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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기가 다 번역해주는데…외국어 공부는 이제 무용지물일까? [스프]

[뉴욕타임스 칼럼] Have a Foreign Language Love Affair This Summer, by Mark Vanhoenacker

0730 뉴욕타임스 번역
 
* 마크 바노에네커는 비행기 조종사이자, 작가다.
 

작년 늦가을 어느 아침,  보잉 787 조종사인 나는 런던 히스로 공항을 이륙해 이튿날 아침 도쿄 하네다 공항에 착륙했다. 그날 오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정원 가운데 하나인  리쿠기엔 정원의 단풍을 즐기며 산책하던 중, 나는 개울가의 한 나무 표지판 앞에 멈춰 섰다. 일본어를 오랫동안 공부했지만, 미끄러운 바위를 조심하라는 내용의 표지판에는 내가 모르는 글자가 몇 개 들어 있었다. 나는 곧장 최근에 알게 된 번역기를 켜서 표지판을 스캔했다.

요즘 번역기 앱의 발전은 놀라울 정도다. 손가락 하나로 뭐든지 번역되는 세상이니, 외국어 공부는 이제 무용지물인 걸까?

그렇지 않다. 외국어 공부에서 더 큰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것은 기술이 발전해 외국어 공부가 쉬워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언어에 애정이 컸다. 매사추세츠주 서부의 시골 마을에서 외국어란 지구본, 세계지도, 그리고 내가 언젠가는 먼 나라로 몰고 가기를 꿈꾼 비행기와 같은 환상의 존재였다. 나는 벨기에 출신인 아버지로부터 프랑스어와 네덜란드어를 조금씩 배웠고, 고등학교에서는 스페인어 수업을 들었다. 그렇지만 내가 정말로 사랑하게 된 언어는 바로 어느 해 여름 가나자와에서 홈스테이를 하며 배우기 시작한 일본어다.

1991년 그해 여름 이후 세상은 많이 바뀌었다. 그러나 외국어 공부에 투자할 이유는 여전하다. 영어의 세계적인 영향력이나 첨단 번역 도구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미국  기업이나  정부에 필요한 외국어 인재는 여전히 공급 부족 상태다. 반면 2017년 기준, 미국 초중고교생 가운데 외국어를 배우는 학생은 다섯 명 중 한 명꼴이고, 미국 대학생의 외국어 수업 수강률은 2009~2021년 3분의 1 가까이 줄었다. 바꿔 말하면 외국어를 배우는 이들에게는 국내외의  다양한 진로가 열려 있다는 뜻이다.

사실 모어가 영어면 여행할 때 딱히 외국어를 쓸 일이 많지 않은 세상이 된 것도 사실이다. 메뉴판을 번역해 주거나, 심지어는 식당 종업원의 말을 실시간 통역해 주는 스마트폰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산기가 있다고 해서 수학을 배울 필요가 없다는 말에 동의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언어 학습은 기억력과 창의력, 집중력 증진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전반적인 학업 성취도를 높이고, 노화에 따른 신경 감퇴를  늦추는 효과도 있다. 우리 모두에게 외국어 학습은  일종의 뇌 운동인 셈이다.

나에게 외국어 공부의 장점은 비단 도쿄행 비행기에서 고객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거나, 착륙 후 세계 최대의 메트로폴리스를 더욱 쉽게 탐험할 수 있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지구상 어디에서나 일본어는 나에게 든든하고 무한한 매력과 흥미의 원천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세는 말(물건을 세는 단위)'이다. 물론 영어에도 그런 단어가 있다. 종이나 얇은 반죽, 금속 따위를 셀 때 '장(sheet)'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식이다. 그러나 일본어에는 연필이나 강, 비행기처럼 길고 가는 것을 셀 때 사용하는 '혼(ほん)', 꽃이나 붙어있는 바퀴(떨어져 있는 바퀴를 세는 단어는 또 다르다)를 셀 때 사용하는 '린(りん)' 등 수백 가지의 세는 말이 존재한다.

일본어를 배우기 전에 나는 꽃과 바퀴의 모양이 비슷하다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 나는 일본어의 의성어도 좋아한다. 일본어 화자들은 눈송이의 모습을 묘사할 때 꽃잎처럼 날리며 떨어지는 것을 '하라하라( らはら)', 추운 밤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내리는 모습을 '신신(しんしん)'이라고 한다. 일본어를 배우기 전에 나는 눈이 내리는 모습이 얼마나 다양한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의미를 구성하는 다양하고도 경이로운  미묘함을 잘 전달하지 못하는 번역기는 외국어 공부가 가져다주는 즐거움을 방해한다.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또한 새로운 소설과 시, 노래의 세계가 열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나서 여행을 떠나면 여행이 즐거워지고 경험의 깊이를 더할 수 있다. 점점 더 많은 이들이 의식과 개념을 갖춘 여행객이 되고자 노력하는 가운데, 능숙하지 않더라도 현지 언어로 단어 몇 개를 구사하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쉽게 갖출 수 있는 예의다.

지난달에 나는 배우자와 함께 리투아니아를 여행했다. 내가 당장 리투아니아 소설을 읽을 수준은 아니지만, 리투아니아 전통음식  키비나이(kibinai)를 먹으러 식당에 갈 때마다 썼던 '감사합니다'라는 뜻의 'ačiū'라는 단어를 잊을 일은 없을 것이다. 휴가가 끝나고 나서 이렇게 남는 외국어 단어들이 나에게는 가장 소중한 기념품이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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