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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비둘기 사격'도 있었던 "역대 최악" 그 파리 올림픽, 이번엔? [스프]

[별별스포츠+]

권종오 별별스포츠+
이번 2024 파리 하계올림픽은 1924년 이후 100년 만에 다시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올림픽입니다. 1900년에 첫 번째 올림픽을 치렀기에 이번이 파리로서는 세 번째 개최하는 올림픽입니다. 지금까지 하계올림픽을 3차례 개최한 도시는 영국 런던(1908년, 1948년, 2012년)이 있습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도 1932년과 1984년에 이어 오는 2028년에 세 번째 올림픽을 치르게 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올림픽을 정확하게 100년 만에 다시 개최하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최근 프랑스 정치 상황이 어지러운 데다 테러 위험, 무더위 등 여러 불안 요소들이 있지만, 파리로서는 그야말로 뭔가 보여주겠다며 단단히 벼르고 있습니다.
 

'흑역사'로 남은 1900 파리 올림픽

1896년 제1회 아테네 올림픽에 이어 1900년 2회 올림픽이 파리에서 열렸습니다. 당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은 바로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였던 프랑스인 피에르 드 쿠베르탱. 1회 올림픽을 고대 올림픽 발상지 아테네서 개최한 뒤, 두 번째 대회를 쿠베르탱 자신의 조국인 프랑스 파리에서 치르기로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올림픽은 역대 최악의 올림픽으로 꼽힐 정도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살아 있는 비둘기 사격' 금메달리스트 레온 드 룬덴
이때 별의별 기상천외한 종목들이 많았는데 예를 들어 '살아있는 비둘기 사격'(live pigeon shooting), '대포 쏘기', '인명구조' 등이 그것입니다. 이 종목들은 너무 잔인하고 위험하다는 혹평을 받으며 이때 딱 한 번 하고 폐지됐습니다.

특히 '살아있는 비둘기 사격' 종목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이벤트였습니다. 벨기에의 레온 드 룬덴이 비둘기 21마리를 명중시켜 1마리 차이로 2위를 제치고 금메달을 차지했는데 비둘기의 비명 소리와 함께 그 피가 경기장에 흘러넘쳐 그야말로 '목불인견'이었다고 합니다.

이렇듯 쿠베르탱 IOC 위원장으로서도 1900년 파리 올림픽은 본인의 '흑역사'로 남았습니다. 그래서 이를 만회하기 위해 24년 후인 1924년 파리에서 올림픽을 다시 유치했는데 쿠베르탱이 IOC 위원장으로 마지막으로 개최한 대회이기도 합니다.
 

첫 라디오 중계와 선수촌 첫 개장

1924 파리 올림픽 당시 선수촌. 사진 : 게티이미지
1924년 파리 올림픽은 올림픽 역사상 최초의 기록들을 여러 가지 남겼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최초로 올림픽 선수촌을 건설했다는 점입니다. 파리 올림픽 주경기장이었던 '스타드 올랭피크 이브 뒤 마누아르' 경기장 근처에 목조 오두막을 지어 전용 선수촌으로 사용했습니다. 수도 시설도 갖춰져 있었고, 우체국, 신문 판매점, 환전소, 미용실, 식당 등이 함께 있었습니다.

이 대회에서는 최초로 라디오 생중계도 이뤄졌습니다. 올림픽 취재를 공식적으로 허가받은 기자 724명이 경기 상황을 전했는데 대부분 해외에서 온 기자였습니다. 이는 올림픽의 인기와 전 세계적인 관심이 높아졌다는 증거이었습니다.

최초의 올림픽 주경기장도 건설됐습니다. 1924년 파리 올림픽 주경기장이었던 '스타드 올랭피크 이브 뒤 마누아르'는 이후 프랑스에서 열린 1938년 FIFA 월드컵 결승전이 열린 곳이기도 합니다. 이곳은 몇 차례 개보수를 거쳐 이번 올림픽에선 하키 경기장으로 사용될 예정입니다. 또, 최초의 50m 규격 수영장인 '투렐 수영장'이 지어졌는데 이번 올림픽에서는 수영 선수들의 훈련 장소로 이용됩니다.

최초의 폐회식이 열린 대회도 1924년 파리 올림픽이었습니다. 처음으로 지금과 비슷한 폐막식 형식을 갖추게 됐는데 IOC 깃발, 1896년 제1회 올림픽 개최국 그리스의 국기와 더불어 개최국인 프랑스와 다음 개최국인 네덜란드의 국기가 나란히 게양되는 행사가 진행됐습니다.
 

1924 파리의 추억 '불의 전차'

영화 '불의 전차' 중 해변 달리는 장면
1981년 제작된 영국 영화 '불의 전차'(Chariot of Fire)는 지금까지 불후의 명작으로 평가됩니다. 1982년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작품상, 음악상, 각본상, 의상상 등 4관왕을 차지했는데 특히 선수들이 해변을 달리는 장면에 깔린 음악, 즉 반젤리스가 작곡한 선율은 영화사에 명장면으로 남아 있습니다. 조금 각색됐지만 이 영화는 바로 1924년 파리 올림픽에 출전했던 두 전설적인 영국 육상 선수 에릭 헨리 리델과 해럴드 에이브러햄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해럴드 에이브러햄스. 사진 : 게티이미지
에이브러햄스는 100m 결승에서 10.6초의 기록을 세우며 먼저 금메달 획득한 뒤 400m 계주에서도 활약하며 영국에 은메달을 선사했습니다. 에이브러햄스는 1년 뒤 다리 골절로 은퇴했는데 이후 언론계로 전향해 BBC 라디오의 올림픽 해설자가 됐습니다.

에릭 리델. 사진 : 게티이미지
에이브러햄스의 영국 국가대표 동료였던 리델은 종교적인 이유로 주종목 100m 결승 경기에 출전하지 않았습니다. 리델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는데 경기가 일요일에 열려 출전을 포기한 것입니다. 이후 리델은 200m에서 동메달을 획득했고 이틀 뒤 400m 결승에 출전했습니다. 자신의 주종목이 아니어서 우승을 기대하지 않았는데 47초 6의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따내는 신화를 썼습니다.

하지만 파리 올림픽 이후 리델의 인생은 기구했습니다. 에든버러 대학 졸업 후 1925년 23살의 나이에 복음을 전하겠다며 중국으로 갔는데 톈진에서 12년, 산둥반도에서 7년 동안 선교사로 활동했습니다. 1937년 중일전쟁이 터진 다음 일본군의 수용소에 갇혀 있다가 1945년 2월, 43살의 나이에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에이브러햄스와 리델 두 선수의 이야기는 1981년 영화 '불의 전차'로 소개되며 전 세계에 알려졌습니다. 이 영화는 엄청난 인기를 끌며 여러 패러디도 탄생시켰습니다. 영화상에서 에이브러햄스가 대학 교정에서 동료 학생들의 응원 속에 1대1 달리기 대결을 하는 명장면이 있는데 이것을 훗날 영국의 전설적인 육상 스타 세바스찬 코(현재 국제육상경기연맹 회장)와 스티브 크램 육상 중장거리의 라이벌 두 선수가 1988년 케임브리지대학 교정에서 그대로 재연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영화 '불의 전차'를 대표하는 최고의 명장면이 해변 달리기인데 이것을 2012년 런던 올림픽 개회식 때 '미스터 빈'으로 유명한 영국 코미디언 로완 앳킨슨이 익살스럽게 재연했습니다. 미스터 빈이 키보드를 연주하다 잠깐 상념에 빠졌는데, 본인이 해변 달리기 장면의 주인공이 되어 선수들과 나란히 달리는 장면이 나와 큰 웃음을 선사하기도 했습니다.
 

슈퍼스타 누르미 - 타잔 배출

영화 '타잔'에 출연한 와이즈뮬러
그 유명한 영화 '타잔'의 주인공도 1924년 파리 올림픽 스타였습니다. 미국의 수영 선수 조니 와이즈뮬러는 1924년 파리 올림픽에서 자유형 100m, 400m, 800m 계영 금메달을 따내며 3관왕에 올랐고 수구 경기에도 출전해 동메달을 획득했습니다. 4년 뒤 암스테르담 올림픽에서도 자유형 100m와 800m 계영에서 우승하는 등 당시 최고 수영 스타였습니다.

영화계가 그의 수려한 외모와 수영으로 다져진 탄탄한 몸매에 주목하자 와이즈뮬러는 1929년 영화계에 발을 들였고, 3년 뒤 대박을 터뜨렸습니다. 1932년 영화 '유인원 타잔'의 주인공으로 나와 슈퍼스타가 됐습니다. 그래서 올림픽 수영 금메달리스트 와이즈뮬러보다 타잔으로 훨씬 더 많이 사람들의 기억에 남게 됐습니다. 영화 '타잔'은 그 이후로도 여러 버전들이 개봉했고,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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