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 가치 급락으로 '물가 비상'이 걸린 터키에서 정부가 물가관리를 내세워 기업에 칼을 빼들었다.
실효성에 관한 의문과 함께 힘없는 기업이 본보기가 되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터키 내무부는 환율 불안정을 '악용'한 기업·판매점의 가격 인상에 엄정 대처하라고 주(州)지사에 지시했다고 11일(현지시간) 밝혔다.
내무부는 과도한 가격 인상과 사재기 같은 시장질서 교란행위를 저지른 업주에게 벌금이나 과태료 부과로 강력히 대응하라고 주정부에 주문했다.
이에 앞서 9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사위 베라트 알바이라크 터키 재무장관은 상품 가격을 10% 인하하라고 촉구했다.
알바이라크 장관은 이 조처가 '자발적 캠페인'이라고 밝혔으나, 업계로서는 실세 장관의 강력한 요구에 동참하는 흉내라도 내야 할 처지에 몰렸다.
쇼핑몰의 매장 입구에는 10% 가격 인하 캠페인에 동참하는 기업임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기 시작했다.
이달 8일 터키 통상부는 약 4천개 기업의 6만9천여개 제품을 상대로 조사를 벌여 과도하게 가격을 올렸다고 자체 판단한 114개 기업에 해명을 요구했다.
잇단 '대책' 발표를 놓고, 뒤늦은 금리 인상으로 물가관리 시기를 놓친 정부가 전기·통신 요금과 공공 입장료 같은 기본적인 서비스의 가격 인상을 용인하면서, 힘없는 기업을 상대로 생색내기를 한다는 불만 여론이 감지된다.
한국 중소기업 터키법인장 A씨는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는데, 힘없는 기업에만 가격 인하를 강요한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터키 정부가 '무리수'에 가까운 조처를 잇달아 내놓는 것은 월별 연간 인플레이션이 넉 달 연속으로 역대 최고 기록을 깨는 등 물가에 비상이 걸렸기 때문이다.
지난달 연간 물가상승률은 현행 물가지수 산출방식이 도입된 2003년 10월 이래 최고치인 24.5%를 기록했다.
그러나 체감 인플레는 정부의 발표치보다 훨씬 심각하다.
한 터키 대기업에서 최고재무관리자(CFO)로 일하는 B씨는 연합뉴스에 "중산층 이상 터키 소비자가 느끼는 물가상승률은 40%에 육박할 것"이라면서 "물가상승률 통계가 과소 측정된 것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연합뉴스/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