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방 수칙을 살펴보면, 대부분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것들입니다. 손 씻기, 음식물 충분히 익혀 먹기, 위생적으로 조리하기, 환자와 공간 구분해 생활하도록 권고 등인데 마지막 수칙이 눈에 확 들어옵니다. '노로바이러스 감염증 환자는 배변 후 변기 뚜껑을 닫고 물을 내리기'입니다. 이 보도자료가 나올 무렵, 변기 물을 내릴 때 얼마나 많은 작은 물방울이 사방으로 튀는지 보여주는 해외 실험 결과가 보도됐기 때문에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이 마지막 수칙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변기 뚜껑을 닫고 물을 내리라는 건 꼭 노로바이러스 예방을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공중위생 측면에서 봤을 때도 권장할 만한 내용인 데다, 감염병 예방 수칙은 대부분 교과서적인 내용이라 보도자료 내용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보도자료를 볼 때처럼 비판적인 시각에서 보지 않았던 사실을 이 자리를 빌려 고백합니다. 이 내용은 SBS 낮 뉴스에 몇 차례 나갔고, 8시 뉴스에는 단신으로 보도됐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뒤 국내 주요 대학에서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한 교수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예방법에 왜 그런 황당한 내용을 넣었냐며, 노로바이러스 환자가 발생하면 화장실을 분리해서 쓰는 게 원칙이며 변기 뚜껑 덮는 걸로는 사실상 예방이 불가능하다고 설명했습니다. 노로바이러스가 워낙 전파력이 강해서 바이러스가 단 10개만 있어도 감염 가능한데 감염된 환자는 엄청나게 많은 바이러스를 흘리기 때문에 변기를 같이 쓰면 감염될 위험이 매우 크다는 겁니다. 의대생들에게 노로바이러스에 대해 확실하게 설명해줄 수 있는 좋은 학습 자료를 만들어줘서 고맙다며 허허 웃는 교수에게 질병청 핑계를 대면서도 참 부끄러웠습니다.
질병청이 제시한 예방 수칙을 다시 살펴보면, 환자 접촉 환경, 사용한 물건 등에 대해 염소 소독을 하라는 내용과 함께 구체적으로 가정용 락스 희석액(1,000~5,000ppm)을 이용하라고 수치까지 제시됩니다. 변기 역시 환자가 사용한 물건에 해당하니 소독해서 써야 하는데 매번 소독하기는 어려우니 공간을 분리하는 게 가장 좋은 예방법이 맞겠죠. 변기 뚜껑 내리는 것만으로는 예방할 수 없으니 부적절한 권고라고 볼 수 있습니다.
노로바이러스, 확실한 예방법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CDC는 노로바이러스 예방법을 어떻게 안내하는지 혹시 변기 뚜껑 관련 내용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살펴봤으나 역시 이 같은 내용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질병청 보도자료엔 없고, CDC 홈페이지에는 있는 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Hand sanitizer does not work well against norovirus.' 손 소독제는 노로바이러스 제거에 충분히 효과적이지 않으니, 비누를 이용해 물로 씻으라는 권고입니다.(CDC 지침을 비롯해, 이 글에서 말하는 손소독제는 알코올 성분이 60~70%대인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세정제를 뜻합니다.)
CDC는 노로바이러스 예방을 위해 비누와 따뜻한 물로 20초 이상 손을 씻어야 하며 손 소독제를 추가로 사용할 수는 있지만, 손 소독제가 비누로 손 씻는 걸 대체할 수 없다고 명시했습니다. 그래서 찾아보니 노로바이러스와 항생제 내성균 이슈로 자주 등장하는 박테리아인 C.디피실, 기생충의 일종인 크립토스포리디움, 이 세 가지는 반드시 비누로 손을 씻어야 제거할 수 있는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2018년 NIH 연구에 따르면, 노로바이러스는 환자의 변을 통해 배출될 때 여러 개의 바이러스가 클러스터를 이룬 채 지질막으로 싸여서 일반적인 손 소독제로는 제거되기 어렵고 전염성이 강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아래 이미지 속 작은 클러스터 참조)
질병청은 자료에서 손 씻기를 충분히 강조했으니 틀렸다고는 할 수 없지만 우리가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손 세정제에 너무나 익숙해졌다는 게 걱정스러운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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