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이렇게 화성 사건에 대한 수사가 이뤄지는 가운데 당시 퍼졌던 괴담들도 다시 세간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영화에서 연출한 것처럼 범인이 빨간 옷을 입은 여성을 노렸다, 비가 오는 날이 위험하다, 같은 여러 가지가 있었지요. 실제 사건과 비교해보고 이런 괴담이 급속히 퍼졌던 배경까지 짚어봅니다.
사실은 코너, 이경원 기자입니다.
<기자>
[영화 '살인의 추억' : (죽은 두 여자 말이야, 뭐 공통점 같은 거 없나?) 사건 날 전부 비가 왔어요. (그래?) 빨간 옷. 죽은 여자가 빨간 옷을 입고 있었어요.]
영화 속 이 대사들, 사실이 아닙니다.
열 번 사건 중에 빨간 옷 입은 여성이 희생된 것은 4차 사건 단 한 번, 범행 당시 비가 온 날은 4차와 6차, 두 번뿐이었습니다.
괴담은 둘 다 해당된 4차 사건 때문에 생긴 것으로 추정됩니다.
괴담의 여파가 어느 정도였느냐, "빨간 옷을 입으면 죽는다, 조심해라" 이렇게 말하고 다닌 남성이 용의자로 특정됐다는 보도가 있습니다.
이 남성 경찰 조사에서 술김에 그런 말을 한 것으로 드러나 풀려났지만, 지레 겁먹은 주민이 경찰에 신고했을 정도로 불안감이 컸습니다.
이런 공포와 불안, 몇 달이 지나도록 범인 윤곽도 잡지 못한 경찰의 무능에서 비롯됐을 겁니다.
수사진 갈팡질팡, 초동 수사 미흡, 이런 비판 기사가 당시 많이 보도됩니다.
다른 맥락도 있습니다.
중앙 언론이 화성 사건을 보도하기 시작한 게 1987년 1월 14일.
바로 그다음 날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최초 보도됩니다. 민주화 열기는 고조됐습니다.
전두환 정권은 수사 인력을 대거 시위 현장에 투입하면서 마지막 몸부림을 칩니다.
치안 공백은 고스란히 주민 몫이 됐습니다. 불안은 가중됐습니다.
경비 업무에 수사 인력 차출하는 것을 비판하는 기사도 있었습니다.
빨간 옷 입지 마라, 비 오는 날 집에 있어라, 괴담은 대부분 거짓이었지만 공권력에 보호받지 못한 주민이 스스로를 단속하기 위해 만든 자구책에 가까웠습니다.
권력이 제 역할을 못 할 때, 무능하고 안일할 때 괴담도 기승을 부린다는 것, 80년대 괴담의 추억은 어쩌면 가짜 뉴스가 넘쳐나는 우리 시대에 어떤 교훈을 남기고 있을지 모릅니다.
(영상편집 : 김선탁, CG : 김민영)
(자료조사 : 김혜리·이다혜)
▶ '7차 사건 목격' 버스 안내원 접촉…제3목격자 존재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