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번째 금요일에 김금희 소설가를 만났습니다. 지난해 11월 SBS D포럼(SDF)에서 인사드렸으니까 두 달 만이네요.
김금희 소설가는 SDF에서 '어떻게 지내요? 책, 타인,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했습니다. 질의응답 시간엔 저희가 다 소화하기 힘들 정도로 관객들의 질문이 이어졌고, 사인회장에는 긴 줄이 늘어설 정도로 뜨거운 호응을 얻었습니다.
"마음을 닫고 참여하지 않으며 모른 척하기는 쉽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우리가 원하는 미래를 만들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이 자기 마음을 헤아리고 타인과 세상을 이해하려 애쓰며 자기 삶을 자기 지혜로 채워나가려 할 때 소설이, 책이, 당신을 지원할 것입니다." ( ▶https://youtu.be/0c7R0AIlpuw )
지난해 SDF와 헤어질 결심을 하지 못하고 김금희 소설가에게 인터뷰를 부탁드린 건,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기 때문입니다. 분명 리허설 때 긴장을 많이 했는데, 어떻게 '본방'에서는 떨림 없이 연설을 했는지, 그 비결이 궁금했고요, 최근 펴낸 첫 연작소설집 <크리스마스 타일>에 대한 얘기도 빼놓지 않고 듣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음력설에 잘 어울리는 '인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의 상처 난 마음을 소설로 치유해주려고 노력해온 다정한 작가여서 새해 우리에게 온기를 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올해 11월에 있을 SDF 무대에 어느 소설가가 올랐으면 하는지도 꼭 묻고 싶었습니다. 누구를 추천했는지는 뉴스레터 저~~~ 밑에서 공개하겠습니다. 그러면 'SDF 다이어리' 시작하겠습니다!
Q. SDF 강연 제목을 '어떻게 지내요? 책, 타인, 그리고 민주주의'로 정한 배경이 궁금합니다.
민주주의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정말 '뼈대'와 같은 건데요, 멈춰 서서 한번 생각 해보자라고 얘기하지 않으면 웬만해서는 민주주의에 대한 생각을 잘 안 하게 되거든요.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지내요?"라고 인사차 물어보면 삶을 약간 돌아보게 되잖아요. 그런 기분으로 민주주의에 대해 작가로서 대중들에게 물어보고 싶어서, 그 제목을 선택하게 됐습니다. 긴장을 많이 했는데, 무대에 올라가니까 청중들이 몰입해서 듣고 계시더라고요. 그 힘을 받아서 떨리지가 않았고요, 나중에 영상을 보니까 약간 흥분을 해서 발표하고 있는 저를 보면서 '아, 청중의 힘이 참 중요하구나!'라고 생각했죠.
Q. 작가님이 경험을 토대로 발표해서 그런지, 관객들이 더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민주주의에 대해 얘기 하라고 하면, 학자들은 이론도 있고 통계도 있는데 작가는 인물을 통해서 얘기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에 대해 얘기를 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민주주의와 사람을 엮는 게 쉽지는 않았어요. 그러다가 "아, 내가 사회에 대해 생각하게 한 에피소드가 뭐가 있지?"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치킨집 얘기가 생각이 났어요. 그래서 치킨집 얘기로 시작해서 누구나 다 겪을 수밖에 없는 것, 고된 노동의 문제, 그 다음에 제가 좀 밀도 있게 얘기하고 싶은 감정의 문제, 또 모럴의 문제 등을 징검다리를 밟듯이 하나하나 다루다 보면 진심이 전달이 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했어요. 그냥 소설 쓰듯이 강연 원고를 썼고요.
Q. SDF와 관련해 어떤 게 제일 기억에 남으세요?
사인회에서 소통할 때 관객들이 젊어서 놀랐어요. 민주주의 포럼이라고 하면 나이 좀 있으신 분들이 오실 줄 알았는데, 젊은 친구들이 참 많았어요, 그 친구들이 저한테 "올해만 온 게 아니라 이전에도 왔었다.", "좋아서 매년 오려고 한다."고 얘기했을 때 민주주의가 재미있는 주제가 아닌데도 젊은 친구들은 여전히 사회에 대한 궁금증이 있고, 그걸 풀기 위해 포럼도 참석 하는구나… 그런 것들을 느꼈어요. 젊은 친구들로부터 많은 힘도 얻었고요. SDF가 계속해서 젊은 친구들이 해답을 찾고 싶어 할 때, 참고할 수 있는 '좋은 자리', '좋은 만남'으로 계속됐으면 좋겠어요.
Q. SDF가 끝나자마자 소설 <크리스마스 타일>을 펴내셨더라고요. 단편마다 공감이 가는 내용이 많았는데, 소재는 어디서 가져와서 작품에 녹이시나요?
포럼을 준비하시는 분들은 사회에서 필요한 질문들을 가지고 매해 포럼을 만드시잖아요. 작가도 비슷한 것 같아요. '제일 고민이 되는 것'과 '가장 궁금한 것'을 붙들고 소설화하려고 노력하는 편이고요, <크리스마스 타일>에 있는 <은하의 밤>은 은하라는 주인공을 통해서 고립과 고독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제가 40대가 넘어가면서 맞부딪친 그런 문제들이었거든요. <당신의 개 좀 안아 봐도 될까요>는 18살 반려견이 세상을 떠났어요. 벌써 재작년이 됐네요, 많이 슬펐는데… 슬픔을 소설로 기록해두지 않으면, 사람의 기억이라는 게 옅어지게 되어있으니까… '힘들지만 소설로 써보자'라고 해서 작업을 했어요. 개인적인 어떤 고민과 문제를 소설화하면서 사회와의 접점을 찾는 게, 창작의 과정인 것 같더라고요.
Q. 책 끝 부분에 혹독한 이별을 겪는 것과 같은 느낌으로 책을 내셨다고 적으셨더라고요?
소설이 책으로 묶일 때쯤… 책이 독자들에게 전달되고 나면, 저는 그 자리에 없거든요. 책의 완성으로 제 역할은 끝난 것이어서… 그러면 소설 속 인물과 헤어지는 기분이 들어요. 독자들이 소설 속 인물들을 만날 때, 작가는 그 인물들과 헤어진 채로 다음 인물한테 나아가거든요. 그래서 항상 이별하는 기분이에요. 책을 내고 나면.
Q. 독자들이 <크리스마스 타일>을 읽고 무엇을 느꼈으면 하나요?
<크리스마스 타일>에 일곱 개의 크리스마스 장면들이 나와요. 크리스마스가 연말에 있어서 더 그렇기는 하지만, 1년간의 자기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날이 되더라고요. 저도 그런 마음으로 소설 작업을 했습니다. 우리가 1년 동안의 크고 작은 허들이나 감정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라, 12월의 관점에서 보면 굉장히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느껴줬으면… 그래서 소설 속 인물들이 특별하고 화려한 삶을 사는 게 아니라 우리랑 많이 닮은 모습들이고, 그 인물들의 12월을 보면서 '자신의 12월을 좀 더 가치 있고 의미 있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작업을 했어요.
Q. 책 제목에 '타일(tile)'이란 단어를 넣으셨던데요 어떤 의미가 있는 건가요?
부산 해운대에서 작품을 구상할 때 갑자기 생각이 난 제목인데요, '타일'이라는 게 사실 벽면에 붙어서 하나의 면적을 이루는 거잖아요. 그게 사람들의 삶과 굉장히 비슷하다고 생각을 했어요. 타일 한 장 한 장이 제대로 붙어있으려면, 아주 실선 같은 간격이 있어야 되거든요. 그런데 사람의 삶도 약간의 거리를 유지한 채 공동체라는 벽면을 이루고 있어야 된다는 점에서 뭔가 사회의 한 면을 보여주는 것 같고, 연작 소설의 어떤 특징을 잘 보여주는 것 같아서… 그리고 크리스마스와 타일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Q. 올해 경제가 침체될 것이란 우울한 전망이 많네요. 사람들 주머니 사정이 안 좋아지고 삶이 팍팍해지면 사회 구성원 간의 신뢰가 약해지고 갈등이 더 커지지는 않을지 걱정입니다.
불경기가 오고 있다는 것을 저도 조금씩 체감하고 있는데요, 사실 영원한 침체나 영원한 활황기는 없는 거잖아요. 그렇게 생각하셨으면 좋겠어요. 불경기가 찾아올 때마다 어떤 숙제를 떠안게 되는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그 숙제를 자기 몫으로 풀어내면서 이 시간을 견디는데요, 한 번쯤 멈춰 서서 그런 시기가 잘 지나갈 수 있도록 자기 마음을 적응해보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얻는 게 있었으면 좋겠어요. 물론 실질적인 위험이 다가오면 인색해지고 그렇지만, 나한테만 닥쳐오는 일이 아니라 모두에게 숙제처럼 남아있는 일이라는 것을 꼭 기억하고, 또 이게 일정한 주기에 따라 나타났다가 변화하는 일이라는 생각도 해서 마음이 너무 무겁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도 그렇게 해서 이 시기를 통과하려고요.
Q. 음력설을 앞두고 있는데요, 지난해 벌어진 일 가운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게 어떤 게 있을까요?
지난해 우리 가슴을 정말 아프게 생각했던 것은 '10.29 참사'인 것 같아요. 변화했을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그 기대를 무너뜨리는 비극이 반복되네요. 반복되는 비극이 나쁜 이유는 사람을 무력하고 무기력하게 만들거든요. 저도 참사가 일어났을 때 무력함을 많이 느꼈고, '또?'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 사회가 지난날의 비극을 제대로 소화하고 넘어가지 않으면, 이러한 일들은 계속해서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침체시킬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그런 절망에 빠지지 않게 하려는 '분투'를 어떻게 할 것인가는 앞으로 작품을 쓰는 과정을 통해 고민하려고 해요.
Q. 다이어리에 여러 문장들을 적어놓으신다고 하셨는데, 최근에는 어떤 것을 기록해두셨나요?
"사람들한테 덜 친절하자!" 하하. "덜 친절할 수 있으면 오히려 더 좋을 것 같다."… 제가 에너지를 써서 뭔가를 해주고 나면, 그게 또 상대적으로 저를 다운시키는 것 같아요. 상대가 딱히 그 정도를 원하는 것 같지는 않고… 그래서 관계를 잘 이어나가기 위해 최선을 생각하기 보다는 "관계에 있어서 어떤 게 가장 좋은지를 생각해야지, 내가 하고 싶은 만큼 한다고 좋은 건 아니다…" 그런 다짐을 썼던 것 같아요.
Q. 마음이 버거우면 소설이 잘 안 읽힐 때가 있더라고요.
당연히 그럴 것 같아요.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남들한테 관심이 있어야 되거든요. 만약에 (소설을 읽을) 여유가 되지 않으면, 저도 당연히 그럴 것 같아요. 어떤 큰 문제가 있을 때 회피하고 싶은 생각이 들다가… 이렇게 쭈그러져 있다가 시간이 지나면 약간 기운이 돌아오잖아요. 그럴 때는 또 마중물처럼 소설이 사람 간의 관계나 어떤 직장 간의 관계나 이런 것들을 풀어나갈 수 있는 열쇠가 되어주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소설을 읽지 않아도 좋지만 약간 기운이 생기고 문제를 좀 풀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소설이 아마 그 해답이 되어주는 경우가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Q. SDF가 올해 연사로 초청했으면 하는 소설가가 있으신가요?
이기호 소설가를 추천 드리고 싶어요. 문단 선배이시고, 지금 학생을 가르치고 계세요. 젊은 친구들이 사회로 나왔을 때, 그들이 맞닥뜨리는 문제라든가 좌절감 같은 게 있을 텐데요. 이기호 소설가는 학생과 긴밀하게 소통하고, 또, 학생들이 이기호 작가 앞에서는 자신의 얘기를 잘 하더라고요. 만약, 우리 청년들의 어떤 일면을 전달할 거면 청년이 나와서 얘기하는 것도 좋지만, 청년들과 가까운 사람이 더 '번역'을 잘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기호 소설가님이 (SDF 연사로) 한 번쯤 해주시면 어떨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드네요.
이기호 소설가가 지난해 펴낸 연작집 <눈감지 마라>엔, 20대 지방 청년들의 딱한 사정이 그대로 녹여 있습니다. 지방 사립대를 졸업한 뒤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각종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두 청년의 삶 이야기를 특유의 위트로 풀어냈지만, 읽는 내내 마음은 편하지 않고 무거웠습니다. 김금희 소설가의 말 대로 '눈감고 싶어지는' 청년들의 현실을 이기호 작가가 그들을 대신해 통번역 해줬더라고요.
SDF팀은 올해 11월에 다룰 '화두'를 찾기 위해, 여러 전문가와 교수를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를 개선시키기 위한 방안이나 경제 위기를 헤쳐 나가기 위한 도움말도 청할 예정이지만, 김금희, 이기호 소설가처럼 청년을 생각하는 분들을 찾아가 미래 세대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조언을 구하려고 합니다.
며칠 뒤면 음력설 연휴가 시작되네요. '계묘년(癸卯年)' 새해와 어울리는 사진을 찾다가 아래 국립중앙박물관 인스타그램에서 토끼 사진을 발견해 덧붙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 '고려비색' 방에 있는 '투각 칠보무늬 향로'인데요, 토끼 세 마리가 등으로 향로를 받치고 있네요. 토끼가 귀엽긴 한데, 자기 몸보다 훨씬 큰 향로를 짊어져서 그런지 조금 불쌍해 보이기도 하네요.^^
토끼의 기운을 받아 2023년 지혜롭게 잘 이겨내시길… 그리고 설 연휴에는 가족들과 서로의 상처를 보듬는 다정한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다음주 'SDF 다이어리'는 한차례 쉬고 다음달 1일에 찾아뵙겠습니다. 꼭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