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5·18 모독 발언, 김수환 추기경이 살아계셨다면"

'옹기' 김수환 추기경 선종 10주기 추모미사 취재기

[취재파일] "5·18 모독 발언, 김수환 추기경이 살아계셨다면"
지난주 토요일, 그러니까 2월 16일은 고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10주기였습니다. 마침 그 날 근무였기에 명동성당에서 열린 선종 10주기 추모미사를 취재하고 SBS 8시 뉴스에 보도했습니다.( ▶ '그리운 바보' 김수환 추기경 떠난 지 10년…추모 물결)

김수환 추기경은 종교인을 넘어서, 우리 사회 전체의 큰 어른이었습니다. 그가 많은 사람들에게 특별하게 기억되는 것은 엄혹했던 시기, 민주화 운동의 정신적 지주 같은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독재 정권에 맞선 여러 일화가 있는데, 6월 항쟁 당시 명동성당으로 피신한 시위대를 경찰이 체포하려 하자 '경찰이 들어오면 맨 앞에 내가 있을 것이고, 그 뒤에 신부들이, 그 뒤에 수녀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뒤에 학생들이 있을 것이다'라고 일갈했다는 일화가 유명합니다.
김수환 추기경 선종 10주기 추모 미사(사진=연합뉴스)
저는 김수환 추기경 선종 10주기 추모미사에서,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이기도 한 김희중 대주교의 추모사를 가장 인상적으로 들었습니다. 김희중 대주교는 김수환 추기경의 아호인 '옹기'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옹기장수의 아들로 태어나 한국 최초의 추기경이 된 김수환 추기경이 직접 지은 아호입니다. '옹기'는 '좋은 것 나쁜 것 심지어 오물까지도 담는 그릇'입니다. 김희중 대주교는 김수환 추기경이 옹기가 빚어지는 과정과 쓰임을 묵상하고, 스스로 옹기 같은 사람이 되고자 했다고 회상했습니다.

김희중 대주교는 또 5·18에 대해 김수환 추기경이 생전에 '가장 쓰라린 아픔을 준, 비참한 역사의 사건'으로 여기고 슬퍼했다고 말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자 당시 광주 대교구장에게 편지와 함께 1천만 원의 구호자금을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 전두환을 직접 찾아가서 야만적인 진압을 멈춰달라고 요청하는 등 사태가 악화되는 걸 막아보려고 노력했습니다.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한국 천주교 200주년을 맞아 한국을 방문했을 때 광주를 찾아 직접 미사를 집전하고 광주 시민들을 위로했던 것도, 김수환 추기경이 적극 추진한 결과였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김희중 대주교는 김수환 추기경이 최근 정치권 일각에서 5·18을 모독하는 모습을 본다면 어떤 심정이실지 궁금하다고 했습니다. "모욕적이고 반역사적인 발언을 멈춰라!" 김희중 대주교는 김수환 추기경을 추모하면서 정치권을 나무란 셈입니다. 그 일부 정치인들은 이 말에 신경을 쓸지 안 쓸지 모르겠지만요. 김희중 대주교의 이 말은 개인의 발언에 그치지 않고, 한국 천주교회의 입장으로 받아들여집니다. 현장에서 미사에 참여했던 저는 이 대목이 가장 귀에 들어왔는데, 의외로 이 대목을 부각한 기사는 별로 없었습니다.

SBS 8뉴스 기사에 언급하기는 했지만, 아쉬움이 좀 남아서 여기 좀 더 자세하게 써봅니다. 김희중 대주교의 추모사 중 '옹기'와 '5·18' 관련 대목입니다. 직접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9월 주교님들과 영성모임 후에 경북 군위 김수환 추기경 기념관을 방문했습니다. 기념관 마당에 옹기들을 모아놓은 것이 인상 깊게 기억됩니다. 옹기 겉면에 빚다, 질박하다, 견디다, 품다, 비우다, 라는 단어들을 접하며 옹기가 빚어지는 과정과 용도를 나타내는 이 단어들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왔습니다. 기념관 안내자의 말씀이, 옹기는 김수환 추기경님의 아호이고, 옹기는 박해 시대 신앙 선조들이 산속에서 구워서 내다 팔아 생계를 잇고 복음을 전파한 수단이자, 좋은 것과 나쁜 것 심지어 오물까지 다 담을 수 있는 그릇의 의미가 담겨있음도 덧붙였습니다.

추기경님께서는 당신 삶에 영향을 미친 옹기가 빚어지는 과정과 쓰임을 묵상하시고 당신 아호로 정하셨고, 또한 그 아호처럼 좋은 것과 나쁜 것, 심지어 오물까지도 다 담을 수 있는 그룻이 되고자 노력하셨습니다. 1951년 사제품을 받으시고 1969년 세계 최연소 추기경으로 서임된 후, 한국의 가난하고 불의한 역사와 묵묵히 함께 하셨습니다.

정치적으로는 장기 독재정치를 계획하는 정부에 대해 그것이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것인지를 물으시며 시대의 어른으로서 권력에 당당히 맞서셨습니다. 12·12 사태와 5·18 민주화 운동의 군사 독재 정권 때는 군중 편에 서서 권력에 맞서 싸우는 이들을 위해 명동성당 문을 열어뒀습니다.

특히 5·18에 대해서는 당신 생애에 가장 쓰라린 아픔을 준 비참한 역사의 한 사건이라며 슬픔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근래 5·18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한 모욕적이고 반역사적 발언도 서슴지 않은 일부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신다면 김수환 추기경님은 어떤 심정이시며 그들에게 어떻게 말씀하실지 궁금합니다.

사회적으로는 집 잃은 철거민들을 찾아 손을 잡아 위로해주시고 억울하게 사형당할 뻔한 파키스탄 노동자의 대변인이 되어주시고 외국인 노동자의 친구가 되어주셨고 장애 어린이들에게는 꿈과 희망을 심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인간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며 몸소 교도소를 찾아다니며 사형제도 폐지를 주장하셨습니다. 또한 남북 분단 상황에 대해서도 마음 아프게 생각하시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셨습니다…"


10년 전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때 추모 열기가 기록적이었던 걸 기억합니다. 40만 추모 행렬이 이어졌고, 관련 기사들도 쏟아졌습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습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큰 어른'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 시민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추기경님은 스스로 빛이 되어라 하셨습니다. 빛을 뿌리라 하셨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그렇게 빛이 되고 빛을 뿌려주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추기경님이 지금 더욱 그리운 이유입니다."

취재하면서 만난 시민들은 그분의 빈자리를 아쉬워하고 그리워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분을 따라 살겠다는 다짐도 들려줬습니다. 엄마와 함께 추모 미사에 참석했다는 한 어린이는 '추기경님처럼 밝고 웃으면서 행복하게 남을 도와주면서 살고 싶다'라고 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이 세상을 떠난 지 10년, 하지만 이렇게 김수환 추기경을 따라 살겠다는 사람들이 있는 한, 그의 뜻은 영원히 남을 겁니다.

(사진=연합뉴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