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지금 보고 계신 이 사람은 박근혜 정부 시절인 지난 2016년부터 1년 넘게 관세청장을 지냈던 천홍욱 씨입니다. 최순실 씨에서 이제는 이름을 바꾼 최서원 씨의 추천으로 당시에 관세청장이 된 거라는 논란도 있었는데 취임 이후 최 씨를 만나서 실망하지 않게 최선 다하겠다고 말했던 게 이후 검찰 조사에서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이런 천 씨는 2017년 퇴직 이후 지금은 한 관세 법인의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SBS 탐사보도 끝까지 판다 팀은 방금 보신 천 씨를 비롯해 관세청의 높은 자리를 지냈던 사람들이 자기 인맥과 또 관세청의 내부 정보를 이용해서 자기들 잇속을 챙기고 있다는 의혹을 오늘(26일)부터 하나씩 파헤쳐 보겠습니다.
먼저, 강청완 기자가 그 실태를 취재했습니다.
<기자>
의료장비를 수입하는 이 중견업체 경영진에 지난 9월 말 비상이 걸렸습니다.
인천세관으로부터 기업 심사 나온다는 통보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세관의 기업심사는 기업이 수출입 과정에서 세금을 제대로 냈는지 조사하는 제도입니다.
국세청 세무조사와 비슷합니다.
[의료장비 수입업체 직원 : (심사 나오면) 거의 다 가져가더라고요. 서류하고. 컴퓨터도 마찬가지고, 휴대전화도 마찬가지고. (벌금이 최대) 수억 나온다 그러더라고요. 기업 입장에선 상당히 부담이 되겠죠.]
업체 측은 며칠 뒤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고 말합니다.
전화를 건 사람은 전직 관세청장 출신으로 지금은 유명 법무법인 계열의 관세법인 회장으로 있는 천홍욱 씨.
천 씨는 지난 2016년 박근혜 정부 비선 실세로 불린 최서원 씨 추천으로 관세청장에 발탁된 것으로 알려진 인물입니다.
취임 직후 최 씨에게 "실망시키지 않겠다"고 말해 충성 맹세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의료장비 수입업체 담당자 : (천홍욱 전 관세청장?) 네 맞습니다. (기업 심사받는다고 소문이) 났는데 어떻게 준비 잘 되고 계시냐 하고 (물어보더라고요.)]
기업심사 정보는 기업의 주가 등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어서 외부 유출이 엄격히 금지돼 있습니다.
이토록 민감한 비밀 정보를 천 회장이 어떻게 알게 됐을까?
[○○ 관세법인 직원 : 혹시 어떤 건으로 오셨는지… (수임 관련 건인데 말씀을 직접 드리면 아실 텐데.) 명함을 좀 (주세요.) 끝나고 바로 전달해 드릴게요.]
천 회장은 사무실에 있었지만 취재진과의 만남은 거절했습니다.
[○○ 관세법인 직원 : 끝나고 바로 외부일정 있으셔서 나가보셔야 될 것 같다고 하시거든요. 그래서 오늘 만나기 좀 어려우실 것 같다고… (여기 지금 계시는 거잖아요. 그럼 나오실 때 잠깐만 여쭤볼게요.) 연락처 남기시고 가주세요. (연락처 아까 드렸잖아요.) 지금 일하고 있는데…그러니까 나가시라고.]
천 회장은 이튿날 법인 관계자를 통해 "그런 적이 없다"거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서 업체에 전화 건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며칠 뒤에는 "심사 대리가 가능하다는 취지로 이야기한 적은 있는 것 같다"고 말을 바꿨습니다.
전화를 걸기는 했지만 심사 정보를 알고 연락한 건 아니라는 겁니다.
하지만 전화를 받은 업체 직원의 기억은 다릅니다.
[의료장비 수입업체 담당자 : (심사 개시 통보를) 받고 막 정신이 없는 과정에서 연락이 와서 '능력이 있네' 그렇게 속으로 생각했어요.]
관세청 고위직 출신의 이른바 전관들이 심사나 조사 정보를 먼저 알고 접근하는 사례는 적지 않습니다.
[○○ 수출입업체 담당자 : 관세청에서 연락을 받아야지 업체를 통해서 받을 수는 없는 정보라고 알고 있는데, (관세법인에서) 갑자기 그렇게 와서 제가 굉장히 화를 냈었던 것 같아요. (전화 건 관세사가) '아 죄송하다, 없던 일로 해주세요' 라고…]
관세 사회에서조차 강력하게 조치하겠다는 공문을 낼 정도입니다.
[여기뿐만이 아니에요. 관행(Practice)이에요. 이쪽 업계가. 만약 감사가 시작한다고 하면 (전관 관세사가) 접근을 하죠.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건 (어떤 것들이 있고)… 어려운 것도 아니고 (라면서.)]
끝까지 판다 팀의 취재가 시작되자 관세청은 천홍욱 회장이 어떻게 심사정보를 취득했는지 경위를 파악해 위법 사항이 발견되면 엄정 조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영상취재 : 조창현, 영상편집 : 하성원, VJ : 김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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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정리를 해보면, 관세청이 한 기업을 조사하는 것은 상당히 민감한 내용이기 때문에 그것이 밖으로 절대 나가서는 안 되는 것인데, 관세청 고위직 출신들은 그것을 알아내서 해당 업체에 접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이것은 내부의 도움 없이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연결돼 있는 것이고, 또 왜 직원들은 이미 관세청을 떠난 사람들에게 정보를 흘리고 있는 것인지, 계속해서 김지성 기자가 전하겠습니다.
<기자>
지난 7월, 부산의 한 무역회사를 관세청이 압수수색했습니다.
압수수색 다음 날, 업체 대표는 관세청 고위직 출신의 관세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무역회사 대표 : '어제 압수수색 받으셨죠?' 그래서 제가 '실례지만 어디십니까?' 그랬더니 관세법인 00라고 하더라고요.]
이른바 전관 관세사는 업체 대표가 부산세관에 출석해 관세법 위반 혐의로 조사받은 사실도 알고 있었습니다.
[무역회사 대표 : '조사는 잘 받으셨습니까?' 그러더라고요. '그건 어떻게 아세요?' 그랬더니, '아, 다 후배라고 했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다 알고 있습니다' 이러더라고요.]
[정우진/무역회사 이사 : 조사받고 나와서 점심 먹고 있는데, 실시간으로 거의 뭐 이거를 다 알다시피 하니까….]
관세사는 세관 조사가 끝나기도 전에 다시 연락해 벌금 예상 액수까지 알려줬다고 업체 측이 말했습니다.
[정우진/무역회사 이사 : (수출액의) 20%가 벌금이 나옵니다. 8억 6천만 원 벌금 나오는 걸 안 나오게 해줄 테니 그 8억 6천만 원 중에 20%를 저희한테 (성공보수로) 달라….]
관세사는 또 SNS 메시지로 "일전에 관세청 담당 과장과 계장을 면담했다", "관세청 방문을 통해 수사 진행상황 등을 알아보고 연락드리겠다"는 식으로 자신의 네트워크를 과시하며 수임 계약을 종용했다고 업체 측이 주장했습니다.
이 회사를 조사한 관세청 팀장은 해당 관세사를 알기는 하지만 수사 정보를 누설하지는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관세청 팀장 : 예전에 같이 근무했었던 분입니다. (팀장님이 (수사 정보를) 말씀하신 적은 없다는 거죠?) 그렇죠.]
하지만 업계에서는 기업 심사나 수사 정보를 현직 관세공무원으로부터 파악한 뒤 해당 기업에 접근하는 것이 전관 관세사들의 전형적인 영업 형태로 보고 있습니다.
[관세법인 대표 : 현직 관세공무원들의 내부 정보를 통해서 영업을 하는, 관세법인과의 유착을 통해서, 그런 부분들이 사실 비일비재합니다.]
업계 관계자들은 또 현직 공무원들이 정보를 흘리는 것은 일종의 보험금 성격이라고 말합니다.
조사를 받거나 통관에 어려움을 겪는 수출입업체를 관세법인과 연결해 정기적인 컨설팅 비용을 받게 한 뒤 퇴직 후 해당 관세법인으로 옮겨 수익을 나눠 갖는다는 것입니다.
[관세법인 대표 : 퇴직 전에 미리 물량을 확보해서 그걸 바탕으로 관세법인에 취직을 해서 월급 형태로 받는 거죠. 그 기업들이 이슈가 있을 땐 자기가 그걸 풀어주는 해결사 역할을 해주고….]
관세청은 부산 무역회사 수사 정보가 유출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담당 팀장을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영상취재 : 조창현, 영상편집 : 원형희, VJ : 김준호, CG : 홍성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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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관세청은 모든 통관 업무를 담당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출·수입으로 먹고사는 회사들, 거기서도 규모가 좀 작은 업체 입장에서는 관세청이 가장 힘세고 또 두려운 곳일 것입니다. 그런 기관이 수사를 한다고 하면 더 위축될 수밖에 없겠죠.
그런 점을 이용해 대한민국 국경을 지켜야 할 관세공무원들이 기밀 정보를 흘리면서 서로 챙겨준다는 의혹, 끝까지 판다 내일 이 시간에는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 한 단계 더 파헤쳐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