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대남 특사 역할을 해 왔던 김여정이 청와대를 저능하다고 비난하는 상황에서 북한의 의도가 무엇인지 청와대는 부심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 위원장의 메시지가 그것도 친서라는 가장 극적인 형식으로 전달됐다. 친서 내용 또한 문 대통령의 건강을 걱정하며 신뢰를 보내는 매우 감성적인 것들이었다. 청와대가 남북협력의 가능성에 기대를 거는 것도 무리가 아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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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리고 어르는 북한
우리 주변에서도 이런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회사의 상사가 하급직원에 대해 심하게 질책하면 하급직원은 주눅이 들고 힘이 빠진다. 하지만, 얼마 뒤 상사가 밥이라도 한 끼 사주면서 다독이면 서운함은 금세 사라지고 앞으로 잘해야겠다는 의지가 생긴다. 하급직원이 예전보다 더 열심히 일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질책과 위로, 채찍과 당근은 예전부터 사람을 다루는 기본 용인술 중의 하나이다.
북한에서도 이런 용인술은 심심치 않게 사용된다. 실책을 저지른 당 간부들을 농장이나 공장에 보내 혁명화 작업을 시키다가 재등용하는 것이다. 혁명화란 농장이나 공장에서 고된 일을 하며 사상을 개조시키는 작업을 말한다. 이렇게 모든 것을 잃었다가 다시 당의 부름을 받은 사람들은 김 씨 일가에 대한 충성심을 더욱 보여주게 된다고 한다.
● 북, 남한과 대등한 관계 추구하지 않아
김여정 담화를 통해 청와대를 맹비난했다가 만 하루도 안돼 김정은의 친서를 전달한 것은 북한이 전형적인 채찍과 당근의 방법을 남한에 활용한 것이다. 남북관계 개선을 바라는 남한 정부에 채찍을 써도 궤도에서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판단 하에, 채찍 뒤의 당근으로 더 큰 효과를 노린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이뤄지는 관계는 상호 존중의 관계가 아니다. 상사가 하급직원을 혼내고 달랠 때 대등한 관계라고 생각하지 않듯이, 북한은 지금 남한과 대등한 관계를 맺으려는 것이 아니라 남한을 그야말로 필요한 만큼 '다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의 친서에 코로나19와 싸우고 있는 우리 국민에 대한 위로와 문 대통령에 대한 신뢰의 뜻이 담겼다고 하지만, 그 말이 곧이곧대로 와닿지 않는 이유이다.
● 한미공조보다 남북협력 앞세우라는 게 북한 요구
북한의 의도가 무엇이든 우리 정부는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달성하겠다는 생각이겠지만, 다시 한번 북한의 협상술에 휘둘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대목이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