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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물가에 무료 급식 계속할 수 있나…30년 넘은 곳마저 휘청 [스프]

[더 스피커] 무료 급식 단가 4천 원? 약자에게 더 가혹한 '푸드플레이션'

김형래 더 스피커 김형래 더 스피커 
서울 영등포역 근처의 한 골목길엔 매일 오전 11시면 긴 줄이 늘어섭니다. 무료 급식소 '토마스의 집'을 찾아온 사람들입니다. 이곳은 지난 1993년부터 생계가 어려운 홀몸노인이나 노숙인들에게 한 끼 식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5월 28일 토마스의 집에 찾아가 봤습니다. 이날의 점심 메뉴는 밥과 김치, 어묵탕, 제육볶음과 깻잎장아찌. 배고픈 사람들에게는 영양을 챙길 수 있는 소중한 음식입니다. 식사를 마친 뒤엔 다음 날 점심까지 끼니를 걸러야 하는 사람들을 위해 라면도 하나씩 제공합니다. 배식 차례를 기다리던 한 이용자는 "기초연금 32만 7천 원으로 한 달을 버티다 보니 하루에 한 끼 먹기도 어렵다. 여기가 아니면 수많은 사람이 꼼짝없이 굶어야 한다"며 고마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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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벌써 30년 넘게 수많은 사람의 배를 채워 준 토마스의 집이 휘청거리고 있습니다. 얼마 전엔 정말로 식사를 제공하기 어려운 지경까지 갔다가 기부받은 떡으로 간신히 떡국이라도 끓일 수 있었습니다. 작은 급식소인 이곳은 정부 지원도 전혀 없고, 대형 급식소들처럼 고정 후원도 많지 않습니다. 지금까지는 십시일반 모이는 식료품 후원으로 버텨 왔는데 최근 전례 없는 식재료 물가 상승에 갈수록 먹거리 후원이 줄어드는 겁니다. 29년째 토마스의 집 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총무 박경옥 씨에게 최근 상황을 묻자 깊은 한숨이 돌아왔습니다.

"다른 것보다 김 가격 오르는 게 가장 큰일이에요. 반찬으로 손쉽게 제공할 수 있고, 영양도 있고 해서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김을 내야 하는데, 가격이 30%가 올라 버리니 부담이 어마어마하죠. 어제도 간단히 장을 봤는데 60만 원이 훌쩍 넘더라고요. 

저희가 지금 유지할 수 있는 단가를 간단하게 식판 한 장당 3천 원이라고 계산해요. 그런데 요즘 3천 원으로는 도저히 한 끼를 차릴 수가 없어요. 거기에 급식소 건물 월세도 내야 하는데…"


토마스의 집이 매일 준비하는 식사는 약 300인분. 만약 이곳이 문을 닫으면 300명이 점심을 굶어야 합니다.
 

자고 나면 오르는 밥상 물가

기후변화로 인한 작황 부진과 환율 상승 등의 이유로 식료품 가격은 매달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습니다. '국민 반찬'인 김은 1년 새 도매가격이 60% 가까이 올라 이제 한 장에 130원에 달하고, 올리브유 가격도 30% 넘게 올랐습니다. 이제는 앞에 '금' 자가 붙는 게 당연해져 버린 사과, 앞서 총선 국면에서 논란이 됐던 대파, 양배추와 시금치까지... 사실상 가격이 안 오른 품목을 찾는 게 빠를 지경입니다. 심지어 가장 기본적인 조미료인 소금과 설탕조차 지난해보다 20% 넘게 비싸졌고, 다음 달부터 간장 가격도 9% 오를 예정입니다. 장바구니 채우기가 무섭다는 말은 더 이상 농담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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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로 보면 더 명확합니다. 지난달 전국의 신선식품물가지수(채소나 과일 등 계절에 따라 가격 변동이 큰 식품을 따로 집계해 실제 '장바구니 물가'에 가깝게 조정하는 지수)는 135.14입니다. 기준년인 2020년에 10만 원이면 살 수 있었던 신선식품을 지난달에는 13만 5천 원 넘게 주고 사야 했다는 뜻입니다. 전국 17개 시도 모두 130이 넘었고, 서울은 아예 140에 육박합니다. 증가 폭도 갈수록 커지는데 올해 들어선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해 20%씩 오르고 있습니다.
 

백반 한 끼 절반에도 못 미치는 무료 급식 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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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돈이 없어 밥을 굶어야 하는 사람들이 있는 상황에서 이렇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구치는 밥상 물가는 그야말로 재난입니다. 토마스의 집 같은 사설 급식소 이외에도, 현재 우리나라는 저소득층 노인들에게 '경로식당' 사업을 통해 무료 급식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원래는 60세 이상 노인만 대상으로 하다 지난해 10월 말부터 55세 이상으로 확대됐습니다. 최소한의 생존을 보장하는, 어찌 보면 현대 국가로서 당연한 복지입니다.

그런데 이 사업의 급식비 단가는 적게는 3천 원에도 못 미치고, 많아 봐야 고작 4천 원입니다. 지난달 서울의 김치찌개 백반 한 끼 평균 가격이 8,115원, 김밥 한 줄은 3,362원이었습니다. 결국 전국의 무료 급식소들은 백반값의 반에도 못 미치는 가격, 겨우 김밥 한 줄 사 먹을 정도의 돈으로 한 끼 식사를 매일 만들어내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렇게 비현실적인 단가가 적용되는 이유는 늘 그렇듯 예산과 법률 문제입니다. 현재 무료 급식 사업에는 국비가 지원되지 않아 각 지방자치단체가 자체 재정으로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예산이 부족한 지자체는 무료 급식 단가를 올리지 못하고 기껏해야 전년 수준에서 동결하는 게 고작입니다.

단가에 대한 법적 기준이 없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현재 결식아동에 대한 무료 급식 단가는 평균 8천 원 선, 노인 무료 급식의 두 배가 넘습니다. 법으로 급식 단가를 물가와 연동하도록 규정해 식품 가격이 비싸지면 단가가 따라서 오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경로식당 지원 사업에는 이런 규정이 없습니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노인 무료 급식 단가도 물가와 연동하도록 하는 노인복지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다른 수많은 '민생 법안'들과 마찬가지로 예산 문제로 계류하다 결국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습니다. 그사이 돈 없고 힘든 노인들은 여전히 곳곳이 빈 식판을 받아 들고 있습니다.

김형래 더 스피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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