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는 게 없었다"…숨진 딸 손 못 놓던 아빠의 회고

튀르키예 강진으로 무너진 건물 잔해 사이로 삐져나온 딸의 손을 부여잡은 채 자리를 뜨지 못하던 한 아버지.

세계인의 눈시울을 붉혔던 이 장면 속 아버지인 메수트 한제르(49)가 AFP 통신과 인터뷰를 통해 지난 5일 딸을 떠나보내던 비극을 되돌아봤습니다.

튀르키예 남동부 카흐라만마라슈에서 제빵사로 일하던 한제르는 규모 7.8의 강진이 강타했을 새벽부터 일터에 나와 있었습니다.

땅이 거칠게 울리고 곳곳에서 건물이 무너지는 사태가 닥치자 그는 즉각 집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자택이 1층짜리 저층이었던 덕분에 아내와 성인이 된 세 자녀는 집이 일부 파손되는 와중에도 무사했습니다.

하지만 근처 할머니 댁에 가 있었던 15살 딸 이르마크는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이르마크는 이스탄불과 하타이에 사는 사촌들이 온다는 소식에 부모의 허락을 얻어 할머니 댁에서 하룻밤을 지내기로 한 겁니다.


그중 누구와도 전화가 되지 않자 한제르는 급히 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하지만 할머니 댁이 있던 8층 건물은 형체조차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심하게 무너져 있었습니다.

건물 잔해와 희생자들의 옷가지, 가구 등이 엉망진창으로 뒤섞인 사이에서 한제르는 막내딸 이르마크를 찾아냈습니다.

그러나 막내딸의 숨은 이미 멎어있었습니다.

침대에 누운 채 콘크리트 더미에 짓눌린 아이의 시신을 꺼내려고 한제르는 주변을 파헤쳤지만, 잔해는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언제 올지 모르는 구조대를 기다리며 이르마크의 손을 꼭 붙잡았습니다.

한제르는 "딸이 침대에서 천사처럼 잠들어 있었다"며 "딸의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안타까운 죽음을 맞은 딸의 곁에 머물러 주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는 겁니다.

한제르는 "난 딸의 손을 잡고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양 볼에 입을 맞췄다"고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이후 현장에 도착한 AFP 기자 아뎀 알탄에게 차분하면서도 상심한 목소리로 사진 촬영을 허락했습니다.

이 한 장의 사진은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의 참상을 백 마디 말, 수천 자의 글보다 더 생생하게 알렸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안타까운 사연이 지구촌 전역에 전해진 덕분에 한제르에게는 온정의 손길이 답지하고 있습니다.

한 사업가는 앙카라의 아파트 한 채를 내주고 현지 방송 채널에서 행정직 자리를 줘 한제르는 지진으로 폐허가 돼버린 카흐라만마라슈에서 앙카라로 이사했습니다.

한제르는 "이번 지진으로 어머니와 형제들, 조카들을 잃었다. 그러나 무엇도 내 아이를 묻는 것과는 비교되지 않는다. 그 고통은 형언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계속되는 고통을 털어놓았습니다.

(사진=튀르키예 일간지 후리예트 홈페이지 캡처,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