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병원 가고 있다" 3일 만에 떠난 아들
벌써 2년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어머니는 아직도 그 날을 잊지 못한다. 2016년 3월 22일 아침 9시 10분쯤, 어머니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입대한 지 7개월 정도 지난 둘째 아들 홍정기 일병이 몸이 아파 부대에서 군 병원으로 가고 있다는 전화였다. 전화를 받은 어머니가 ‘우리(부모)가 가야 하느냐’고 묻자 ‘일단 가서 진단을 받아보고 이야기하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전화를 바꿔달라고 해 아들과 잠깐 통화를 했다. 한 시간쯤 지난 뒤엔 아버지가 또 전화를 받게 됐다. ‘아무래도 가 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홍 일병의 부모님은 아들이 간다는 군 병원으로 출발했다. 군 병원 검사 결과 백혈병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이 나왔다.
뇌 내 출혈도 의심됐지만 군 병원은 수용이 제한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홍 일병은 민간 대학병원으로 또 다시 옮겨졌다. 그곳에서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민간 병원에 도착한 지 3일 만인 24일 밤, 결국 세상을 떠났다. 홍 일병 퇴원요약지에 적힌 주 진단은 급성뇌출혈, 기타진단은 급성골수성백혈병과 급성호흡부전증. 군에서 갑작스런 전화를 받은 지 3일 만에 어머니는 아들을 영영 다시 볼 수 없는 곳으로 떠나보내게 된 것이다. 평소에는 물론이고 입대 뒤 체력검정에서도 특급과 1급을 받을 정도로 건강하던 아들이 왜 그렇게 허망하게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었을까. 어머니는 궁금했다.
홍 일병 사망 뒤 군 검찰은 <사망사건 기록> 그리고 별지인 <사망사건 조사결과>를 작성했다. 홍 일병이 며칠 사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를 시간대별로 정리했다. 이 문서가 도출한 결론은 다음과 같다. “이 건 사망사건은 범죄로 인하여 발생하지 않았음이 명백하게 밝혀졌으므로 이상 사망자의 사망원인에 대한 조사를 종결한다.” 그렇게 ‘종결’된 조사 기록이 밝히고 있는, 홍 일병이 겪은 순간순간들은 이러했다.
● 이유 없이 멍들고 구토하는데 군 병원도 못 가
2016년 3월 13일, 홍 일병은 저녁 7시 불침번 근무신고를 마치고 동료 일병에게 등을 두드려 달라고 하며 화장실에서 구토를 했다. 여러 차례 화장실을 다녀왔고 그날 밤 10시, 사단 의무대로 후송됐다. 군의관 A는 급성 두드러기 약을 3일분 처방해 줬다. 생활관으로 돌아온 홍 일병은 주변에 ‘부딪힌 적도 없는데 멍이 생긴다’며 등과 어깨 쪽에 생긴 멍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틀 뒤 열린 사단 전면전 작계시행훈련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그 기간 동안 이유 없는 두통, 무기력증, 얼굴이 하얗게 변하는 증상을 겪었다. 3월 20일에도 홍 일병은 행정보급관에게 멍이 든다며 몸에 든 멍을 보여줬고 두통이 심해져 저녁도 먹지 못했다.
3월 21일 오전 10시 반, 홍 일병은 연대 의무중대에서 군의관 A에게 또 진료를 받았다. 군의관 A는 증상을 본 뒤 혈소판 감소 질환 검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응급한 상황은 아니라고 봤다. 그래서 군 병원에 가서 혈액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다음 날로 예약을 해 줬다. 그리고는 감기약을 처방해주고 홍 일병을 돌려보냈다. 그날 오후 홍 일병은 행보관과 함께 부대 근처 민간 의원도 찾았다. 민간 의원 의사가 내린 진단은 “혈액암 가능성이 있어 즉각적인 혈액내과 내원이 필요하다”는 것. 하지만 홍 일병과 행보관은 그대로 부대로 복귀했다. 오전에 군의관 A가 예약해 준 군 병원 외진이 다음 날로 이미 잡혀 있기 때문이었다.
이날(3월 21일) 밤부터 홍 일병은 다시 심한 구토와 두통에 시달렸다. 잠에 들지 못해 책상에 엎드려 있다 다시 연대 의무중대에 갔고 연대 의무중대에서는 외진을 가야 한다며 사단 의무대로 홍 일병을 데리고 갔다. 가는 도중에도 홍 일병은 계속 구토를 했다. 사단 의무대에 있다 홍 일병을 진찰한 군의관 B도 혈액학적인 문제가 있을 가능성을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 응급상황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군 병원으로 응급후송은 실시하지 않았다. 편두통 약이 처방됐다. 사단 의무대 병실이 가득 차 홍 일병을 수용할 수 없어서, 홍 일병은 다시 연대 의무중대로 돌아가야 했다. 연대 의무중대로 돌아온 시각은 이미 다음날(3월 22일)이 된 새벽 2시 40분. 구토를 하고 침상에서 바닥으로 쓰러지고 책상에 엎드려 있길 반복하며 날이 밝을 때까지, 홍 일병은 그대로 방치됐다.
홍 일병 어머니
“저렇게 아프다고 하는 애를 그냥 팽개쳐서…. 그 9시간을 애가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그 생각하면요. 지금도 피가 거꾸로 솟아요. 그 고통의 시간을 애가 버틴 걸 생각을 하면.”
● 제대로 진단했더라면, 빨리 후송했더라면
3월 22일 아침 9시가 돼서야 홍 일병은 군 병원으로 가는 차에 오를 수 있었다. 이미 누군가 부축해야 걸을 수 있는 상태였다. 홍 일병이 다른 외진 환자 22명과 함께 군 병원으로 가는 버스를 탔던 이때가, 바로 어머니가 아들이 아파 군 병원으로 간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였다. 처음 구토 증상을 호소했던 것이 3월 13일. 군 병원으로 후송된 건 3월 22일. 홍 일병은 9일이 지나서야 군 병원으로 갈 수 있었던 것이다.
군 병원에 도착해서는 검사를 통해 의심되는 증상이 어떤 것인지 확인이 됐지만 수용이 제한돼 곧바로 조치를 취할 수도 없었다. 민간 병원에 옮겨져 수술을 받았지만, <사망사건 조사결과>가 밝히고 있는 대로 “소뇌 출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늦게 와 이미 뇌압이 너무 높아 소뇌 쪽 시술은 하지 못하고 대뇌 쪽 시술을 통하여 뇌압을 다소 낮추는 정도의 시술밖에 하지 못한 채로 같은 날 15:50경 중환자 실로 옮겨졌다”. 그리고 홍 일병은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어머니는 말했다. 3월 22일, 군 병원에서 민간 병원에 조금이라도 빠르게 후송을 했더라면. 외진을 기다리는 다른 환자들과 함께가 아니라 별도의 구급차로 사단 의무대에서 군 병원으로 조금이라도 빨리 후송을 했더라면. 구토와 두통에 시달리며 혼자 연대 의무중대에서 괴로워하던 아들을 누군가 밤중에 혹은 새벽녘에 바로 군 병원에 후송하도록 지시했더라면. 사단 군의관 B가 아들을 연대 의무중대로 돌려보낼 것이 아니라 곧바로 군 병원 후송을 지시했더라면. 부대 근처 민간 의원 의사가 큰 병원에 가 혈액 검사를 받아보라고 했을 때 부대로 복귀하지 않고 바로 병원에 갔더라면. 연대 군의관 A가 다음날 군 병원 예약을 잡는 것이 아니라 곧바로 사단 의무대로 후송해 군 병원에 한시라도 빨리 보낼 수 있도록 했더라면.
그랬더라면 제대로 인사도 하지 못한 채 그렇게 아들을 보내지 않을 수 있지 않았을까. 이런 어머니의 숱한 가정들은 의문으로 이어졌다. 왜 바로 후송을 할 수 없었나. 왜 군의관들은 바로 응급 상황임을 판단하지 못했나. 왜 아들은 혼자 의무중대에 방치돼야 했나. 왜 민간 의원의 진단을 받고도 바로 복귀했나. 군의 의료 체계가 더 이상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어머니가 하게 된 이유다.
홍 일병 어머니
“그 군의관으로 온 아이를 보니까요. 우리 아들 같은 아이예요. 그러면 제가 지금 그 군의관을 원망하면서 살아야 합니까? 그거 아니잖아요. (중략) 새파랗고 젊은 이런 금쪽같은 아이들을 맡기는데 국방부에서 그런 의료를 하는 의사들을 제대로 된 의학지식이 있는 사람들로 배치하거나 그렇게 배치 못하면 어떤 병원으로 빨리 뺄 수 있는 시스템이 되어야 하는데… 국방부의 잘못이지 그 아이(군의관)가 원망되지는 않더라고요, 저는.”
● "살릴 기회 3번 있었다"…그런데 군의관만 징계
유성호 서울대 의대 법의학교실 교수
“의사라면 이 정도의 꽤 오랫동안의 두통, 창백함, 여러 전신의 출혈, 그러면 굉장히 두려운 진단을 먼저 떠올리는 게 일반적인데 왜 (상급 병원에) 보내지 않았을까?”
먼저 3월 13일, 홍 일병이 화장실에서 구토를 한 이후 여러 차례 화장실을 다녀왔고 사단 의무대를 찾았을 때 군의관 A는 급성 두드러기 약을 처방했다. 그리고 3월 21일 홍 일병이 전신에 나타난 멍과 혈종을 보이며 다시 군의관 A를 만났지만, 군의관 A는 혈소판에 문제가 있다고 보면서도 응급상황은 아니라며 감기약을 처방하고 군병원 외진은 다음 날로 예약했다. 이 군의관은 혈액 관련 질환을 면밀하게 살펴 볼 수 있는 전공 전문의가 아니었다. 취재진이 만난 군의관 A는, 당시 자신의 판단에 잘못된 부분이 있었음을 인정했다. 하지만 간단한 혈액 검사 장비도 없고 의료 관련 면허가 없는 의무병들로만 구성된 의무대에서는 한계가 있다고도 말했다.
군의관 A
“저는 백혈병이라는 진단이 뭔지 알았지만 접해본 적이 거의 없었고 내과 전문의가 아니기 때문에 제 과에서 백혈병을 볼 일은 거의 없어요. 그런 사람들 앉혀놓고 ‘다 봐라 전문인 과가 아니지만 의사이지 않느냐’ (그렇게) 다 보라고 해 놓고 그렇다고 해서 그걸 보조해줄 수 있는 키트는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고. 의심되는 환자가 있으면 다 외진 보내라고 하지만 한계가 있죠. (중략) 민간병원을 갔다면 응급실을 갔다면 검사를 했을 거예요.
저희가 흔히 얘기하는 백혈구, 적혈구, 혈소판 수치 그 다음에 간 기능, 신장 기능 이런 건 기본적으로 해요. 그걸 했으면 바로 나오죠. 맞아요, 바로 나와요. 혈액 검사를 했다면, 민간 병원에 갔다면 바로 나왔을 거예요. (중략) 사실 더 엄밀히 말하면 이 증상만 가지고도 그날 밤에 일어났던 구토하고 어지럽고 정신 못 차리는 증상만 가지고도 얘는 그때 사실 이미 진단이 됐어야 돼요. 그건 맞아요.”
3월 22일 새벽, 부대 근처 민간 의원을 찾았다 돌아온 날 밤 홍 일병의 상태는 급격히 나빠졌다. 연대 의무중대로 온 홍 일병을 보고 의무병이 체온을 쟀고 또 다른 의무병이 외진을 가야 한다고 판단했다. 옮겨진 사단 의무대에서도 의무병이 문진을 했고 이후엔 배 부위를 엑스레이로 촬영했다. 그리고서야 군의관을 만날 수 있었다. 이 군의관 B 역시 혈액학적 문제가 있을 가능성을 생각했지만 역시 응급상황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따라서 응급 후송을 실시하지 않았고 사단 의무대엔 자리가 없어 홍 일병을 계속 두고 관찰하지 못했다. 홍 일병은 그 시각에 군의관도 없는 연대 의무중대로 돌아가야 했다. 군의관 B 역시 혈액 질환 관련 전문의는 아니었다.
군의관 B
“단계 단계 가게 돼있는 거고 그리고 단계를 넘어서려면 그…지휘 결심이 필요한 거죠. 후송을 가게 되면 옆에 동네 병원 가는 게 아니라 여러 인력들이 필요한 일이잖아요. 그래서 후송을 결정하는 게 쉽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제 분야면 더 빠르게 판단할 수 있겠지만 해당 영역이 아닌 부분은 좀 판단하기 어려워지는 부분도 있고. (중략) 또 별거 아닌 걸로 만약 보냈다 그러면 또 이제 상부 측에서 안 좋은 피드백이 또 올 수도 있거든요. 뭐 이런 걸로 보내느냐고. (중략) 엑스레이랑 혈액 검사는 가능한데 그것을 과연 신뢰성 있게 볼 수 있느냐, 그 검사 결과를. 무자격자(의료 관련 면허 없는 의무병)가 이렇게 해서 해석을 믿을 수 있느냐를 좀 생각하게 되죠.”
결국 모든 증상이나 질환에 대해 전문일 수 없는 군의관들이, 제대로 된 의료 장비나 의료 지원 인력이 없는 의무대에서, 초기 조치를 제대로 하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인 것이다. 홍 일병 어머니가 생각했던 것처럼, 군의관 개인에게만 책임을 돌릴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렇게 돌아가는 군 의료 체계 속에서 또 제대로 된 초기 조치를 받지 못하는 사병이 나오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하지만 홍 일병이 세상을 떠나고 이 군의관 A, B만이 성실 의무 위반이라는 이유로 감봉 징계를 받았다. 의무대 차원 혹은 부대 지휘관 차원의 책임을 묻는다거나 의료 체계 개편을 한다거나 하는 등의 다른 변화는 없었다.
●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아들이 떠난 뒤 어머니는 군에서 아들이 썼던 일기나 독후감 같은 여러 글들을 전해 받았다. 어머니도 몰랐던, 아들의 생각이었다. 글을 읽던 어머니의 눈에 유독 밟히는 대목이 있었다. ‘나에게 군대란?’이라는 질문에, 아들 홍 일병은 “대한민국이라는 좋은 나라에 태어난 운을 보답하는 것”이라고 썼다.
홍 일병 어머니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게 운 좋은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했는데, 그죠? 그걸 보답하겠다고 하는데 보답을 국가에서는 이런 식으로 해준 거잖아요. 저렇게 자랑스러운 나라라고 했는데…. 이런 게 이 나라의 국민으로 태어난 게 억울하다는 마음이 들면 안 되잖아요. 우리 애가 썼잖아요. 대한민국에 태어나서 자랑스럽다 그렇게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간 아이였는데.”
‘군대가 원래 그렇지’, ‘군대는 옛날에도 그랬어’, ‘군대는 사회와 달리 특수한 곳이니까.’ 이런 말로 모든 일이 무마되고 해결되던 시간은 지났다. 부를 때는 국가의 아들, 아플 때는 당신의 아들. 사람들은 이 말을 예로부터 전해 내려온 당연한 명제인 듯 무심코 그리고 냉소적으로 입 밖으로 꺼내지만 그러고서 이 문제를 넘기기엔 사병의 건강과 생명은 너무나 소중한, 보호받아야 할 가치다. 군 의료 체계가 가진 문제와 그로 인한 불신이 낳은 이런 말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도록 대대적인 개선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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