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설립된 부산항운노조는 일반적인 노조와 다른 특이한 형태입니다.
부산항운노조는 취업하면 노조원이 되는 '클로즈드 숍'(closed shop)이 아닌 노조 가입만 하면 항만 업체에 취업할 수 있는 '프리 엔트리 클로즈드 숍'(pre-entry closed shop)입니다.
취업하려면 노조 가입이 우선입니다.
하지만 가입절차가 부실하고 객관적인 승진 기준도 마련돼 있지 않아 취업, 승진 시 금품 제공 유혹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 부산항운노조를 수사한 검찰 판단입니다.
과거 조합 가입에 1천만∼2천만 원에 필요했지만 최근 몇 년간 인기 있는 지부 가입에는 3천만∼5천만 원의 뒷돈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노조 가입이 되더라도 끝이 아닙니다.
조장 승진에 5천만 원 정도, 반장 승진에는 7천만∼8천만 원을 상납해야 한다는 것이 노조원의 전언입니다.
20∼30명의 조합원을 관리하는 반장은 일은 적으면서 연봉 7천만∼8천만 원을 받아 항운노조에서 꿈의 보직으로 통합니다.
구속기소된 전 위원장 이 모(70) 씨 혐의는 항운노조 취업과 승진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이 씨는 2009년 위원장에 당선된 지 1년여 만에 채용 비리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은 뒤 교도소에서도 동료 수형자의 아들을 항운노조에 취업시켜주겠다며 1천만 원을 받았습니다.
이 씨는 출소 후 일선에서 물러나 지도위원을 맡으며 각종 승진이나 정년 연장 대가로 한 번에 수천만 원씩 4억여 원이 넘는 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이 씨는 지부장 임명과 정년 연장 대가로 반장으로부터 7천520만 원 상당 고급차 대금을 대납받고 부산유도협회장 제자를 반장으로 승진시켜주며 1천만 원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 씨는 현직에서 물러났음에도 노조 간부를 통해 취업, 승진을 청탁해 대부분 성공시켰습니다.
● 은밀하고 구조적으로 진화하는 항운노조 비리
직전 위원장인 김상식(53) 씨 혐의는 전통적인 채용 비리에서 더 은밀해지고 구조적으로 진화하는 항운노조 비리를 보여준다는 것이 검찰의 분석입니다.
김 씨는 노사교섭 시 사측 입장을 반영해주는 대가로 조합원 348명의 연금보험을 아내 명의로 가입도록 해 수당 4천98만 원을 챙기고, 터미널운영사로부터 정리해고와 임금협상 협조 명분으로 1천500만 원을 받았습니다.
가장 새로운 형태의 비리는 김 씨가 주도한 부산신항 불법 전환배치입니다.
검찰은 2012년 이후 부산항운노조 지도부가 노조 간부 친인척 등 외부인 105명을 조합원인 것처럼 속여 신항 물류 업체에 불법 취업시킨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기존 조합원을 대상으로 하는 전환배치는 보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하고, 물류 업체는 숙련된 항운노조원을 채용하는 일종의 특별채용입니다.
하지만 항운노조는 이 특채 기회를 알리지 않고 소수의 노조 간부에게만 추천권을 줘 기존 조합원을 기만하고 물류 업체의 정상적인 채용업무를 방해한 셈이었습니다.
물류 업체는 그동안 항운노조원 경력자인 줄 알고 채용한 외부인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부산항운노조는 2014∼2015년 파견법에 따라 임시 조합원을 물류 업체에 일용직으로 공급하는 것이 힘들어지자 인력공급업체 Y사에 일용직 항운노조원 노무관리를 일임시켰습니다.
Y사는 터미널운영사에 노조원을 독점 공급하며 일용직 관리 수수료를 받는 등 설립 2년 만에 연간 200억 원의 매출을 거두는 회사로 급성장했습니다.
Y사 대표는 터미널운영사에 일용직 항운노조원을 공급하는 독점권을 유지하는 대가로 터미널운영사 대표들에게 7억 원을 뇌물로 줬습니다.
항운노조 전 위원장 김 씨는 퇴직한 터미널운영사 대표들을 사실상 자회사나 다름없는 Y사 법인 대표나 관리자로 등재한 뒤 2017년 12월부터 14개월간 1억 2천여만 원의 급여를 이들에게 지급했습니다.
또 자신의 아내에게 조합원 연금보험을 단체로 가입하도록 도움을 준 황 모(57·구속기소) 씨가 2014년 항운노조원 인력관리회사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로 감사를 받을 위기에 처하자 인력관리회사를 협박해 감사를 무마시켜 주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부산항의 세 축인 항운노조, 터미널운영사, 인력공급회사가 유착돼 공생 구조를 구축한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습니다.
4개월간 부산항운노조를 수사한 부산지검은 10일 브리핑에서 "부산항운노조는 외부 접근이 쉽지 않은 특성이 있다"며 "2005년 검찰 수사에서는 채용, 승진, 리베이트 등 내부 비리가 다수였다면 이번 수사는 베일에 싸인 항만의 인력공급 문제점을 적발했다는 점에서 성과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진=부산항운노조·부산항만공사·부산지검 제공,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