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여운 것들”이 올해 아카데미에서 여우주연상(엠마 스톤) 등 4개 부문을 수상한 흥행 포인트가 있고, “괴물”은 나름 두터운 팬층을 보유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라는 점을 감안하면, '홀로코스트'와 '아우슈비츠'라는 매우 어두운 소재를 다루고 있는 이 영화의 선전은 조금은 뜻밖입니다.
영화 제목은 “존 오브 인터레스트”(The Zone of Interest). 지난해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그랑프리)을 받고 올해 오스카 국제장편영화상과 음향상을 받았습니다.
데뷔 후 23년 동안 이번 포함 고작 4편의 영화를 찍었으니 이 영화를 연출한 조너선 글레이저는 상당히 과작(寡作)의 감독입니다. 원래 광고와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유명했던 그가 1996년에 찍은 자미로콰이의 ‘버추얼 인새니티’(Virtual Insanity) 뮤직비디오는 지금 봐도 여전히 감각적입니다. (1997년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 ‘올해의 비디오’ 선정)
그래서일까요,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비주얼은 얼핏보면 다큐멘터리스럽도록 절제돼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한편으로는 매우 스타일리쉬합니다.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를 떠올리게하는 고차원적인 수준의 스타일리쉬함이랄까요.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폴란드의 작은 공업 도시 오시비엥침에 사는 한 독일인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가장의 이름은 루돌프 회스. 가장은 담장 너머 직장으로 출퇴근하고 부인은 살림하고 정원을 가꾸고 다섯 명의 자녀들은 전쟁 놀이나 물놀이를 하면서 마당에서 뛰놉니다. 도시에서 벗어나 한적한 전원 생활을 누리는 것, 그게 이 가족의 꿈이었고 꿈은 이루어졌습니다. 영화 속 이 가족의 일상은 서정적이고 목가적이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아버지의 직장이 바로 아우슈비츠 절멸수용소이고, 직책은 수용소장입니다. 즉, 유대인을 가스실에 처넣어 학살하는 것이 그의 임무입니다. “쉰들러 리스트”를 비롯해 지금까지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 대부분이 피해자 서사를 다뤘다면 이 영화는 유대인 학살 최후의 가해자, 그것도 그의 일터가 아닌 가정사를 다룹니다.
그러므로 평화로운 관사 담장 바로 너머 수용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이따금 뿜어져 나오는 굴뚝의 연기와 강으로 떠내려오는 재, 그리고 영화 내내 디지털 프린트의 저음역부를 차지하며 깔리는 무시무시하고 진저리쳐지는 소음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관객의 실제 눈은 아우슈비츠 사령관 가족의 지극히 평화로운 일상 생활만을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과 가슴의 눈은 지속적으로 담장 너머-110만 명이 가스실에서 살해된-를 주시하고 귀도 담장 너머에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말하지 않음으로써 말하고, 보이지 않음으로써 보이는 방식으로 -지극히 광고적인 방식으로- 관객의 이목을 사로잡습니다.
그렇다면 조너선 글레이저 감독이 이런 이율배반적인 비주얼을 통해서 도달하려고 한 아우슈비츠의 진실과 이 영화의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유명한 ‘악의 평범성’?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은 뉴요커지와 계약을 맺고 나치 전범인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취재한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내놓은 개념입니다. 한나 아렌트는 홀로코스트의 핵심 인물인 아이히만이 '자신은 그저 공무원으로서 상부의 명령에 따른 것일뿐'이라는 주장을 접하고는 ‘악의 얼굴은 평범하다’, 즉 홀로코스트는 광신도나 사이코패스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 무감각하게 자행한 일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인류 최대의 살인 공장이었던 아우슈비츠의 계보는 아돌프 히틀러-하인리히 힘러-아돌프 아이히만-루돌프 회스로 이어집니다. 힘러는 친위대와 게슈타포의 수장이고, 아이히만은 홀로코스트의 실무 총책임자입니다. 그리고 이 계보의 끝에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주인공이자 아우슈비츠 절멸수용소 소장인 회스가 있습니다.

회스는 독일 패전 이후 숨어 살다가 영국 정보부에 붙잡혀 폴란드로 넘겨진 뒤 사형을 선고받고 아우슈비츠에 마련된 교수대에 오릅니다. 교수대에 오르기 전에 그는 고백록을 남기는데, 이 글에서 그는 자신을 "나치 독일이 만든 거대한 학살 기계의 톱니바퀴"였다고 적었습니다. 이 고백록은 지난 2006년 한국에서도 “헤스의 고백록”이란 제목으로 출판된 바 있습니다.
“그렇다. 내 가족은 아우슈비츠에서 잘 살고 있었다. 내 아내, 그리고 내 아이들이 원했던 것은 모두 이루어졌다. 아이들은 자유롭게 그리고 구김살 없이 살아갈 수 있었다. 아내는 정원에 훌륭한 화단을 가지고 있었다. 억류자들이 내 처와 내 아이들의 환심을 사려고 하거나 혹은 주의를 끌기 위하여 모든 것을 잘 해주었다. (“헤스의 고백록”, 2006. 범우사)
그런데 저의 눈길을 끈 것은 이 고백록이 폴란드 당국의 '명령'에 의해서 쓰여졌다는 점이었습니다.
1960년 3월13일자 뉴욕타임스는 “살인자의 회고록(Memoirs of a Murderer)”이라는 제목의 서평에서 회스의 고백록을 다루면서 그가 고백록을 쓸 것을 “명령받았다”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조너선 글레이저 감독은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찍기 위해 아우슈비츠 박물관에 있는 다양한 사료들을 샅샅이 살펴보고 피해자와 생존자들의 증언집을 모두 읽었습니다. 당연히 루돌프 회스의 고백록도 읽었을 겁니다. 그리고 그 기록은 회스 가족의 일상사를 다룬 이 영화의 제작에 적잖은 도움이 됐을 겁니다.
조너선 글레이저 감독은 홀로코스트 영화를 가해자의 일상 서사로 그린 데 대해서 “대량 학살범 그 자체가 아니라 그런 존재가 되어버린 인간에 대해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라면서 “손쉽게 희생자들과 동일시하기보다는 우리에게 내재된 가해자와의 유사성을 보는 시도가 필요한 때라고 느낀다”라고 말했습니다.(“씨네21” 1460호)
글레이저 감독이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건 전범의 회고록이 자발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제도적으로 강제된 배경도 있겠지요. 하지만 동시기에 일제에 의해 침략당하고 짓밟혔던 우리의 상황은 어떨까요. 일부 가해자나 부역자의 자기 변명성 회고록말고는 제도에 의해 남겨진 고백록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천만 영화 “암살”에는 1949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 재판 장면이 나옵니다. 임시정부 경무국 대장이었지만 변절해 친일파가 된 염석진(이정재)이 해방 후 법정에 끌려가서 하는 대사 중에 일종의 밈이 된 말이 있습니다.
“내 몸에 일본놈들의 총알이 여섯 개나 박혀있습니다. 1920년 경성에서 데라우치 총독 암살 때 총맞은 자리입니다. 구멍이 두 개지요.”
우리는 여기서 끝나버렸습니다. 염석진은 웃통을 벗어제껴 알몸을 드러냈을지언정 진실을 털어놓을 것을 ‘명령’받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 영화에서 그는 독립군의 총에 맞아 죽었지만 그가 살아남았다한들 기록을 남길 것을 명령받았을까요.
<덧붙임>
”존 오브 인터레스트"가 전하는 옛날 이야기는 요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누군가 빵 기계에 끼어 죽고, 전철에 치어 죽고, 역사(驛舍)에서 안전 점검하다 감전사하고, 공사장 비계에서 떨어져 죽는 우리의 일상이 바로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평화로운 정원입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영화에서와 달리 비명과 절규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혹은 무감한 우리가 듣지 못하고 있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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