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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지구를 구하는데 '부자(富者)의 자비(慈悲)'를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일까?

투발루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기후변화 재앙이라는 말이 나오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나라가 있다. 바로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나라 전체가 물에 잠길 위기에 처해 있는 남태평양의 섬나라 투발루다.

수몰 위기에 처한 투발루를 구할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은 지구온난화를 억제하는 것이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가 투발로 한 나라로 인해 발생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전 지구적인 문제, 특히 이미 발전한 선진국들의 책임이 오히려 훨씬 더 크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지구온난화를 억제해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기후변화 재앙을 예방할 수 있을까? 기후변화 재앙 예방이라는 '공공의 이익(public goods)'을 달성하기 위해 인류는, 또 각각의 국가와 개인은 어떻게 해야 할까?
기부 (사진=픽사베이)
최근 재미있는 연구결과가 하나 발표됐다. 스페인과 영국, 이탈리아, 미국 공동연구팀은 스페인 바르셀로나 시민 324명을 대상으로 게임 같은 실험을 했다(Vicens et al., 2018).

대상자를 6명씩 54개 그룹으로 나눈 연구팀은 각 그룹에 240유로 지급하고 각 그룹에서 기후변화 예방이라는 '공공의 이익'을 달성하는데 필요한 기금을 모으는 실험을 했다. 연구팀은 각 그룹에서 120유로씩 모금해 기후변화를 예방하는데 필요한 나무를 심는 것을 '공공의 선'으로 가정하고 각 그룹의 구성원들이 120유로를 만들기 위해 각각 얼마씩 기부할 것인지 실험을 했다.

54개 그룹 가운데 절반인 27개 그룹은 돈을 6명 각각의 구성원에게 40유로씩 균등 지급하고 나머지 절반은 각각의 구성원에게 적게는 20유로에서 많게는 60유로까지 차등 지급하고 실험을 진행했다. 모금은 6명의 구성원이 돌아가며 한 번씩 모두 10차례(10라운드) 돈을 내도록 했다.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한 라운드에서 각 구성원이 낼 수 있는 돈은 0~4유로로 한정했다. 각 라운드마다 4유로씩 낼 경우 10라운드 동안 한 사람이 최대 40유로를 기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룹의 구성원들은 실험을 시작할 때 상대방이 얼마나 많은 돈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도록 했고 한 차례 라운드가 끝날 때마다 각 구성원들이 돈을 얼마나 냈는지 알 수 있도록 했다. 목표인 120유로를 모금하기 위해 얼마를 더 내야 하는지를 알려주기 위해서다. 물론 기부금을 내고 남은 돈은 자기 것이 된다. 기부금을 적게 내면 적게 낼수록 많은 돈을 남길 수 있는 방식이다.

실험 결과 그룹 구성원 6명이 120유로를 만드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났는데 전반적으로 돈을 적게 지급받은 구성원이 돈을 많이 지급받은 구성원보다 기부금을 더 많이 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돈을 적게 지급받은 구성원이 많이 지급받은 구성원보다 최고 2배나 더 많은 돈을 낸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적인 기대와는 정반대로 돈을 적게 지급받은, 그러니까 상대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부자보다 훨씬 더 많은 기부금을 냈다는 뜻이다. 상대적으로 돈이 많을수록 이기심이 발동됐다고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번 연구결과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다. 실험 설계에 문제가 있다는 의견부터 연구결과는 실험에 참여한 사람에 대한 결과로 국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올 수 있다. 아무리 넓게 봐 줘도 스페인 바르셀로나 지역 사람들의 얘기일 뿐 다른 지역이나 사회, 다른 국가로 확대 해석할 경우 오류에 빠질 수 있다는 주장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연구 결과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6월 런던퀸메리대학교 연구팀도 자원(돈)을 많이 가진(high status) 사람에 비해서 자원을 적게 가진(low status) 사람들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협력을 보다 더 잘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Osman et al., 2018). 공공의 이익을 달성하는데 자원을 많이 가진 사람의 동정이나 자비가 생각만큼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기부 (사진=픽사베이)
특히 이번 연구에서 주장하는 것은 단순히 부자가 기후변화 대응에 소극적이라는 것만이 아니다. 단순히 '공공의 이익'을 달성하는데 부자에게 자비를 베풀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만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기후변화를 얘기할 때는 기후변화에 대한 원리나 전망, 재앙만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기후 정의나 불평등, 약자에 대한 배려. 그리고 기후변화 억제와 대응에 적게 가진 자나 국가, 많이 가진 자와 국가 모두가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사전에 충분한 교육과 철저한 계획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해(2017) 6월 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파리 기후변화협정 탈퇴를 공식 선언했다. 1년이 넘게 지났지만 아직 트럼프 대통령의 기후변화에 대한 입장 변화는 없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는 미국처럼 지금까지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한 나라에서 많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어려운 개발도상국에서 많이 발생하고 있다. 이들 개발도상국의 피해는 기후변화가 진행될수록 더욱더 커질 가능성이 크다. 지구와 인류를 구하는데 정녕 '부자(富者)의 자비(慈悲)'를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일까?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픽사베이)

<참고문헌>

* Julian Vicens, Nereida Bueno-Guerra, Mario Gutiérrez-Roig, Carlos Gracia-Lázaro, Jesús Gómez-Gardeñes, Josep Perelló, Angel Sánchez, Yamir Moreno, Jordi Duch, (2018) Resource heterogeneity leads to unjust effort distribution in climate change mitigation. PLoS ONE 13(10):e0204369
https:// doi.org/10.1371/journal.pone.0204369

* Magda Osman, Jie-Yu LV & Michael J. Proulx (2018): Can Empathy Promote Cooperation When Status and Money Matter?, Basic and Applied Social Psychology, DOI:10.1080/01973533.2018.1463225
https://doi.org/10.1080/01973533.2018.1463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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