이 전국 광역시 중 처음으로 소멸위험단계에 진입했다는 연구결과가 최근 발표됐습니다.[1]  앞서 인구증감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유통업계에서는 일찌감치 경고음이 나왔습니다. 홈플러스 서면점, NC백화점 서면점, 메가마트 남천점 등 부산 도심 대형 오프라인 유통매장이 올해 줄줄이 문을 닫았습니다. 아이들 웃음소리로 시끄러워야 할 학교도 비어갑니다. 올해 입학생이 20명 미만인 부산지역 초등학교는 53곳, 그중 입학생이 10명도 채 안 되는 학교는 21곳에 달합니다.
[2] 부산을 포함해 전체 228개 시군구 중 소멸위험지역은 130곳으로 57%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마스다 초등학교
올해 입학생이 10명도 채 안되는 부산 지역 초등학교는 21곳에 달한다.(사진출처: SBS)

저출생이 심각하니까 지역 인구도 적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즉, 지방소멸 위기는 저출생 경향에 따른 결과물이자 부산물 아니냐는 겁니다. 그러나 실제 데이터를 분석해 보면, 지방소멸 위기의 또 다른 이름은 ‘서울 쏠림 현상’이며, 이것이 역으로 저출생 경향을 가속화하는 주범이라는 결론에 이릅니다.

10년 전 일본에서 이런 주장을 내놓은 인물이 <지방소멸>의 저자로 잘 알려진 마스다 히로야 전 총무상입니다. 2014년 일본 지자체 1,799곳의 인구추이를 조사한 후 전체의 49.8%에 달하는 ‘소멸 가능성 도시’ 896곳 명단을 발표해 이른바 ‘마스다 쇼크’를 일으켰습니다. 또 이는 우리나라 몇 연구기관에서도 소멸가능 지역을 측정하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마스다 전 총무상은 10년이 지난 올해에도 <인구비전2100> 보고서를 작성해 기시다 총리에게 전달하기도 했는데요. 이 보고서에는 <마스다 보고서> 이후 10년 간의 변화와 반성, 2100년까지의 인구정책 목표가 담겼습니다. 그 10년 간의 경험에서 우리가 배울 것은 없는지, 마스다가 작성한 두 가지 보고서를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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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고용정보원, <2024년 3월 기준 소멸위험지역의 현황과 특징>, 『지역산업과 고용』 여름호. 20~39세 여성 인구수를 65세 이상 인구수로 나눈 값인 ‘소멸위험지수’가 0.2 이상 0.5 미만이면 소멸위험진입단계, 0.2 미만이면 소멸고위험단계로 구분하는데, 부산의 소멸위험지수는 0.490을 기록했다. 지난 2016년 처음으로 소멸위험지수를 측정한 이래 소멸위험지역은 매년 늘고 있다.
[2] 부산시 교육청, 2024년 3월 조사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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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마스다 보고서
마스다 보고서의 시작은 동일본 대지진이 있었던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일본창성회의(인구전략회의 전신)라는 민간 조직이 그해 5월 ‘대지진으로부터의 부흥’을 위해 발족했고, 마스다 전 총무상은 당시 인구감소 문제 검토 분과의 좌장을 맡았습니다. 이 분과에서 제출한 보고서가 <지방소멸>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이른바 <마스다 보고서>입니다.
마스다 지방소멸
2014년 ‘마스다 보고서’는 ‘지방소멸’이라는 책으로 출간돼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이 보고서는 전국 약 50%에 달하는 896개 지자체를 ‘소멸 가능 도시’로 분류해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습니다. 기준으로는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젊은 여성의 수가 얼마나 급격하게 감소하는지를 택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2010~2040년까지 30년 사이에 20~39세 젊은 여성들이 50% 이상 줄어드는 지자체를 소멸 가능 도시로 구분했습니다.

그러나 이 보고서의 핵심은 ‘소멸 가능 도시’ 명단보다도 이 같은 지역인구 감소와 전체적인 저출생 현상 사이의 메커니즘을 실제 통계를 바탕으로 설득력 있게 규명한 데 있습니다. 마스다 전 총무상은 이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지방소멸』 중
 
“이런 모습을 보면 마치 일본 전체의 인구가 도쿄권을 비롯한 대도시권에 빨려 들어가 지방이 소멸할 것만 같다. 그 결과 나타나는 것은 대도시권이라는 한정된 지역에 사람들이 밀집해 고밀도의 환경에서 생활하는 사회다. 이것을 우리는 ‘극점 사회’라고 이름 붙였다.” (p.39)

“대도시권만 생존하는 극점사회는 일본 전체의 인구 감소를 더욱 가속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중략) 인구의 블랙홀 현상이라고 부른다. 일본 전체의 출산율을 끌어올려 인구 감소에 제동을 걸기 위해서는, 대도시권으로 인구가 집중되고 있는 현재의 거대한 흐름을 바꿔야 한다.”(p.42)

마스다 도쿄 버리는 도시
특히 후반부에 실린 대담에서는 도쿄에 젊은 층이 집중되는 현상을 더 날카롭게 비판합니다. 모타니 고스케 일본 종합연구소 주석연구원은 도쿄를 “젊은이들을 저임금으로 고용해 쓰고 버리는 곳”이라고 일갈합니다. 그는 “그런 곳에 일자리를 원하는 지방 사람들이 모여들면 저출산이 더욱 심각해질 것은 불 보듯 뻔하다”며 집값은 비싸고 아이를 키우기는 훨씬 어렵다고 말합니다.

모타니 연구원의 말을 받은 마스다 전 총무상은 2012년 일본 전체 출산율이 1.41인데, 도쿄는 1.09로 47개 도도부현 중 독보적인 꼴찌라고 지적하면서 “(도쿄가) 원래 시골에서 자녀를 키워야 할 사람들을 빨아들여서 지방을 소멸시킬 뿐 아니라 모여든 사람들이 아이를 못 낳게 해 결과적으로 나라 전체의 인구를 소멸시키는데, 이를 ‘인구의 블랙홀 현상’이라고 명명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모타니 연구원은 한술 더 떠 “도쿄는 인간을 소비하는 도시”라며 “그런 곳에 젊은이들을 더 모으라는 것은 일본이라는 나라를 소멸시키려는 음모”라고까지 비판합니다.
제목 고령자마저 줄어들면
이 보고서에는 우리나라의 인구 구조에서는 아직 확실히 드러나지 않은 사실에 대한 예측도 나옵니다. 이를테면 지역에서 살던 고령자마저 줄어드는 현상에 대한 것입니다.
 
『지방소멸』 중
 
마스다 : 저출산 고령화라는 말에 가려져 있는데, 지방에서는 이미 저출산과 동시에 고령 인구의 감소도 시작됐습니다. 여기에서도 고령화율이 아니라 절대수의 감소가 큰 문제가 됩니다. 지방에서는 의료와 개호(돌봄) 등 고령자를 뒷받침하는 산업의 비율이 높은데 이것이 공동화되어 가고 있지요.

모타니 : 소비에 관해 살펴봐도 사실 지방에서는 가장 큰 현금 흐름이 연금이니까 고령 인구가 줄면 그 영향이 막대합니다... 고령자 연금으로 버티던 편의점이 망하고 주유소가 망하게 됩니다.

마스다 : 의료개호 관련 산업은 지방의 젊은이들을 고용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것이 쇠퇴한다는 건 그들이 일할 곳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일자리를 찾아서 대도시로, 도쿄로 떠나게 되겠지요. 젊은이가 사라지면 자녀의 수는 계속 감소합니다. (p.151)


블랙홀처럼 대도시로 젊은이들을 흡수하는 극점사회는, 지방 경제를 고령자와 고령자를 지원하는 산업 중심으로 전환시킵니다. 여기서 고령자마저 줄어들면 관련 일자리마저 사라져 그나마 있던 젊은이마저 대도시로 몰리는 더 극단적인 극점사회로의 악순환이 일어난다는 겁니다. 고령자 연금으로 버티던 지방의 편의점과 주유소마저 망하게 된다는 묘사는 마치 영화를 보듯 미래의 참상을 미리 그려볼 수 있게 해 줍니다.

이 보고서는 이 같은 분석에 토대해 인구의 재배치를 포함, 결혼 및 육아 지원, 이민정책, 연금과 정년 등 지금은 낯설지 않은 다양한 정책을 제안합니다. 10년이 지난 지금 일본은 마스다 전 총무상이 제시했던 목표를 이뤘을까요?
제목 인구비전2100
마스다 전 총무상은 2014년 보고서에서 2025년 합계출산율 1.8명을 목표로 내세웠습니다. 그러나 지난 6월 발표된 2023년 합계출산율은 1.20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경신했고, 특히 도쿄도는 0.99명으로 처음으로 1명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마스다 보고서 발표 10년을 맞아, 지난해 7월 일본창성회의 후신으로 인구전략회의가 발족했습니다. 의장은 미무라 아키오 일본제철 명예회장, 마스다 전 총무상이 부의장을 맡았습니다. 지난 1월 기시다 총리에게 전달한 인구전략회의의 첫 보고서 ‘인구비전2100’은 지난 10년에 대한 깊은 반성으로 시작합니다.
마스다 사진 전달
지난 1월 ‘인구비전2100’보고서를 기시다 후미오(오른쪽 2번째) 일본 총리에게 전달하는 마스다 히로야(왼쪽 2번째) 전 총무상과 미무라 아키오(가운데) 일본제철 명예회장.

일본 합계출산율은 2015년 1.45명으로 잠깐 상승했다가 다시 하락했고, 도쿄 일극 체제도 전혀 변하지 않았으며, 저출산 예산 확대도 뒤늦었다고 현황을 짚었습니다. 특히 정책적으로는 육아 부담이 집중된 여성의 의식과 실태를 정책에 제대로 반영하려는 태도가 부족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다만, 4월 추가 발표에서 소멸 가능 도시가 2014년 896곳에서 2024년 744곳으로 줄었다고 밝힌 건 성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인구 목표치를 10년 전보다 대폭 낮췄습니다. 2100년 안정적이고 성장력 있는 8,000만 인구 국가를 지향한다고 수정한 겁니다. 만일 이대로 가다간 일본 인구는 2100년 6,300만 명, 즉 지금의 절반으로 떨어지게 되는데 이런 상황만은 막아보자는 취지입니다. 이를 위해 합계출산율은 2040년 1.6명, 2050년 1.8명에 도달해 2060년 정도에는 인구수를 유지할 수 있는 2.07명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마스다 인구전략 표
이를 위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청년 세대의 소득 향상과 고용 개선이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본사 기능이나 여성에게 매력적인 기업, 대학 등의 지방 이전도 촉진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눈에 띄는 건 출생률에만 집착하지 않고, 사람에 대한 투자를 강조한 점이었습니다. 제시한 목표대로 2100년 8,000만 인구를 지킨다고 하더라도 지금보다 3분의 1이 줄어든 것인 만큼, 적은 인구 규모로도 다양하고 성장력 있는 사회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역량을 높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줄수록 사람의 가치를 더 중시해야 한다는, 당연하면서도 경시하기 쉬운 점을 짚었다고 봅니다.

이민 정책에 대한 지적도 눈에 띄었습니다. 인구감소를 보충하기 위한 ‘대체이민’ 정책을 취해선 안 된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유엔 분석에 따르면 일본이 인구감소를 이민으로 보충하기 위해서는 총 1,700만 명 이상의 이민자가 필요하며, 외국인 비율은 2050년까지 18%가 될 걸로 추산했다며, 현실적이지도 않고 설사 실현한다고 해도 사회적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인구 정상화를 위해선 어디까지나 출산율 향상을 통해 큰 흐름을 바꾸어야 하며, 노동 목적으로 받아들이는 외국인은 고급, 전문 인력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저출생 대책으로 이민청 설립 등이 논의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참고해 볼 지적입니다.

도쿄권의 경우 일본 전체 출생아 3명 중 1명이 태어나는 곳이니 만큼, 일본 전체의 인구 동향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고 있다며 ‘도쿄권 인구전략회의’를 설치하고 지방과 도쿄권 양측의 노력으로 흐름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23년 기준 수도권에서 태어나는 출생아가 전체의 53%로 절반을 넘었습니다. 인구 문제를 지방의 문제로만 치부할 게 아니라 수도권 지자체가 보다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마스다 중간바
생각하는 d
‘도쿄에 젊은이들을 모으려는 건 일본을 소멸시키려는 음모’라는 언급을 읽으며 지난해 정치권에서 스치듯 지나갔던 ‘메가 서울’ 공약이 떠올랐습니다. 결국 인접 지자체와 주민들의 반대 여론에 막혀 없는 일이 됐지만, 인구 전략의 차원에서 보면 아찔한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문제는 지자체 이기주의가 아닌 인구 전략이라는 보다 큰 틀에서 다뤄져야 한다는 점은 마스다 보고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이라고 할 것입니다.
마스다 메가서울
또 한 가지, 인구문제에 대해 일본 기업들이 적극 나서고 있고, 또 일본 정부도 기업의 역할을 독려한다는 점도 생각해 볼 부분입니다. 인구전략회의 의장인 미무라 아키오 일본제철 명예회장은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졸자가 줄면 앞으로 사람이 기업을 선택하는 쪽으로 방향이 바뀔 것”이라며 “(구직자들은) 결국 급여와 일하는 보람을 주는 기업을 택할 텐데, 자기 변혁 없는 기업은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일본 정부도 민간 기업에 육아휴직 현황을 공개하는 것을 단계적으로 의무화하는 등 기업의 참여를 끊임없이 독려하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의 저출생 고령화 대책 논의 과정을 보면, 정작 주요 당사자인 대다수 시민들은 논의 과정에서 배제되고, 뒷감당은 개인에게만 부담하게 하는 것 아니냐는 인상을 지우기 힘듭니다. 얼마 전 정부가 내놓은 연금 개혁안 역시 개인이 얼마나 더 내고 덜 받을 것인가에만 집중했을 뿐, 함께 논의되어야 하는 정년 연장 등은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정년 연장은 기업에 부담이 아닐 수 없지만, 그렇다고 개인의 ‘유리 지갑’만 가볍게 하는 식으로 인구 대책이 만들어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미 심각한 ‘노후 빈곤’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글: 미래팀 문준모 기자 moonj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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