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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빌라왕', '빌라의 신'…속속 드러나는 '무자본 갭투자'의 실체

알면서도 당하는 전세사기, 출구는 있는 걸까?

빌라왕
이른바 '빌라왕', 또는 '빌라의 신'이라고까지 불리면서 수백에서 수천 채의 빌라를 매입했던 임대인들의 정체와 수법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 인천 미추홀구 등 빌라나 소형아파트가 밀집한 곳이 주요 매입 대상이었는데 여기서 전세 사기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죠. 수도권에서 아파트를 사는 것은 물론이고 전월세를 들어가기에도 부담이 큰 사회 초년생이나 신혼부부 등에게 빌라는 ‘서울살이’를 지탱하는 기둥이라고 볼 수 있는데, 전세 사기 세력들은 바로 이 점을 노립니다.
 

왜 중요한데

빌라 보증금이 중대형 아파트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적다 해도 피해자들에게는 큰돈입니다.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면 당장 다른 집을 구하지도 못합니다. 피해자들의 삶이 송두리째 무너지고, 그것도 모자라 ‘신용불량자’로 전락해 회복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피해가 2~30대에 집중됐다는 점까지 놓고 보면 사안의 심각성은 더욱 커집니다.

그렇다면, 왜 피해는 2~30대에 집중됐을까요? 이들이 세상 물정 모르고 덜컥 집 계약을 했기 때문일까요? 직접 취재를 해보니, 전세 사기는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습니다. 어쩌면 지금까지 내가 당하지 않았던 것은 단순히 운이 좋았기 때문일 수 있는 것입니다.

전세 사기에 주로 이용되는 건 신축 빌라나 소형 아파트들입니다. 아직 거래된 적이 없는 새 건물이다 보니 시세를 뻥튀기하기가 수월하기 때문입니다. 또, 구입하는 게 아니라 전세 계약이기 때문에 다시 돌려받을 돈이라고 생각해 계약서에 사인을 하게 됩니다.

여기까지는 사실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에 일어납니다. 세입자가 모르는 사이에 전세 사기 세력들은 브로커를 동원해 바지 사장들을 모집합니다. 이 바지 사장들은 돈 한 푼 없이 세입자의 전세보증금 부채를 떠안는 조건으로 주택 명의를 이전받습니다.(이른바 ‘동시진행’ 수법) 이런 투자 방식은 ‘무자본 갭 투자’로 불리는데, 현행법상 불법이 아닙니다. 그래서 감독 및 보증 기관들도 이런 거래를 문제 삼지 않습니다.

이제 다시 세입자에게 집주인이 바뀌었으니 다시 전세 계약하자는 연락이 옵니다. 그런데, 막상 부동산에 가면 20대 초반의 너무 젊은 청년이 앉아 있거나, 대리인이 나타나 서명을 합니다. 찜찜해서 세입자가 다시 등기를 뽑아 봐도 소용이 없습니다. 무자본, 즉 누구한테도 빚지지 않고 자본 조달 과정 없이 명의만 이전받았기 때문에 등기는 아주 깨끗합니다. 그렇게 두 번째 전세계약까지 끝나면 전세 사기는 세입자가 손쓸 수 없게 마무리됩니다.

통상, 전세 사기를 당했다는 점을 알게 되는 시점은 전세 만기 시점입니다. 바지 사장들은 위와 같은 수법으로 수십 채에서 많게는 수천 채의 집을 소유하고 있어서 막대한 보유세를 부담해야 하는데 그럴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바지사장 소유의 집에 압류가 들어와 있습니다. 그래서 기존 세입자가 전세계약 만기 이후 나가고 싶어도 새 세입자를 구할 수 없고, 그렇다고 대출을 연장을 하려고 해도 은행에서 거절당합니다. 바지사장에게 법적 조치를 경고하며 따져도 소용이 없습니다. 돌아오는 건 “난 돈이 없으니, 돈을 좀 더 내고 이 집을 세입자 네가 사라!”는 적반하장식의 답변입니다. 이때는 피해를 회복하기엔 너무 늦은 시점입니다.
 

좀 더 설명하면

전세 사기의 ‘중간 고리’인 바지 사장은 왜 이런 사기 범죄에 가담하는 걸까요? 제가 직접 만난 바지사장들 중 일부는 이게 범죄라는 걸 모르고 ‘집값이 계속 오르면 너도 시세 차익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설명에 넘어가 가담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뒤늦게 자신도 사기 범죄에 이용됐다고 판단해 고소 및 고발을 준비하는 사례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업계에서는 한 채당 바지 사장에게 수백만 원의 수수료가 떨어지는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전세 계약 만기가 돼 절박한 세입자들에게 웃돈을 얹어서 집을 사는 것 외에는 해결책이 없다는 식으로 강요해 또 다른 범죄 수익을 노리기도 합니다. 또한, 이 바지 사장들은 다른 사기 범죄에 연루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실제로 제가 접촉한 한 20대 바지 사장들은 수차례 대출 사기 브로커가 접근해 와서 은행을 상대로 이중계약 대출 사기를 벌이자고 설득했다고 합니다. 

문제는 이렇게 해서 바지 사장들이 돈을 벌 수도 있겠지만, 전세사기로 발생한 모든 민형사상 책임을 결국 바지사장 자신이 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세입자는 전세금 반환 보증 보험에 가입해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보증기관들은 대위변제한 금액을 바지 사장들에게 청구합니다. 이미 시세를 부풀린 신축 빌라들이라 시장에서 처분이 된다고 해도 청구 금액을 다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전세 사기 바지 사장들 역시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며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최근 인천 등에서 수십 채의 빌라를 소유하고 있던 20대 바지 사장 송 모 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전세사기의 마지막 장에서 희생양이 되는 건 바지 사장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아 둘 필요가 있습니다.
 

한 걸음 더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이 전세 사기를 예방할 수 있을까? 냉정하게 보면, 현 시점에서 제도적인 예방책은 없습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바지 사장들이 전세보증금을 떠안고 집을 매입하는 ‘무자본 갭투자’ 방식이 불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해 주택세입자 법률지원센터인 ‘세입자114’ 소속의 류재상 변호사는 “민법 체계를 바꾸지 않는 한 무자본 갭 투자를 금지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세입자 스스로 조심하는 수밖에 없는데요. 애초에 신축 빌라나 신축 소형아파트는 전세 사기 세력들의 놀이터이기 때문에 계약을 신중히 해야 하고, 신축 빌라가 아닐지라도 등기부 등본에 나오는 거래가액과 집주인이 요구하는 전세 보증금 액수가 같거나 큰 차이가 없다면 역시 계약을 서두르지 않을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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