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취재파일➀, ➁에서 다룬 수중 수색 지시 논란과 비교해 회자는 덜 되고 있지만, 수색 전 현장 안전 점검이 적절하게 이루어졌는지는 이번 사건에 대한 수사에서 꼭 밝혀져야 하는 부분입니다. 현장의 위험 요소가 사전에 포착돼 적시에 조치됐다면 채 해병 사망을 막을 가능성은 커졌을 겁니다.
사고 발생 직후 해병대 수사단도 여기에 주목했습니다. 수사 계획서의 수사 중점 항목에는 '제대별 지휘관의 위험예지판단 등 지휘활동 여부 확인'이라고 적혀있습니다.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면 이 부작위가 채 해병의 사망으로 이어졌는지를 수사로 밝혀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사건을 이첩받은 경찰도 마찬가지로 이 부분을 들춰보고 있습니다. (SBS 6월 5일 8뉴스 [단독] 사고 당일 '위험예지활동' 없었다…'안전장비' 검토 못 해 참고) 경찰은 위험예지활동이 사고 당일 이뤄지지 않은 사실을 확인하고 배경이 무엇인지 수사하고 있습니다. 전날보다 더 위험한 수중 수색이 이뤄질 걸 예상했으면서도, 왜 사고 발생 당일에는 오히려 위험예지활동이 이뤄지지 않았는지 규명하겠다는 겁니다.
위험예지활동은 왜 필요한가
현장에서는 위험예지판단 또는 위험예지활동(위험예지훈련)으로 뒤섞여 쓰이지만 같은 의미입니다. 말 그대로 이 수색 작전이 위험하리라는 걸 미리 알았느냐는 뜻입니다. 알았다면 그에 상응한 조치를 했느냐는 겁니다.
위험예지훈련 개념을 이해하려면 위험성평가부터 알아야 합니다. 군 관계자는 "위험성평가의 내용이 실제 현장에서 행동화 되는 게 위험예지훈련"이라고 설명합니다. 국방안전훈령 2조는 위험성평가를 '국방 임무 수행 및 부대활동 수행 시 사전에 유해·위험요인을 파악하고,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부상 또는 질병, 국방자산의 피해 발생 가능성과 중대성을 추정·결정하고 감소 대책을 수립하여 실행하는 일련의 과정'이라고 규정합니다.
군복무를 한 남성이라면 누구나 한 번씩은 해 봤을 수류탄 훈련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훈련에 앞서 작전, 군수, 통신 등 군의 각 기능 단위에서는 수류탄에 안전을 위협할 요인은 없는지, 훈련 교장에 안전 여건은 잘 갖춰져 있는지, 수류탄 사고가 발생할 경우 가용한 소방이나 구급 시설은 준비되어 있는지 등을 점검하고 지휘부에 보고합니다. 이 평가를 바탕으로 훈련이나 작전 상황에서 위험에 대비해 실제 운용하는 게 위험예지활동(또는 훈련)입니다. 훈령 17조에는 '각급 기관의 장은 (중략)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는 유해·위험요인에 대한 감소대책을 수립하고 개선하는 등 위험성평가를 실시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경찰은 채 해병 부대 간부들을 소환해 사고 당시의 위험성평가와 위험예지활동에 대해 캐물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경북경찰청은 지난 3월쯤 채 해병 부대 초급 간부들을 포함해 폭넓게 소환했습니다. 경찰은 여기서 "간부로서 어떤 안전 대책을 마련하고 조치했느냐"는 취지로 물으며 사고 전 마땅히 이뤄졌어야 할 위험성평가와 위험예지활동 여부, 그 적절성을 확인했습니다. 경찰청은 이어 채 해병 순직 299일 만인 지난 5월 13일 임성근 당시 해병1사단장을 첫 소환 조사했습니다. 임 전 사단장은 이 자리에서 '작전에 대한 건 해병 1사단의 권한이 아니므로 실제 위험을 예고하고 평가한 사실은 없다는 것'이냐는 경찰 질의에 "예"라고 답한 뒤 "그러나 제가 현장지도 중에 눈으로 봐도 확인할 수 있는 점은 조언해주며, 노하우를 공유했다"고 답했습니다.
7대대장 측 "안전성 얘기가 씨알이나 먹혔겠느냐"
채 해병 사고 전날인 지난해 7월 18일. 실종자 수색에 나선 포병대대는 수색 구역 10km에 대한 위험예지활동을 실시했고, 급류 형성과 도로 유실, 산사태 구간 등 수색의 위험성까지 구체적으로 보고가 이뤄졌습니다. 보고를 받은 여단장은 "무리하게 하천에 접근하지 말고 위험 지역은 도로 위주로 정찰하라"고 지시했습니다. 하지만, 사고 당일에는 이 과정이 생략됐습니다. 경찰은 이와 관련해 당일 임 전 사단장의 현장 방문이 예정돼 있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포병 11대대장 측은 위험예지활동을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사단장이 시찰을 오기로 해 상황이 급박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채 해병의 직속 부대장이던 7대대장 측 변호인도 위험성평가와 위험예지훈련에 대해 "중대장이나 대대장 등 지휘관이 해야 하는 임무"라면서도 "(당시 상황에서) 거기에 대고 무슨 안전성 얘기가 씨알이나 먹혔겠느냐"고 주장합니다.
이와 관련해 7월 18일 임 전 사단장은 경북 예천군 벌방리에 파견된 포병 3대대 9중대를 방문했습니다. 해병대 수사단 조사 내용에 따르면, 현장 지휘관(9중대장)은 "처음 온 작전지역이라 현장 확인 목적으로 병력들을 대기시키고 작업 간 안전 위해 요소를 파악하고 있었는데 사단장께서 말을 끊으며 '빨리 현장에 들어가라'고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지휘관은 "(사단장이) 상황을 모르면서 병력 투입만 재촉해 뒤에서 저를 욕보이게 해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안전 점검을 하려 했지만 임 전 사단장이 묵살했다는 취지의 주장입니다. 7대대장 측은 "이런 분위기가 각 부대에 다 퍼졌는데 그 와중에 7대대가 안전 관련 브리핑이라도 할 수 있었겠느냐"고 주장했습니다.
사단장 "오히려 중대장보다 수준 높은 안전 교육 조치" 반박
'사단장의 질책 때문에 안전 점검을 하지 못했다'는 9중대장 주장에 대해서는 '중대장이 '안전 위해요소를 파악하고 있었다고 심중에 두었다'고는 하지만 사단장에게는 보고하지 않은 상황이었다"고 반박했습니다. 즉 9중대장이 안전 점검을 할 생각이었는지를 당시의 자신은 알 수 없었다는 겁니다. 그러니 자신이 안전 점검을 묵살한 게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이 해명은 '하겠다는 안전 점검을 막은 적은 없다'는 소극적인 태도인데, 이를 의식한 듯 임 전 사단장은 "곧바로 이어서 모든 것을 일시 중지하고 옆에 있는 여단장에게 제반 과업 수행 및 안전교육을 하도록 지시한 점까지 더하면, 오히려 중대장보다 수준 높은 안전교육을 여단장을 통해서 조치했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임 전 사단장 설명에 의하면, 예하 지휘관들은 본인이 강조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이를 따르지 않고 안전보단 수색, 점검보다는 속도에 더 무게를 뒀다는 뜻이 됩니다.
형법상 '조건설'과 '원인설'…경찰의 판단은
조건설은 '선행 사실이 없었다면 결과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해석으로, 인과관계를 폭넓게 인정하는 견해입니다. 위에서 지적한 임 사단장의 발언과 행위가 없었다면 위험예지활동을 안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채 해병이 복무했던 부대를 전역한 한 해병대 예비역은 기자에게 "나 때는 사단장이 태권도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주말 내내 연병장에 매트 깔아놓고 태권도 대련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상명하복이 생명인 조직일수록 최상급자의 말 뿐 아니라 취향, 표정과 손짓 하나하나가 사실상의 지침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조건설을 뒷받침하는 쪽입니다.
다만 업무상과실치사를 다룬 판례의 경우, 조건설을 전제로 하면서도 결과 발생에 '중요한' 영향을 준 원인만 인과관계로 인정하는 원인설이 다수입니다. 경찰은 법리 검토를 바탕으로 이르면 이달 안으로 임 전 사단장의 검찰 송치 여부를 최종 판단할 방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