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미크론 발견 한 달, 남아공에서는 무슨 일이?
지난 11월 초만 해도 하루 확진자 200, 300명에 불과하던 남아공에서 감염자가 치솟기 시작하더니 12월 17일에는 2만 3천400명이나 확진자가 쏟아졌습니다. 그런데 사망자는 신기하게도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11월 말, 10명대에서 최근 50-60명대를 유지하는 수준입니다. 물론 서서히 증가하고는 있지만, 오미크론의 무서운 확산세에 비하면 사망자 증가에 불이 붙었다고 표현하기는 아직 이른 상황입니다. 물론 확진자와 사망자 사이 발생 시차가 존재하지만 '오미크론이 진짜 약한 거 아냐?' 하는 추측을 가능하게 하는 부분입니다. 파우치 백악관 수석의료보좌관도 남아공 사례를 보면서 '고무적'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또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남아공의 확진자 숫자도 최근 갑자기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17일 정점 이후 쭉 떨어지면서 28일에는 1만 3천 명 수준으로 급감했습니다. 물론 아직 높은 수준이기는 했지만 오미크론이 로켓처럼 빨리 치솟다가 추락도 빨리 하는 거 아니냐는 추정이 나올 수 있는 부분입니다.
베타에서 오미크론까지…'변이 추적자' 툴리오 데 올리베이라
툴리오 데 올리베이라 박사는 누가 봐도 바쁜 게 분명했지만, 남아공 상황을 정확히 물어보기 위해 조심스럽게 접촉했었습니다. 이미 한 달 전에 연락을 했지만 답을 받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오미크론에 대한 궁금함과 관심이 폭증하는 상황이어서 다시 연락을 했는데, '당신이 바쁜 건 너무 잘 알지만, 당신의 경험을 한국과 나눠줄 수 있겠냐'고 요청했던 메시지에 그가 반응했습니다. 인터뷰를 하면서 고맙다고 몇 마디하고 시작했는데, 그의 첫 반응은 "나는 도와주려고 여기 나왔다"였습니다. 자신이 가진 질병에 대한 지식을 나누겠다는 마음을 먹고 인터뷰에 응해줘서 고마웠습니다.
"오미크론이 약한 게 아니라 사람들이 면역력 갖춘 것"
데 올리베이라 박사는 지금처럼 오미크론을 순하게 유지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백신 접종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한두 번 말한 정도가 아니라 백신 접종이 오미크론 대응에서 핵심 중 핵심이라는 취지로 귀에 못이 박히도록 설명했습니다. 백신이 전파 자체를 막지 못하지만, 심각한 질병과 사망을 막아준다는 것을 자신들이 연구 결과로 확인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남아공의 자료뿐만 아니라 영국, 미국의 자료까지 다 봐도 병원에서 심각하게 아픈 사람의 절대 다수는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백신을 안 맞은 사람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백신을 맞으라고 권하겠냐고 물어보니, "당연히 맞으라고 권할 것"이라고 답변했습니다. 백신을 접종한지 2, 3개월이 지나면 부스터 접종까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며, 추가 접종에 대단히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자기 연구실은 전원 부스터까지 다 맞았다고 말해주기도 했습니다.
그는 남아공에서 확진자가 급감하는 것을 긍정적인 신호라고 예단하기 어렵다고 평가했습니다. 확진자가 감소하는 것은 연말 휴가철이 겹치면서 진단검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 그럴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리고 일단 가족들이 모이는 휴일에는 증세가 나타나도 결과가 나쁘게 나오면 너무 번거로운 일이 생길까봐 검사를 더 피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여전히 확진율이 20%에 달하기 때문에 남아공 상황이 진정세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덧붙였습니다. 앞으로 오미크론이 남아공에서 감소세에 접어들고 있다고 말하려면 아직 1, 2주가 더 필요하다고 전망했습니다.
그는 한국이 처한 코로나 상황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한국의 성공적인 방역 사례를 잘 알고 있다며 오미크론을 잘 극복해서 성공 스토리를 이어갔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백신 접종률이 높은 한국 사회가 공포감에 빠지는 건 도움이 안 된다고 조언했습니다. 부스터 접종을 비롯해 백신 접종을 위해 더 노력하면서, 마스크 쓰기, 거리두기 등 기본을 잘 지켜야한다고 말했습니다. 당장 연말에 대규모로 사람 모이는 행사를 피해서 오미크론이 대규모로 확산하는 걸 막아야한다고 충고했습니다. 그는 우리나라에 최선을 희망하면서 최악에 대비해야한다고 인상적인 말을 남겼습니다.
"오미크론 조기 발견이 크리스마스 선물"…남아공은 오미크론을 어떻게 규명했나
그는 자신이 남아공 전국에 걸쳐 10개의 유전자 분석 연구소 네트워크를 관할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조직은 평소 다양한 변이 연구를 진행하기 때문에 분석 작업이 대단히 효율적이고 커뮤니케이션도 매우 빠르다고 합니다. 오미크론의 유전자 분석을 통해서 너무 특이한 스파이크 변이를 확인했는데, 36시간 안에 쌍둥이처럼 동일한 결과를 100개 넘게 수집했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결과를 받아 들고 자신이 직접 보건부 장관에게 전화를 했고, 이 결과는 전 세계에 공개해야 한다고 설득했습니다. 보건부 장관도 자료 공개에 동의하면서 데 올리베이라 박사가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를 할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대통령을 직접 설득해 오미크론 공개 기자회견을 열도록 했습니다. WHO와도 분석 결과를 공유하면서 이 변이는 그냥 넘어갈 게 아니라는 걸 설득했습니다. WHO와 긴급 미팅을 잡고 결과를 공유했고, 그래서 WHO도 우려 변이로 바로 발표한 것입니다. 데 올리베이라 박사는 변이를 확인할 수 있는 과학자들과 그걸 믿어주는 정부가 남아공에 있었던 게 다행이라고 당시 상황을 회고했습니다.
다른 나라들의 여행 금지 배신…"살해 협박 많이 받았다"
데 올리베이라 박사는 자신을 비롯해 연구팀이 살해 협박을 많이 받았다며 담담하게 털어놨습니다. 사실 영웅이라고 칭송을 들어도 시원치 않을 연구팀이 국가의 역적으로 내몰렸던 것입니다. 그가 트위터에 왜 분노의 글을 쏟아냈는지 이해가 갔습니다. 그는 여행 금지조치는 효과가 전혀 없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습니다. 백신을 맞은 사람들에게 입국 전후로 코로나 검사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바이러스 확산을 막으면서 국가 간 이동을 보장해야지 항공편 자체를 끊는 건 아무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방역조치는 경제 정책과 균형을 잡아서 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방역의 고삐를 아무리 세게 쥐려고 해도 경제가 뒷받침이 안 되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여행 금지 같은 극단적인 조치는 코로나 장기전을 치르면서 큰 효용이 없다고 이미 여러 차례 겪은 바 있습니다. 전 세계 물류 시스템만 망가뜨리면서 결국은 자기 발등 찍는 일이 됐지만, 인류는 계속 똑같은 실수를 반복했습니다. 미국도 결국 남아공을 비롯한 남아프리카 8개국에 대한 여행 금지조치를 31일부터 해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지금은 데 올리베이라 박사 연구팀이 오미크론을 먼저 공개한 것에 대한 비난 여론이 잦아들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그렇게 자료를 공개하기로 한 것이 결과적으로 잘한 일이라는 여론의 지지가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는 변이 바이러스를 신고하는 국가에 경제적인 보상책을 주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 거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변이를 은폐할 유인만 커진다는 것입니다. 뉴욕타임스 등 미국 언론에서도 남아공에 금전적으로 보상해줘야 한다는 칼럼이 실제로 실리기도 했습니다.
"오미크론보다 더 센 변이가 나온다"…백신 불평등 해소가 중요한 이유
코로나는 어느 한 나라 혼자 잘해서는 해결이 안 된다는 걸 지난 2년 동안 가르쳤습니다. 부자 나라들의 백신 사재기는 여전하지만, 또 한쪽으로는 전 세계적으로 백신 거부감과 음모론도 갈수록 커지는 상황입니다. 백신 제약사들은 돈벌이에 혈안이 돼 백신에 대한 대중의 혐오감을 부추기고 있고, 그 결과 새로운 백신이 나와도 백신 거부감은 엄청날 게 분명. 게다가 변이를 발견한 국가의 투명한 정보 공개와 신속한 행동에 벌을 주는 행동이 반복된다면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코로나는 인류의 발목을 오래 잡을 수 있다는 걸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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