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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미세입자 유해성 판단 가능, '제2의 가습기 살균제 사태' 막는 계기 될까

[취재파일] 미세입자 유해성 판단 가능, '제2의 가습기 살균제 사태' 막는 계기 될까
● 3주면 미세입자 유해성 판단 가능

2011년 4월, 서울의 한 병원에 어두운 그림자가 찾아왔다. 원인불명의 폐 질환으로 임산부들이 사망했고, 곧이어 비슷한 사건이 전국 곳곳에서 발생했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라 불리는 이 사건은 지금까지 사망자만 1,400여 명, 피해자는 6,500여 명을 낳았다.

사고의 원인은 당시 가습기 살균제에 사용됐던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디닌) 인산염과 PGH(염화에톡시에틸구아디닌). 모두 미세한 입자가 공기를 통해 인체에 들어간 것이었다. 살균제 업체가 해당 물질의 유해성을 알고 있었는지에 대해선 아직 조사 중에 있다. 하지만, 당시도 그리고 최근까지도 미세입자의 유해성을 판단하는 제대로 된 방법은 없었다. 일단 미세입자를 실험실에서 만들기 힘들었고, 미세입자를 확보해도 유해성 판단에 적게는 반년 길게는 1년 이상이 걸렸다. 언제든 제2의 또는 제3의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단 이야기다.

이런 가운데 최근 국내의 한 연구팀이 미세입자 유해성을 빠른 시간 안에 판단할 수 있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한국연구재단 기초연구사업의 지원으로 수행된, 연세대 황정호, 영남대 김종오, 변정훈 교수 공동 연구팀은 나노미터(nm) 수준의 미세입자 유해성을 3주 안에 판단할 수 있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기존에 실험실에서 구현이 어려웠던 미세먼지 수준의 입자를 구현해 냈고, 실험은 생체 수준까지 진행해 유해성을 판단했다.

● 고농도 미세입자 직접 주입해 실험

미세입자가 유해하다는 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어떤 입자가 얼마 만큼 유해한지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없었다. 실험실에서 미세입자를 구현해내는 것 자체가 어려웠기 때문에 충분한 연구가 이뤄지지 못했다. 기존의 실험 방법인 스파크방전법과 flow heater를 이용한 열처리법 등을 통하면 미세입자를 만들어 내는 데만 1~3일 정도가 소요된다. 이렇게 미세입자를 만든다 하더라도 소량만을 만들 수 있어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하기 힘들었다. 유해성 판단을 위해 입자를 세포나 실험용 쥐에 노출시켜도 결과를 얻는 데만 반년에서 1년이 소요돼 개연성이 떨어졌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에서 단 몇 초 만에 미세입자를 만들 수 있는 시스템(plug-in system)을 개발했다. 입자를 쉽게 만들 수 있다 보니 고농도 미세입자를 만들어 낼 수 있었고, 이를 세포와 실험용 쥐에 직접 주입할 수 있었다. (기존의 실험 방식은 공기 중을 통한 노출)

실험은 세포 수준에선 미세먼지에 가장 많이 노출되는 피부 세포(HDF)와 폐포 세포(WI-38)를 사용했다. 각각의 세포에 미세입자에 주입시키고 세포 생존력을 검사해 유해성을 따졌다. 그 결과 하루 이틀 안에 미세입자들에 대한 유해성을 판단할 수 있었다.

*실험엔 중금속인 Cu(구리)와 준금속인 Te(텔루륨) 미세입자를 사용함.
<아래 그래프 참조>
미세입자 유해성 판단, 관련 실험 데이터입니다.
생체 수준 실험에선 실험용 쥐를 사용했다. 이번에도 미세입자를 실험용 쥐에 주입해, 18일 동안의 쥐들의 몸무게와 생존 여부 등을 관찰했다. 실험 결과, 특정 입자에 대해선 몸무게가 줄었고, 시간이 지나자 사망하는 쥐들도 발견됐다. 이 역시 18일 동안이라는 짧은 시간 내 나온 데이터라 개연성이 충분했다.

● 유해성은 낮추고 항균성 더한 입자

연구팀은 미세입자에 항균성을 더하는 실험도 진행했다. 실험은 항균성은 좋지만, 인체에 유해한 물질인 Cu(구리)로 진행했다. 인체에 무해하지만, 항균성은 있는 물질을 만드는 것이 연구 목적이었다. 연구팀은 Cu에 생친화적인 물질인 준금속 Te(텔루륨)을 더해, 안전한 물질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항균성 실험 역시 세포와 생체 수준에서 모두 진행됐다. 실험 결과 생체 수준 실험에선, 새로 만들어진 미세입자가 항생물질(CHL : 클로람페니콜) 정도의 좋은 항균 효과를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체에 무해한 미세입자가 박테리아를 죽이는 항생제 역할도 한 것이다.
<아래 그림 참조>
미세입자 유해성 판단, 관련 실험 데이터입니다.
● 제2의 가습기 사태 막고, 미세먼지 문제까지 해결 할 수 있을까?

빠른 유해성 판단을 통해선 앞으로 가습기 살균제와 같은 사태는 방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렇다면 항균 입자를 만든 기술로 미세먼지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어렵다. 기술의 상용화 문제도 있지만, 항균 미세입자가 100% 인체에 무해하다고 말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실험에선 유해성이 거의 없게 나왔지만, 작은 미세입자가 체내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아직 모르기 때문이다. 폐포에 침착될 수도 있고, 혈액을 타고 들어가 혈류의 흐름을 방해할 수도 있다. 과학적 한계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연구가 계속되고 기술이 상용화된다면 유해성을 낮추는 방식만으로도 국민들이 받는 피해는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가령 산업 부문에 기술을 접목시킬 경우, 용접과정에서 나오는 Cu나 Ag(은) 같은 중금속 입자들의 유해성을 대폭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절반은 성공이다.

미세먼지 주 발생지가 산업과 축산업 등인 점을 생각해보면, 미세먼지 발생 자체를 줄이는 일은 쉽지 않다. 미세먼지를 유발하지 않는 친환경에너지 개발도 요원한 상태이다. 결국엔 문제의 근원인 미세먼지 자체를 없애야 하겠지만, 우리 생활에서 필수불가결하게 발생하는 미세먼지 피해도 어떻게 최소화할지에 같이 고민해야한다.

<참고문헌>

M. Gautam, D.H. Park, S.J. Park, K.S. Nam, G.Y. Park, J. Hwang*, C.S. Yong, J.O. Kim*, and J.H. Byeon*, "Plug-in safe-by-design nanoinorganic antibacterials," ACS Nano 13 (2019) 12798. (doi:10.1021/acsnano.9b04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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