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지난해 하반기 자금시장 경색, 금리 상승 등으로 대출 부담이 커지자 기업들이 대출보다는 예금을 활용하면서 증가 폭은 다소 둔화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오늘(15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은행의 저축성예금(정기예금, 정기적금, 기업자유예금, 저축예금) 가운데 잔액이 10억 원을 넘는 계좌의 총예금은 796조 3천480억 원이었습니다.
이는 지난해 6월 말(787조 9천150억 원)과 비교하면 1.1%(8조 4천330억 원) 늘어난 것으로, 사상 최대를 다시 경신했습니다.
1년 전과 견주면 3.5%(26조 6천260억 원) 증가한 겁니다.
지난해 말 기준 10억 원 초과 고액계좌를 종류별로 살펴보면 정기예금이 564조 5천460억 원으로 1년 전(509조 8천150억 원)과 비교해 10.7%(54조 7천310억 원) 증가했습니다.
반면 기업 자유예금은 같은 기간 234조 7천850억 원에서 219조 8천900억 원으로 6.3%(14조 8천950억 원) 감소했고, 저축예금은 24조 4천480억 원에서 11조 5천250억 원으로 52.9%(12조 9천230억 원) 줄었습니다.
기업 자유예금은 법인과 개인기업의 일시 여유자금을 은행에 예치하는 상품이며, 저축예금은 입출금이 자유로운 결제성 예금입니다.
즉 지난해 개인과 기업은 입출금이 자유로운 대신 이율이 낮은 저축예금이나 기업 자유예금보다는 예치기간을 정해놓고 상대적으로 고금리를 제공하는 정기예금 등으로 몰려간 것으로 추정됩니다.
저축성예금 중 5억 원 초과∼10억 원 이하의 잔액은 지난해 말 기준 75조 6천660억 원이었고, 1억 원 초과∼5억 원 이하는 211조 1천억 원으로 반년 전에 비해 각각 4.2%(3조 220억 원)와 5.4%(10조 7천590억 원) 증가했습니다.
전년 말과 비교하면 9.4%(6조 5천210억 원)와 8.8%(17조 540억 원)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고액 정기예금 규모가 빠르게 늘어난 것은 한국은행이 지난해 7월과 10월 두 번의 '빅스텝'(기준금리 0.50%포인트 인상)을 단행하는 등 금리 인상 랠리가 계속됐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차례로 예금 금리에 반영되자 개인 고객 자산가는 물론, 기업들도 은행 예금에 여윳돈을 넣어둔 것으로 풀이됩니다.
다만 10억 원 초과 고액예금의 전년 말 대비 증가율은 2017년 말 7.2%, 2018년 말 13.3%, 2019년 말 9.2%, 2020년 말 9.4%, 2021년 말 13.8% 등에서 지난해 말 3.5%로 둔화했습니다.
특히 지난해 하반기 증가율(전기 대비)은 1.1%로, 4.4% 줄었던 2013년 2분기 이후 증가율이 가장 낮았습니다.
이는 지난해 10월 레고랜드 사태가 촉발한 자금 경색 등으로 대출금리가 치솟아 이자 부담이 늘어나자 기업들이 보유예금 중 일부를 대출 상환에 활용했기 때문으로 추정됩니다.
예금은행 기업대출금리(신규취급액 기준)는 지난해 1분기 3.35%에서 2분기 3.63%, 3분기 4.41%에 이어 4분기 5.50%까지 뛰었습니다.
통상 10억 원 초과 은행 고액 예금의 80∼90%를 기업이 차지하고 있어, 기업들이 고액 예금 중 일부를 빼면서 증가율이 둔화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다만 올해 들어 기업 자금시장 경색이 어느 정도 풀린 데다 대출금리도 내려가고 있어 기업 고액예금은 다시 늘어날 가능성이 큽니다.
특히 경기 둔화로 투자 불확실성이 큰 상황인 만큼 기업들이 은행에 돈을 넣어두고 관망하는 분위기가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한은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속보치·전 분기 대비)은 0.3%로 플러스 전환했지만, 설비투자의 경우 반도체장비 등 기계류가 줄어 4.0%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