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17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의 반정부 시위대 옆을 교육부 장관의 차량 행렬이 지나가자 급격히 긴장이 고조됐습니다.
불상사를 우려한 경호원이 차량 밖으로 나와 밤하늘을 향해 발포했고, 이는 시위대를 더욱 자극했습니다.
일촉즉발의 순간, 시위대에서 한 젊은 여성이 튀어나와 무장 경호원의 사타구니를 걷어찼습니다.
주위를 둘러본 경호원은 비무장 여성 시위대에 반격해 봐야 얻을 게 없다는 걸 직감하고는 대응을 포기했고, 주변의 긴장도 급격히 풀렸습니다.
이 순간을 담은 영상은 온라인과 소셜미디어에서 '레바논의 라라 크로프트'라는 별명과 함께 순식간에 큰 화제가 됐습니다.
정부 부패와 경제난으로 누적된 불만이 정부의 '왓츠앱' 등 온라인 메신저 부담금 부과계획을 계기로 이달 17일 대규모 시위로 분출했습니다.
시위 주제는 종파나 종종 갈등 등 정치·이데올로기보다는 삶의 문제였기 때문에 여성들도 적극적으로 동참, 부패 척결과 실업난 해소를 요구하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여성 참가자는 외국 언론에 "정치인들이 급여와 생계를 빼앗았다"면서 "하나 있는 아들을 학교에도 못 보내는 형편"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시위 영상을 보면 확성기를 잡고 구호를 외치거나 시위대 최일선에 선 여성이 어김없이 등장합니다.
레바논의 라라 크로프트 영상이 보여주듯 여성의 적극적 참여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비폭력 노선을 유지하게 하는 힘이 되고 있다고 독일 공영 도이체벨레(DW) 영어판이 보도했습니다.
영상 속 여성 시위 참가자들은 히잡을 쓴 중년 무슬림과 짧은 소매로 신체를 드러낸 세속주의자까지 인종, 나이, 종교를 가리지 않습니다.
베이루트는 수니파와 시아파 무슬림, 기독교인, 드루즈인 등이 혼재된 사회로, 중동권의 다른 대도시와 달리 평소 거리에서도 다양한 차림새 여성을 볼 수 있습니다.
이번 반정부 시위가 전국적 대규모 시위로 이어지고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으면서 레바논 시위대 속 여성의 모습이 중동 여권운동(페미니즘)계와 여성 전체에 영감을 불어넣고 있다고 도이체벨레는 전했습니다.
이집트 여성계 인사 헨드 엘콜리는 소셜미디어 계정에 "남자다움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레바논 시위 현장에서 볼 수 있다"고 적었습니다.
콜리는 "시위대 여성들은 안전을 느낀다. 어떤 남성도 여성의 자유를 제한하려 하지 않고, 여성을 언어나 힘으로 괴롭히려 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