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화린 씨
키 180㎝, 몸무게 72㎏, 골격근량 32.7㎏.
건장한 신체 조건의 30대 여성이 권위 있는 체육대회 사이클 종목에 출전합니다.
그는 일생의 대부분을 남자로 살았습니다.
성전환 수술을 받은 지는 고작 1년도 지나지 않았습니다.
현재 공식적으로 성별은 '여성'입니다.
위 얘기를 얼핏 본다면 '바다 건너 이야기겠거니…'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실제로 우리나라, 그것도 강원도에서 현재 진행 중인 일입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철원에서 아스파라거스 농장을 운영 중인 나화린(37) 씨입니다.
나 씨는 어려서부터 여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36년을 참았고, 독립할 기반을 마련한 뒤 지난해 서울병원에서 성전환(성확정) 수술을 받았습니다.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도 2로 바꿨습니다.
그는 예전부터 자전거 타기를 좋아했습니다.
재능도 있었기에 크고 작은 대회에서 6번이나 1등을 거머쥐었습니다.
특히 2012년 열린 제47회 강원도민체육대회에서는 사이클 남자 일반1부 1km 독주와 4km 개인추발 등 4개 부문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지난해 여성이 된 나 씨는 이번 주말 양양에서 열리는 제58회 강원도민체전 사이클 경기 3종목 여성 부문에 출사표를 던졌습니다.
트랜스젠더 여성으로서는 국내 최초로 도민체전에 참가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래전부터 여성호르몬 주사를 맞았고 지난해에는 수술대에 오르기도 했지만, 그의 대회 출전은 체육계를 넘어 사회에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됩니다.
특히 젊은 세대가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공정'이란 화두에 큰 물음표를 던질 수 있습니다.
이런 논란은 이미 해외 체육계를 뜨겁게 달군 적이 있습니다.
지난해 3월 영국에서는 트랜스젠더 사이클 선수 에밀리 브리지스(21)가 국제 사이클 연맹((UCI)으로부터 대회에 참가할 자격이 없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자신이 트랜스젠더임을 밝히고 호르몬 치료를 받으며 남성에서 여성으로 전환하고 있던 브리지스는 다른 여자 선수들과의 형평성 문제를 이유로 출전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사이클 외에 수영과 육상, 럭비, 역도 등 다양한 종목에서도 여성 트랜스젠더의 대회 출전은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나 씨 역시 이런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는 현재 여성이지만 지난해까지 36년간 남성이었고, 남성의 몸으로 성장해 여성보다 더 큰 뼈대와 많은 근육량을 갖기 쉬운 조건에 노출됐숩니다.
실제로 최근 측정 결과 그의 골격근량은 일반 여성 평균인 20∼22㎏보다 월등히 많은 32.7㎏이었습니다.
강원도체육회에 확인 결과 나 씨가 대회에 참가하는 데 문제는 전혀 없습니다.
여성부 출전에 성별 외에는 아무 제약을 두지 않는 까닭입니다.
그는 대회 출전 목적이 '수상'이냐는 질문에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나는 논란이 되고 싶습니다."
나 씨는 자신의 출전 자체가 논란이 될 것도, 공정성 문제가 불거지리란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는 "내가 상을 받으면 대중의 공감과 인정을 받지 못하고, 결국 명예로울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며 "하지만 남자였다가 여자인 내가 엄연히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결국 나는 인생을 건 출전을 통해 차별이 아닌 구별을 얘기하고 싶었다"며 "남녀로 딱 잘라 정해진 출전 부문에 성소수자가 비집고 들어갈 틈을 내는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결국 나 씨는 '경기에서 체급을 나누는 것처럼 성소수자들을 제3의 성별로 구별해서 뛰게 하는 것이 왜 안 될까'라는 물음표를 던지고자 한 것입니다.
나 씨가 이번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다면 전국체전을 향한 길도 더 넓어지게 됩니다.
강원도는 여성 사이클 선수층이 얇아 도민체전 수상자가 전국대회 출전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때문입니다.
대한체육회 확인 결과 전국체전 출전 규정에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남녀' 외에 트랜스젠더에 관한 내용을 따로 두지 않아 그의 대회 출전을 뚜렷이 제한할 근거도 없습니다.
나 씨는 "만약 나의 전국체전 출전이 누군가의 자리를 뺏는다면 깊이 고민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기꺼이 그 무대를 밟겠다"고 밝혔습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