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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아마도 당신이 어렵지 않게 지킬 수 있을 결심

By 개럿 카이저 (뉴욕타임스)

스프 nyt
 
*개럿 카이저(Garret Keizer)는 작가이며, 하퍼 매거진(Harper's Magazine)과 버지니아 계간지(Virginia Quarterly Review)에 글을 쓴다.
 


당신이 지금 하는 결심을 지켜줄 수호성인을 찾는다면, 새뮤얼 존슨(Samuel Johnson)만한 사람도 없다. 1709년에 태어나 1784년에 죽은 존슨은 평생 무언가를 결심했지만, 번번이 그 결심을 지키는 데 실패한 사람이다. 그가 쓴 일기를 보고 있으면 누구나 한숨부터 나올 것이다. 새해가 밝으면, 부활절마다, 혹은 매년 자기 생일에 존슨은 어김없이 새로 결심한다. 이제 좀 일찍 일어나야지, 더 열심히 공부해야지, 적당히 먹고 술도 많이 마시지 말아야지와 같은 결심 뒤에는 항상 이번에도 지난번 다짐을 지키지 못했다는 탄식과 하소연이 이어진다. 1764년 자신의 55번째 생일에 그는 이렇게 썼다.

지난 55년 동안 나는 결심만 하고 살았다.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어린 시절부터 나는 항상 더 나은 삶을 위해 계획을 세우곤 했다. 그러나 계획대로 해낸 건 단 하나도 없다. 남은 시간이 길지 않은 만큼 행동에 나서는 일이 더욱 시급하다.

70번째 생일이 있는 2023년을 맞이하며 나도 어쩌면 부질없는 결심을 하고 있다. 존슨과 다짐하는 내용도 비슷하다. 더 일찍 일어나야지, 해로운 생각은 하지 말아야지, 뭐든 계속 열심히 써야지와 같은 결심이다. 존슨이 살던 시기에는 생각할 수 없던 내용도 있다. 시도 때도 없이 이메일 확인하지 말아야지, 이메일 대신 혈압과 건강 상태를 더 자주 체크해야지 다짐한다. 덜 짜게 먹고, 다른 이에게 더 신의 있는 친구가 되어야지, 가족과 배우자에게 더 신경 쓰는 사람이 되어야지, 입은 닫고 귀를 열어 말은 덜 하고 더 많이 듣는 사람이 되자는 다짐도 한다.

존슨은 해가 바뀔 때마다 다짐의 세부 사항을 조금씩 바꿨다. 나이가 들면서 목표 기상 시간을 조정했다. 그러나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데 익숙하고 좀처럼 활력이 없는 편이며, 심지어 게으른 성미를 타고 난 존슨 같은 사람에게는 아무리 시간을 조정해도 지키기 어려운 다짐이었다. 한 번은 저녁 식사에 초대받은 자리에서 존슨은 이렇게 말했다.

“내 평생 오전에 침대 밖을 벗어나 본 적이 거의 없소. 그러면서 젊은이들에게는 일찍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은 세상에 이로운 일을 절대 할 수 없다 따위의 충고를 진심으로 해주고 있자니…”

존슨의 충고를 들은 젊은이들은 아마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기 어려웠을 거다. 매일 늦잠을 자는 사람이 정반대의 충고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존슨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역시 존슨은 대단하다고 감탄했을 거다. 스스로 결심조차 못 지키는 존슨이 실은 뛰어난 업적을 남긴 당대의 문장가였기 때문이다. 존슨은 수필집 램블러(Rambler)를 비롯해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는 글을 남겼으며,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대한 훌륭한 비평으로도 유명하다. 그가 당시의 영어를 집대성해 정리한 “영국 언어 사전(A Dictionary of the English Language)”은 최초의 근대적인 영어사전으로, 오늘날 우리가 보는 영어사전의 뿌리가 됐다. 영문학을 공부하는 이들은 18세기 중후반을 “존슨의 시대”라고 부른다. 존슨의 업적은 이미 당대에도 인정받았기에 18세기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게 돼도 별로 놀라지 않을 거다.

하지만 정작 존슨에게 가장 중요했던 건 그가 이룬 위대한 업적보다도 그가 자신에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과 재능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잘 썼느냐였다. 그는 늘 인생이 유한하다는 사실에 강박적으로 시달렸다. 손목시계에는 “누구도 일할 수 없는 어두운 밤이 찾아온다”라는 문구를 새겼다.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그토록 집착했던 사람이니, 세상에서 제일 간단한 약속마저 지키지 못하는 자기 모습을 보며 무척 괴로워했을 거다. 내가 아는 거의 모든 사람이 그렇듯 존슨도 자신이 이룬 성과에 만족하지 못했을 것 같다. 더 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거다.

수도 없이 실패가 반복되고 쌓이다 보면, 실패에 둔감해진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새해나 생일을 맞아 지난 1년간 이루지 못한 결심을 되풀이해본 적이 한 번쯤은 있을 거다. 존슨도 1775년, 그의 나이 65세에 마침내 이러한 결심의 쳇바퀴에 관해 다음과 같은 통찰을 남긴다.

내 스스로 무언가를 개선하자, 고치자고 결심했던 것들을 떠올려 본다. 매년 결심했다가 이를 지키지 못하는 일이 반복됐다. 결심을 지키지 못한 이유는 다양하다. 충분히 신경 쓰지 못했고, 결심 자체를 까먹기도 했고, 게을러서 흐지부지된 적도 있다. 일상에서 처리해야 할 것들에 우선순위를 빼앗긴 적도 있고, 몸이 아파서 어쩔 수 없이 결심이 무너진 적도 있다. 이유가 무엇이든 내 인생의 아까운 시간을 허비한 것 같아 속상하다. 가만 돌아보면, 내가 정말 알차게 할 일을 하며 다짐한 대로 보낸 날이 정말 며칠 안 된다. 그럼 이런 생각이 든다. 도대체 결심이라는 걸 굳이 왜 한 거지? 물론 늘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살아야 하니까, 삶은 매 순간 개혁이 필요하고 절망에 빠지는 건 곧 죄악이니 결심은 여전히 중요하긴 하다. 그래서 오늘도 신께서 나를 도와주시리라는 겸허한 희망을 안고 결심을 이어간다.

온통 자책과 한탄만 가득한 일기장을 읽다 보니, 문득 존슨이 한 가지 결심은 완벽하게 지켰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건 존슨이 따로 써두거나 말한 적 없는 결심이겠지만, 바로 쉬지 않고 ‘결심할 결심’이다. 번번이 실패하는데도 오뚝이처럼 일어나 또 결심하는 존슨의 모습에서 여러분은 끈기나 집념을 읽으셨을지 모른다. 나는 존슨의 결심할 결심이 스스로 건넨 일종의 너그러움이었다고 생각한다. 앞서 존슨이 당대의 문장가이자 훌륭한 비평가였다고 소개했는데, 글 쓰는 재주와 필력 외에 그는 주변에 너그러움을 베푼 자선가로도 유명했다. 그의 집에는 늘 오갈 데 없는 다양한 사연을 가진 이들이 신세 지고 있었다. 그는 런던 거리에서 노숙하며 배곯는 어린이를 보면 꼭 돈 몇 푼을 쥐여주곤 했다. 어려운 이를 보면 꼭 돕는 사람이라는 평판이 자자해진 뒤로는 존슨이 집을 나설 때마다 걸인들이 모여들었다. 한 번은 친구가 이렇게 한다고 뭐가 달라지는지 묻자 존슨은 이렇게 말했다.

“걸인이 계속해서 구걸할 만한 힘은 있어야 하지 않겠나.”

거듭된 실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마음을 굳게 정한 존슨의 마음가짐과 태도는 곧 그가 이룩한 많은 업적의 비결이다. 이런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위대한 일을 해낸 사례를 우리는 다른 위인 혹은 우리의 삶에서 종종 발견한다. 존슨의 성공은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의 전형이며, 속도는 답답할 만큼 느릴지 몰라도 방향은 분명히 옳았다. 사실 제아무리 혁명적인 경우에도 진보는 항상 들쭉날쭉한 경로를 점진적으로 밟으며 이뤄지는 법이다. 반대로 특히 사회적으로 만연한 빈곤과 자명한 부조리가 낳은 절망은 부도덕한 사치 앞에서 폭발하곤 한다.

지키지 못할 결심을 괴로워하면서도 계속 결심했던 존슨의 이야기는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개인으로서도 교훈으로 삼을 만하지만, 집단적 결심의 측면에서도 생각할 거리가 많다. 우리에겐 다 같이 힘을 모아 대응하고 극복해야 할 문제가 많다. 예를 들어 환경 파괴나 구조적인 인종차별과 같은 거악에 맞서 싸우려면 다 같이 노력해야 하고, 그러려면 집단적인 결심이 필요하다. 사실 존슨은 미국에서 영국을 상대로 독립하려는 움직임이 막 시작되던 때 미국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도대체 검둥이들을 노예로 부리는 자들이 제일 큰 목소리로 자기들한테 자유를 달라고 아우성치는 건 어찌 된 일인가?”

많은 사안에서 보수적인 성향에 가까웠던 존슨은 급진적인 휘그파에 사사건건 반대했던 자칭 토리파였다. 그는 영국의 식민주의를 혐오했다. 한 번은 아주 진중한 옥스퍼드 출신 인사와의 식사 자리에서 “서인도제도에서 또 한 번의 흑인 반란을 위하여!”라고 건배사를 제안했다가 물의를 빚기도 했다.

논란의 건배사에 수많은 결심을 만든 존슨은 매우 엄숙하고 가슴 저미는 기도문을 짓기도 했다. 사실 그가 한 대부분의 결심에는 적어도 한 줄 이상의 기도문이 따라붙는다. 매번 자구는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신이시여 ... 제게 또 새로운 한 해를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와 같은 기도문의 틀에 일찍 일어나겠다는 다짐 따위를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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