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민주화운동 희생자 명예를 훼손한 혐의(사자명예훼손)로 기소된 전두환 전 대통령이 27일 두 번째 법정에 출석했다.
건강상의 이유로 그동안 불출석해온 전씨가 중간에 재판장이 교체되면서 지난해 3월에 이어 1년여만에 두 번째 출석으로 시민들에게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전씨는 2017년 4월 펴낸 회고록에서 5·18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를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한 혐의로 기소됐다.
'사자명예훼손'은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해 숨진 사람의 명예를 훼손해야 성립하고, 진실한 사실을 적시한 경우에는 성립하지 않는 범죄다.
이에 따라 '1980년 5·18 당시 헬기 사격이 있었는지'가 재판의 핵심 쟁점이다.
헬기 사격이 사실이면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수 있지만, 없었다면 허위 사실을 적시한 게 아닌 셈으로 모욕죄는 될지언정 명예훼손죄는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재판 1차 공판은 2018년 8월 27일 시작됐지만, 전씨가 관할 이전 신청을 하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재판부에 항고하고, 기일 연기 신청을 하거나 건강상의 이유로 불출석하는 등으로 수차례 지연됐다.
재판이 장기화하면서 재판장도 법원 정기인사나, 총선 출마로 사퇴하면서 두차례나 바뀌었다.
지난해 3월 구인장까지 발부돼 전씨는 "이거 왜 이래"라는 말을 남기고 3차 공판에 출석,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됐지만, 헬기 사격 관련 증인들의 증언을 듣는 데만 1년이 다 걸렸다.
전일빌딩에 남아있는 탄흔이 '헬기에서 발사된 총탄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 결과 외 '스모킹건(결정적 증거)'이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주장하는 검찰 측 증인과, 이에 반하는 변호인 측 증인이 계속 법정에 출석해 상반된 증언을 하고 있다.
이전 재판부는 결국 올해 2월까지 증인신문을 모두 마무리하고 주요 증거 조사는 기일을 따로 잡되 다른 증거 조사들은 의견서를 제출받아 재판이 지연되는 것을 막겠다고 했지만, 재판장이 총선 출마로 사퇴하면서 재차 재판이 미뤄졌다.
새 재판장으로 교체됐고, 전씨가 재출석하면서 다시 재판은 재개되지만 '헬기 사격'의 진위를 따지는 공방은 법정에서 계속될 것으로 관측된다.
여기에 전씨 측 변호인은 추가적인 쟁점을 내세우며 재판 전략을 짜고 있어 재판 과정은 첩첩산중이다.
전씨 측 변호인은 헬기 사격이 사실이더라도 전씨가 일부러 이를 모른 체하고 조 신부를 '거짓말쟁이'로 지칭한 고의성이 없다는 것과 헬기 사격은 '논쟁적인 사안'으로 전씨의 회고록의 헬기 사격 부정은 개인의 표현 자유 영역이라는 논지를 펴고 있다.
즉 헬기 사격은 진실이더라도 전씨는 이를 모르고 주장했기에 모욕은 될지언정, 고인에 대한 명예훼손은 아니라는 취지다.
재판부가 상반된 증언 속에서 헬기 사격 진위를 어떻게 판단할지와 후속 쟁점인 고의성 여부와 표현의 자유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주목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