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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가 신약에 두번 우는 환자들…구호로만 '보장성 강화' 안돼"

"고가 신약에 두번 우는 환자들…구호로만 '보장성 강화' 안돼"
▲ 외면받는 중증·희귀질환, 치료 기회 확대 방안 심포지엄

중소기업 임원으로 평범한 일상을 이어가던 이 모(55)씨는 3년 전 갑자기 냉장고 문을 열기도 어려울 정도로 손가락 끝이 아프고, 계단 오르기가 버거울 정도로 숨이 차거나 목소리가 잘 안 나오지 않았습니다.

동네 피부과와 이비인후과를 전전하던 이 씨는 대학병원을 찾은 끝에 '쇼그렌증후군'을 진단받았습니다.

쇼그렌증후군은 희귀 자가면역질환 중 하나로, 면역세포가 관절, 피부, 소화기, 호흡기 등 전신을 침범하면서 근육통이나 만성 소화장애, 기관지염 등 다양한 신체 이상을 일으킵니다.

이 씨는 염증이 폐까지 침투해 진행성 폐섬유증까지 같이 생긴 경우였습니다.

이 씨는 호흡기 증상이 심한 날에는 숨이 안 쉬어져 산소 호흡기를 단 채로 침대에 누워만 있어야 했습니다.

마른기침이 끊이지 않았고 투병 이후 체중도 15kg이나 빠졌습니다.

이런 이 씨에게 주치의는 26%가량 남아있는 폐 기능에 응급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오페브'라는 신약 복용을 권고했습니다.

올해 2월부터 이 약을 먹은 후 이 씨는 다행히 폐 기능 저하가 늦춰지는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약이 비급여여서 이대로라면 매달 150만~300만 원 정도가 드는 약값을 평생 부담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 씨는 "아내는 기약 없는 간호와 약값 부담으로 눈물만 흘리고 있다"며 "한번 손상되면 회복이 불가한 폐 기능의 특징상 약 복용을 중단할 수 없는 만큼 정부가 오페브 급여화에 힘써주기를 부탁드린다"고 호소했습니다.

서울에 사는 김 모(61)씨는 10년 전 갑자기 가슴이 쥐어짜는 듯 아프고 어지러워지는 증상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폐색성 비대성 심근병증'이라는 질환을 진단받았습니다.

처음엔 '심장이 두꺼워지는 병' 정도로 이해했지만, 이때부터 고통의 나날이 시작됐습니다.

참을 수 없는 가슴 통증은 아침에 눈을 뜬 순간부터 몰려와 밤에 누울 때까지 계속됐고, 이 고통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어 수면제를 달고 살아야 했습니다.

더욱이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 보이는 탓에 주변인들이 얼마나 힘든지를 이해하지 못하면서 심리적 고립감도 커져만 갔고, 결국 우울증까지 앓게 됐습니다.

그러다 작년부터는 심장이 더 두꺼워지면서 증상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해졌습니다.

이때 주치의로부터 '캄지오스'라는 신약을 소개받았습니다.

비급여라서 월 200만 원이 넘는 약값이 큰 부담이었지만, 이 약을 먹고 난 후 1주일이 지나자 십 년 동안 괴롭혔던 증상들이 사라졌다는 게 김 씨의 설명입니다.

몸도 훨씬 가벼워지고 예전에는 할 수 없던 일들이 가능해지면서 김 씨에게는 그동안 포기했던 등산과 자전거 타기를 아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작은 소망도 생겼습니다.

그러나 김 씨 역시 고액의 약값을 평생 부담할 수 있을지가 큰 걱정입니다.

김 씨는 "나처럼 이 약을 만나 삶에 대한 희망의 불씨를 되살리는 경우도 있지만, 주변에는 한 달 월급에 달하는 비싼 약값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는 환자들도 많다"며 "캄지오스가 하루빨리 건강보험 적용을 받아서 이 병을 앓고 있는 모든 환자가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KAMJ)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전진숙 의원, 이주영 의원이 11일 오후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공동 개최한 '외면받는 중증·희귀질환, 치료 기회 확대 방안' 심포지엄에서는 이 씨와 김 씨처럼 희귀질환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전달됐습니다.

정부가 거액의 약값 부담으로 치료 사각지대에 놓인 희귀질환의 보장성 강화에 적극 나서달라는 게 이들 주장의 핵심입니다.

전문가들도 환자들의 이런 호소에 공감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유승래 동덕여대 약대 교수는 이날 '신약의 치료군별 약품비 지출현황' 발표를 통해 정부의 약제비 적정화 방안 도입 이후 등재된 신약의 최근 6년간 지출 비중이 총약품비 대비 13.5%로, 비교 대상으로 삼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 26개 국가 중 최저 수준이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2007~2022년 국내에 276개의 신약이 등재된 것과 달리, 같은 기간 OECD 국가에서 약품비 지출내용이 확인되는 신약은 639개에 달해 차이가 컸다고 평가했습니다.

유 교수는 "지속해서 삶의 질을 악화하고 질병 부담을 초래하는 질환에 대해서는 경제성 평가 면제와 위험 부담제 대상 추가 등의 조치를 통해 신약을 적기에 도입하고, 비급여 부담을 완화해야 한다"며 "특히 주요국들과 비교해 환자 부담이 큰 질환은 혁신 신약의 급여화를 포함한 치료 보장성 강화 우선순위에 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신약에 대한 급여화가 늦어지면서 국내에서 유독 신약 출시가 지연되는 '코리아 패싱'이 일어나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이진한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 부회장(동아일보 의학전문기자)는 "주요 국가의 약제 도입 현황을 보면 한국에서만 급여가 되지 않는 약제들이 많아지면서 신약이 뒤늦게 출시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이런 패싱 문제를 해결하려면 건강보험재정 지출구조 개선과 환자 치료 지원 확대 등 정부와 산업계의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최은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도 '한국 중증·희귀질환 치료 접근성 현주소'를 주제로 한 발표에서 "희귀질환에 대한 정부의 의료비 지원은 점차 강화되고 있지만, 여러 측면에서 아직 개선되어야 할 정책적 수요가 존재한다"며 "희귀질환자의 다양한 상황과 상태에 따른 맞춤형 치료계획과 사회적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습니다.

(사진=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 제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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