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배경은 "나를 밟고 총선 승리를 통해 윤석열 정부를 성공시켜 달라"는 것입니다.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 여의도고·중앙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장 의원은 2008년 18대 총선에서 부산 사상에 출마해 원내에 입성했습니다.
장 의원이 15년 정치 인생에서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그는 19대 총선 직전인 2011년 12월 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이 '디도스 파문' 등으로 위기에 몰려 쇄신 요구가 거세지자 총선 불출마 의사를 밝힌 바 있습니다.
당시엔 친이(친이명박)계 초선이었지만, 이젠 친윤 그룹 핵심 중진으로서 이번 불출마 선언의 파급력은 당시와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큽니다.
19대 총선 불출마 후 장 의원은 20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사상에 출마해 국회에 복귀했습니다.
21대 총선에서도 연달아 당선되며 3선 중진이 된 장 의원은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를 최측근에서 보좌하고, 대선 레이스 막판 윤 후보와 당시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 협상도 이끌었습니다.
윤 대통령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에는 당선인 비서실장으로 새 정부 조각 밑그림을 그렸고, 정부 공식 출범 후에도 윤 대통령의 복심이자 여권 최고 실세로 꼽혀왔습니다.
올해 3·8 전당대회에선 '김장(김기현-장제원) 연대'를 통해 지지율이 한 자릿수 초반에 머물던 김기현 후보가 당권을 거머쥐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국회에서는 행정안전위원장과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을 맡아 정부의 국정과제 입법을 뒷받침하기 위해 공격적인 추진력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22대 총선이 다가오면서 당내에 혁신 바람이 불자 친윤 그룹의 대표 격인 장 의원의 용퇴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인요한 혁신위원회가 지도부·중진·친윤 등 당 주류를 향해 내놓은 '불출마 혹은 수도권 험지 출마' 희생 요구는 사실상 장 의원을 가장 먼저 지목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장 의원은 지난달 11일 지지자 4천200여 명이 모인 여원산악회 창립기념식에서 "알량한 정치 인생 연장하면서 서울 가지 않겠다"고 말하고, 다음날 부산 지역구 교회 간증에서 "아무리 권력자가 뭐라 해도 나는 내 할 말 하고 산다"고 발언했습니다.
이를 두고 장 의원이 무소속 출마를 불사하더라도 지역구인 사상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지만, 한 달이 지난 이날 장 의원은 결국 "총선 승리를 위해서"라며 불출마를 공식화했습니다.
장 의원의 이번 불출마는 그가 친윤 핵심으로 떠오른 이후 세 번째 '백의종군' 선언이기도 합니다.
그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인 지난해 8월 이준석 전 대표 징계 등을 둘러싸고 당 내홍이 심화하자 "앞으로 윤석열 정부에서 어떠한 임명직 공직을 맡지 않겠다"며 2선으로 후퇴했습니다.
당 혼란상을 두고 장 의원을 비롯한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 그룹의 책임론이 제기된 데 따른 것입니다.
전당대회 레이스가 진행되던 지난 2월에는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어떠한 임명직 당직도 맡지 않겠다"고 또 한 번 백의종군을 선언했습니다.
당시 김기현 후보가 당 대표가 될 경우 그를 지원한 장 의원이 '실세 사무총장'을 맡아 총선 공천을 좌지우지할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자 임명직 당직도 맡지 않겠다고 밝힌 것입니다.
오늘 장 의원은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또 한 번 백의종군 길을 간다. 이번엔 마지막 공직인 국회의원직"이라고 말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