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이 지구에서 7천6백 광년 떨어진 '용골자리 성운' 촬영한 사진 | ⓒ미국항공우주국(NASA)
우리 안의 혐오는 어느 정도일까요? 사회적 소수자에게 편중됐던 혐오는 이제 대상을 가리지 않고 발산되고 있습니다. 특히 소셜미디어가 혐오를 더 키우는 촉매제가 됐습니다. 각종 기사마다 그리고 유튜브 영상마다 혐오 표현이 담긴 댓글이 넘쳐나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특정인을 좌표 찍어 혐오하는 게 하나의 놀이가 된 지 오래됐습니다. 여기에 이들의 분노와 적개심을 대놓고 자극하는 정치까지 가세하면서, 온라인에서 파생된 혐오는 오프라인으로, 그리고 제도권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런 혐오가 '범죄'로 이어지기 전에… 민주주의가 더 '악화'되기 전에, 이 '혐오의 시대'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이런 고민을 하다가 SDF팀이 몇 달 전부터 꽂힌 책이 '혐오 없는 삶(In Search of Common Ground: Inspiring True Stories of Overcoming Hate in a Divided World)'입니다. 독일 시사 주간지 '디 차이트(Die Zeit)' 편집장인 바스티안 베르브너(Bastian Berbner)가 2019년에 쓴 책인데요,
독일도 '혐오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합니다. 그중에 제일 심각한 게 '난민'에 대한 혐오라고 하는데요, 독일 정부는 지난 2015년 시리아 난민 100만 명을 받아들였습니다. 전 세계의 찬사를 받으면서 말이죠. 그 뒤에도 계속 난민을 수용해 지금은 누적 난민 수가 130만 명이나 됐는데요, 문제는 2016년 쾰른에서 일어난 난민에 의한 집단 성폭행 사건을 계기로 난민에 대한 독일 여론이 싸늘해졌습니다. 강력 사건이 터지면 무조건 난민부터 의심하기 시작했는데요, 역시나 이 틈을 비집고 난민 혐오를 부추기는 극우 정당까지 득세하면서 '난민 혐오'는 '인종 혐오'로까지 번져갔다고 합니다.
'디 차이트(Die Zeit)' 편집장과 기자들은 퍼져가는 혐오를 누그러뜨리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다가, 양극단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하는 '독일이 말한다(Deutschland Spricht)' 프로젝트를 생각해냅니다. 직접 만나 얼굴을 보고 대화를 하면, 편견과 증오가 조금이라도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기획했다고 합니다.
▲ 디 차이트(Die Zeit)의 '독일이 말한다' 사이트
'디 차이트'는 이 프로젝트를 2017년 5월 본격적으로 진행합니다. 온라인으로 참가자들을 모집하고 다섯 개 현안에 대한 질문을 준 뒤 '네', '아니오'로 답변하게 했습니다. 당시 질문을 한 번 찾아봤는데요, "독일은 너무 많은 난민을 받아들였나요?", "독일은 유로화를 포기해야 하나요?", "원전을 포기해야 할까요?", "동성애 커플의 결혼을 허용해야 될까요? 등이었습니다. 지금 봐도 다 민감한 현안들인데요,
▲ '독일이 말한다' 참가 신청 페이지. "러시아로부터 가스 수입을 중단해야 하나?" 등 참가자 성향 분석을 위한 질문 게재.
당시 '독일이 말한다' 프로젝트에 1만2천 명이나 참가했습니다. 주최 측은 극단적인 답변을 한 사람 가운데 상대편의 이야기를 만나 들어볼 의향이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해줬는데요, 그렇다 보니 토론 상대자로 난민 혐오자, 나치주의자, 동성애 혐오자, 우익 극단주의자, 이슬람 급진주의가 나왔습니다. 대화를 시작하기도 전에 논쟁부터 할까 봐 걱정됐는지 '디 차이트'는 10가지 대화 규칙을 만들었습니다. ▲상대방 이해하기, ▲주제 벗어나지 않기, ▲질문 많이 하기, ▲공통점 찾기, ▲가르치지 않기, ▲의견 존중하기, ▲근거 제시하기, ▲공감하기, ▲침착함 유지하기 등을 지키면서 대화하게 했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책 '혐오 없는 삶'에 관련 내용은 잘 적혀 있지만, 실제로는 어땠는지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독일이 말한다'를 진행한 '디 차이트(Die Zeit)'의 편집장 베르브너 편집장을 줌으로 인터뷰해 봤습니다.
[Q] '독일이 말한다' 프로젝트에 대해 관심이 많은데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A] 참가 희망자들에게 온라인으로 몇 가지 질문에 답하게 했습니다. 처음에는 질문 다섯 개로 시작해서 나중에는 일곱 개로 늘렸습니다. 이후 컴퓨터 알고리즘으로 답변을 분석해서, 가장 반대 성향을 가진 사람끼리 대화를 하게 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네'를 다섯 번 답한 사람과 '아니오'를 다섯 번 답변한 사람을 만나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가능한 같은 지역에 사는 사람끼리 만나게 했습니다.
[A] 정반대의 답변을 한 두 사람에게 메일을 보내 당신과 가까운 곳에 당신과 정반대의 입장을 가진 사람이 있는데, 혹시 커피나 맥주를 마시면서 대화나 토론을 하면 어떤지 제안한 것입니다. 아무 주제에 대해서나 얘기해본 뒤에 그 결과를 우리에게 알려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독일이 말한다'는 이렇게 시작됐는데, 의외로 반응이 폭발적이었습니다. 수만 명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겠다고 신청했고, 2017년에 전국에서 수천 명의 독일인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 SBS 이정애 미래팀장이 줌으로 디 차이트 베르브너 편집장을 인터뷰하고 있다.
[Q] 참가자들로부터 어떤 피드백을 받았나요?
[A] 실제로 꽤 많은 분들이 "앞으로 계속 이 분과 만나 토론을 이어 가겠습니다.", "대화가 아주 좋았습니다.", "좋은 대화였고 깨달음을 얻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처음 이런 메일을 읽었을 때는 '이게 무슨 일이지?'라고 생각할 정도로 의아했습니다. 그러던 중 읽고 있던 사회 과학 분야 문헌들에서 그 답을 찾았습니다. 거기에는 아무리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었더라도 서로 대면하면 자연스럽게 서로의 공통점을 찾게 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당시 2017년이었는데, 이런 프로젝트가 통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정말 기뻤습니다.
[A] 남성 한 명과 여성 한 명이 독일 바이에른 지방에서 만났습니다. 이 남성은 진보적인 성향을 갖고 있었는데요, 그는 '괴물과 같은 극우 여성'이 나올 거라고 상상했습니다. 그런데 호프집에서 기다리다가 자전거를 끌고 힘겹게 언덕을 올라오는 여성을 봤고 그는 곧 그 여성이 안쓰럽게 느껴졌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도 불과 몇 분 전에 자전거를 끌고 힘들게 언덕을 올라왔던 거죠. 여성이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말을 걸자, 그는 그녀가 서독 사투리를 쓴다는 것을 바로 알아챘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도 서독 출신이기 때문인데요, 알고 보니 두 사람 다 서쪽에서 남쪽 바이에른으로 이주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대화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들은 벌써 세 가지 공통점을 찾은 겁니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고, 서독 출신이고, 남쪽으로 이주했다는 것 말이에요. '난민 혐오'에 대한 토론을 시작하기도 전에 두 사람은 공통점을 찾은 건데요, 이런 것은 직접 만나서 대화하지 않고는 절대로 공유할 수 없습니다.
'독일이 말한다'는 2017년 이후 계속 열렸습니다. 매년 일대일이나 소그룹 형태로 만나 서로의 생각을 좁혀갔습니다. 지난해엔 2만4천 명이 참가해 1만4천 명이 대화와 토론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신기한 것은요, 이 가운데 1천5백 명은 두 번, 6백50명은 세 번, 48명은 무려 네 번이나 따로 만나 토론을 했다고 합니다. 또, 참가자 중 58% 이상이 대화 상대방과 계속 연락하고 싶다고 답했고, 55%는 토론을 통해 상대의 생각을 최소 하나 이상을 설득했다고 주최 측에 알려왔습니다. 대화와 접촉으로 사소한 일상을 공유하다 보니 자신의 편견이 흔들리고 누그러진 겁니다.
'독일이 말한다' 프로젝트는 유럽, 미국, 우크라이나, 태국 등 30개국 이상으로 확대돼 '내 나라가 말한다(My Country Talks)'의 형태로 열리고 있습니다. 어디까지 퍼져갈까요?
▲ '내 나라가 말한다(My Country Talks)' 사이트
[Q] '독일이 말한다' 프로젝트가 확대되어 '유럽이 말한다' '미국이 말한다'도 열렸네요?
[Q] 증오가 생기는 게, 우리가 사람들을 직접 만나지 않고 서로를 잘 몰라서 생기는 것으로 봐야 할까요? 남을 미워하는 이유는 뭘까요?
[A] 우리는 길거리의 낯선 사람과 대화하지 않습니다. 주로 활동하는 지역에서 고정관념을 가진 채 낯선 이를 경계합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경계는 편견과 증오, 폭력의 온상이 됩니다. 여기에 복잡한 정치적 상황과 위기가 더해지면 더욱 심각해집니다. 모든 곳에서 나타나는 현상인데요. 독일에서는 몇 년 전에 '난민 수용'에 따른 '난민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난민 혐오'가 정치권 내에서의 논의와 서로에 대한 생각을 어지럽혔습니다. 고립된 버블에서 살아가면서 굳어진 편견과 생각을 바로잡아줄 만남이 없다면, (증오 극복은) 매우 어렵습니다.
SDF도 지난 2019년에 "왜 온라인에서 더 대립하고 분열할까?", "실제 만나면 다른 상황이 생기지 않을까?"에 대한 답을 찾고자 '독일이 말한다'와 비슷한 사회실험을 했습니다. 먼저, 두 사람씩 두 그룹을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에서 만나게 했고요. 한 그룹은 곧바로 찬반 토론에 들어가게 하고, 다른 한쪽은 개인적인 대화를 조금 나누게 한 뒤에 토론을 하게 했습니다. 결과는 후자의 경우, 공감대가 생기다 보니 의견이 조금 다르더라도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고 존중하는 모습을 보였는데요, 모니터 화면 뒤에 숨어 채팅으로 하는 토론이 아닌, 서로 직접 만나 공유 지점을 찾아가며 대화하니까 생각의 차이를 좁힐 수 있었던 건데요. 당시 나은영 서강대 교수의 발표 영상입니다.
▲ 사진을 누르면 영상을 볼 수 있는 링크로 이동합니다
최근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칼럼을 기고하는 여덟 명의 필진들이 "제가 틀렸습니다(I Was Wrong About…)"로 시작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각자 과거에 쓴 칼럼이 잘못됐다고 일종의 '반성문'을 쓴 건데요, 꼬장꼬장해 보이는 필진들이 자책하다니 조금 놀랐습니다. 그중의 한 칼럼니스트의 글이 눈에 들어왔는데요, 트럼프 지지층을 도덕적으로 무식한 자라고 비난했다면서, 링컨의 명언을 인용해 생각이 다른 사람을 설득하고 내 편으로 만들려면 먼저 그들의 진정한 친구가 됐어야 했다고 밝혔습니다. 아마도 추측컨대 이 '정정 칼럼'을 쓰기 전에 트럼프 지지층을 포함해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서 생각을 정리하고 다듬지 않았을까 싶네요.
▲ 뉴욕 타임스(NYT) 오피니언 페이지
오늘날 우리는 안타깝게도 여러 '버블(Bubble)'에 갇혀 있습니다. 온라인에서는 빅테크 기업의 '인공지능 알고리즘'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알고리즘이 걸러줘서 보여주는 검색 결과와 광고만 보고 그게 세상의 전부인 줄 착각하게 됩니다. 오프라인에서는 코로나와 같은 바이러스 때문에 버블 안으로 피해야 합니다.
'필터 버블(Filter Bubble)', '소셜 버블(Social Bubble)'에 있다 보니 아무래도 듣고 싶은 것만 듣게 되고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됩니다. 그러다 자신도 모르게 편견이 쌓이고 잘못된 신념이 만들어지고, 그 버블이 하나의 부족이 돼 우리 집단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혐오하고 공격합니다. 이 악순환을 끊어야 하지 않을까요?
불편하지만 낯선 것을 접해야 이해가 시작되고, 더 자주 사람들과 접촉하고 대화해야 혐오와 편견이 줄어들 수 있다는 게 '독일이 말한다'가 주는 메시지인 것 같습니다. 이제 '혐오'와 헤어질 결심을 해야 될 때입니다. 저 광활한 우주를 보면서 겸손하게 용기 있게!
▲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이 관측한 ‘남쪽 고리 성운’ 모습. | ⓒ 미국항공우주국(NA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