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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멀라 해리스가 대선에서 승리하는 법 (마이클 샌델 칼럼) [스프]

[뉴욕타임스 칼럼] How Kamala Harris Can Win, by Michael J. Sandel

0802 뉴욕타임스 번역
 
* 마이클 샌델은 하버드대학교에서 정치사상을 가르친다.
 

카멀라 해리스는 짧은 시간 안에 해야 할 일이 무척 많다. 선거팀을 다시 꾸리고, 러닝메이트를 새로 골라야 하며, 유권자들에게 다시 정식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지금 그에게 주어진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책무는 이번 선거가 무엇에 관한 선거인지 가려내는 일이다.

민주주의를 지키자, 법치를 바로 세우자, 여성의 몸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보장하자. 지난 일주일간 해리스가 첫 유세를 펴면서 도널드 트럼프에게 다시 백악관에서 4년의 시간을 허락해선 안 되는 이유로 꼽은 것들이다. 해리스는 여성의 임신중절권을 보장하기 위해 싸우는 투사이자, 전직 검사이기도 하다. 그래서 위의 이슈를 캠페인이 전하는 메시지의 중심에 놓기에 딱 알맞다. 그는 트럼프가 유죄를 선고받은 범죄자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지지자들의 열띤 호응을 끌어내곤 한다. 지난 23일, 밀워키에 있는 한 체육관에서 진행한 자신의 공식 유세 첫 번째 연설에서 해리스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모든 종류의 가해자들과 싸워봤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분명히 말하지만, 저는 도널드 트럼프 같은 유형의 사람을 잘 압니다."

그러나 단지 트럼프에 맞서고, 임신중절권을 옹호하는 것이 전부가 돼서는 안 된다. 트럼프를 제대로 물리치려면 해리스는 트럼프가 그간 악용해 온 사람들의 정당한 불만에 대해 제대로 된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많은 미국인, 특히 대학 학위가 없는 미국인들이 느끼는 불만은 곧 자기들의 목소리가 무시당하고, 자기들이 하는 일이 존중받지 못하며, 엘리트들이 자기와 같은 보통 사람을 깔본다는 생각이다. 지난 몇십 년간 노동자 계급은 점점 소외됐고, 민주당과 노동자 계급의 관계도 소원해졌다. 해리스는 이 관계를 복원할 수 있는 메시지를 던져야 한다.

캘리포니아를 대표하는 연방 상원의원을 지낸 이력 탓에 해리스가 그런 메시지를 만들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트럼프도 곧바로 해리스를 "급진 좌파 미치광이"로 몰아세우며 공세를 펼쳤다. 그러나 해리스가 정말로 마가(MAGA) 열풍으로부터 미국을 구해내는 진보 정치를 구현하고 싶다면, 도전해야 한다. 사람들의 정당한 불만에 대한 해결책을 어떻게 제시하느냐가 11월 선거의 승패를 가를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

미국에 만연한 분노와 정치적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려면 민주당은 우선 어쩌다 우리가 지금처럼 불안정한 역사적 순간에 봉착했는지 이해해야 한다. 압도적인 다수의 미국인(약 85%)은 정치 지도자가 자기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고 생각한다. 또 자신들의 삶을 통치하는 세력을 구성하는 데 자신들이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데 좌절한다. 이번 선거에서 공화당이 내세운 가장 강력한 구호인 물가, 이민 문제의 기저에도 이러한 박탈감이 깔려 있다.

만약 해리스가 유권자 대부분이 느끼는 이런 박탈감을 외면한 채 계속해서 경제적인 지표나 숫자만 늘어놓는다면, 유권자들은 자신들의 불만에 귀 기울이지 않는 해리스에게 실망할 수 있다. 그럼, 해리스는 지금 여론조사대로 끝내 트럼프를 넘어서지 못할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 아래서 경제 지표는 우리에게 익숙한 숫자로 보면 매우 준수했다. 실업률은 낮았고, 일자리는 꾸준히 늘어났으며, 임금도 올랐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의 그림자가 너무 짙게 드리운 탓에 유권자들은 대체로 바이든 행정부의 경제에 박한 평가를 내린다. 왜일까? 물가라는 게 단지 계란 한 판 가격에 그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치솟는 물가 때문에 당혹감과 일상적인 무기력감을 느꼈다. 아무리 내가 열심히 일해봤자, 돈을 얼마를 벌어봤자 남들보다 잘 살기는커녕 남들만큼 살기도 어렵다는 느낌에 괴로워했다.

또한, 합법적인 체류 자격 없이 불법으로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들어오는 이민자 문제가 왜 남부 국경에서 한참 멀리 떨어진 사람에게도 중요한 문제가 되는 걸까? 사람들이 불법 이민자들은 죄다 범죄자, 강간범, 정신병원에 수용됐던 환자들이라는 트럼프의 요란한 선동을 믿어서 그러는 건 아니다. 대신 사람들은 자국의 국경을 똑바로 통제하지 못하는 나라는 스스로 운명을 통제하지 못하는 나라로 여긴다. 또 우리나라가 자국민보다 낯선 외국인, 이방인에 더 우호적인 나라로 보이는 걸 반길 사람도 많지 않다.

경제 구조를 다시 짜는 일과 공동의 시민의식을 다듬는 일은 서로 관련이 없는 일처럼 보일 수 있다. 첫 번째 과제는 물가, 세제, 무역 정책을 손봐야 하는 일이고, 두 번째 과제는 정체성, 공동체와 시민들끼리 상호 존중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사실 동일한 정치적 과제의 일부다. 경제 제도는 단지 소득과 부를 재분배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사회적인 인정과 위상의 배분까지 영향을 받는다.

그동안 잃어버린 유권자들의 신뢰를 되찾으려면 민주당은 무엇보다 먼저 자신들이 지난 수십 년간 주류 공화당과 함께 추진해 온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부자와 권력자들에겐 엄청난 이득을 가져다줬지만, 대다수 노동자는 일자리를 잃고 정체된 임금에 박탈감만 커졌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소수의 승자는 이렇게 쌓은 부를 이용해 고위직을 차지하고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했다. 정부는 경제 권력이 집중되는 걸 견제하지 못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민주당과 공화당은 합심해서 월스트리트의 규제를 대폭 완화해 줬다. 그리고 2008년 금융위기로 전체 시스템이 붕괴할 위기에 처하자, 수십억 달러의 공적 자금을 투입해 대형 은행들을 잇달아 살려줬지만, 평범한 시민들은 금융위기의 파고를 고스란히 맞도록 내버려뒀다.

2016년이면 40년간 지속된 신자유주의 세계 질서가 1920년대 이후 전례 없는 수준의 소득과 부의 불평등을 낳은 시점이었다. 노동조합은 계속 쇠퇴했다. 노동자가 창출한 이윤 가운데 가져가는 몫은 점점 더 작아졌다. 전체 경제에서 금융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커졌지만, 실물 경제를 떠받치는 공장, 주택, 도로, 학교와 같은 생산적인 자산보다 위험성이 큰 파생상품처럼 투기 자산에 돈이 몰렸다.

두 정당은 노동자들의 피해를 구제하기 위해 직접 나서는 대신 노동자들에게 대학 학위를 취득해 스스로 가치를 높이라고 조언했다. 정치인들은 "당신이 얼마를 벌지는 당신이 얼마나 배운지에 달렸다"는 식으로 말했다. 열심히 노력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다만 이런 조언을 건네는 엘리트들은 이 조언을 듣는 사람이 느낄 수밖에 없는 암묵적인 모욕감을 눈치채지 못했다. 새로운 경제 질서에 적응하지 못하고 실패한 사람은 충분히 노력하지 않은 사람으로, 그 사람 잘못이란 말이 된다. 결국, 가뜩이나 경제적으로 힘들고 속상한데, 성공한 자들은 계속해서 나를 무시하는 투로 세상을 설명한다. 이 상황이 쌓이고 쌓여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으로 이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트럼프의 경제 정책은 그를 대통령으로 뽑아준 사람들에게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는 서민노동 계급이 기대고 있는 의료보험제도를 없애버리려 했다가 실패했다. 그의 감세 정책의 혜택은 거의 다 대기업과 부자들이 누렸다. 그러나 어쨌든 엘리트와 그들이 주도한 세계화를 향해 드러내는 트럼프의 적개심은 여전히 효과가 있다. 2020년 조 바이든은 트럼프를 꺾고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대학교 학위가 없는 유권자들은 여전히 트럼프를 찍었다.

오랫동안 민주당을 대표하는 주류 정치인이던 바이든은 급진적이지 않다. J.D. 밴스가 공화당 전당대회 후보 수락 연설에서 지적했듯 바이든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찬성했고,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에 앞장선 인물이며, 이라크 전쟁에도 찬성했다. (다만 밴스가 아마 알면서도 일부러 빼먹고 언급하지 않았겠지만, 대부분 공화당원도 바이든과 똑같이 투표했다. 북미자유무역협정이나 중국과의 무역 관계 정상화에는 민주당보다 공화당 의원들의 찬성표가 더 많았으며, 이라크 전쟁을 기획하고 주도한 건 모두 알다시피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딕 체니 부통령, 그리고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이었다.)

그러나 그간의 중도적인 성향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바이든은 중도적인 정책을 펴지 않았다. 이는 포퓰리스트들의 반발을 샀고, 자연히 트럼프의 세를 불려줬다.

바이든 대통령은 인프라와 제조업, 일자리, 청정에너지 분야에 야심 찬 공공 투자를 이어갔다. 마치 뉴딜 정책을 펴던 강력한 정부의 모습이 떠오를 정도였다. 노동조합의 단체교섭권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반독점 규제를 다시 강화하는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덕분에 바이든은 현대 대통령 가운데 정책적으로 가장 큰 유산을 남길 대통령이 됐다.

그런데도 여전히 그는 인기가 없었다. 바이든 대통령 본인과 참모들은 한동안 이 문제를 타이밍 문제로 여긴 것 같다. 공공 부문 투자가 일자리를 창출하거나 눈에 띄는 결과를 내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좀 더 근본적인 데 있었다. 바이든은 단 한 번도 광범위한 통치 비전을 제시한 적이 없다. 그가 펴는 정책이 새로운 민주주의 프로젝트에 어떻게 이바지할 수 있는지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른바 '큰 그림'을 강조해야 하는 필요를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는 행정부가 새로 만든 기관, 부처, 그리고 입안한 정책이 기업의 과도한 권력을 견제함으로써 미국의 통치 방식에 관해 대중들의 발언권이 제한되는 걸 막는 장치가 될 거라고 미국인들을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설명했다.

바이든은 그에 비하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신자유주의 세계화 기조와 결별하고, 공익을 위해 정부가 나서서 시장을 규제하는 방식을 따르기로 했을 때 그는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하지도, 자세히 설명하지도 않으면서 그냥 정책을 폈다. 그는 자신이 속한 민주당이 지금 미국에서 승자와 패자의 격차를 심화한 정책에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는 어떤 주제의 비전보다도 정치적인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유형의 정치인일지 모른다. 혹은 자신이 앞서 모신 대통령의 시장 친화적인 정책과 결별한 사실을 굳이 강조하고 싶지 않았던 걸지도 모른다. 그의 미국 구제 계획, 인프라 투자 및 일자리법, 칩스 및 과학법, 인플레이션 감축법 등은 하나같이 파급 효과가 매우 큰 정책이지만, 정치적으로는 감흥이 없었다. 바이든 대통령의 임기는 법을 제정하고 정책을 펴는 건 잘했지만, 감동을 주는 데는 실패한 기간이었다.

그래서 결국, 바이든은 트럼프에게 계속 열세였다. 트럼프는 정책적으로는 별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여전히 시대의 분노를 적극적으로 어루만지며 여기에 호소하는 마가(MAGA) 운동을 등에 업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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