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독][라돈침대①] 유명 침대서 '1급 발암물질' 라돈 대량 검출
▶ [단독][라돈침대②] 음이온 나오게 하려다…방사능 나오는 침대
▶ [단독][라돈침대③] 대진침대 "해당 모델 생산 중단"…다른 침대는 괜찮나
▶ [단독][라돈침대④] 방사능 내뿜는 일상용품 불안한데…손 놓은 규제
● 한 소비자가 최초 발견…"아이 방 침대에서 라돈이"
이런 사실은 한 소비자로부터 비롯됐습니다. 평소 건강에 관심이 많던 한 주부가 휴대용 라돈 측정기를 구매해 집 안 이곳저곳을 재본 겁니다.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안방, 발코니, 거실 다 낮게 나오는데 유독 아이 방 침대 위에서 어마어마한 수치의 라돈이 측정된 겁니다. 다른 곳이 20~30 수준이라면 침대 위는 2천을 훌쩍 넘겼습니다. (주택 실내 기준은 200Bq/㎥입니다)
처음에는 기기 고장을 의심해 판매 업체에 문의했습니다. 그러나 기기를 바꾸고도 수치는 같았습니다. 업체에서 환경부가 승인한 전문 기기로 측정한 결과 역시 비슷했습니다. 대진침대 측이 해당 매트리스를 수거해 연세대학교 라돈안전센터에 정밀 측정을 의뢰한 결과, 가로 30cm, 세로 30cm 크기의 작은 샘플에서만 평균 620Bq/㎥(베크렐)의 라돈이 검출되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침대 전체 크기로 환산하면 이보다 훨씬 많은 라돈이 검출될 수 있다는 게 조사에 참여한 전문가들의 이야기입니다.
원인물질을 정확히 찾기 위해 국가공인기관인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 시료 분석을 맡겼습니다. 그 결과 라돈을 생성하는 방사성 물질인 토륨과 우라늄을 비롯해 이로 인해 파생되는 방사성 핵종(라돈 자손)이 다량 검출되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처음 정밀 측정을 진행한 조승연 안전센터 교수는 성분으로 보아 '광물'에서 라돈이 비롯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잠깐, 라돈이 얼마나 위험한 물질인지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사실 국내에서는 라돈에 대한 인식이 그리 높은 편은 아닙니다. 그도 그럴 것이 라돈은 무색무취의 기체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보이지도 않고, 잡히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주로 암석이나 토양에서 생성되는데 우리가 숨 쉬는 공기 중에도 어느 정도씩은 들어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1980년대 타임 지에서 커버스토리로 다루면서 대중적 이슈로 주목받기 시작했고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미세먼지 등 공기 질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라돈'의 존재를 아는 분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환경부도 다중이용시설이나 주택 등에 대한 실내 라돈 기준을 만들어 관리하고 있습니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 '라돈'을 정부가 기준까지 만들어 관리하는 이유는 잠재적인 위험성 때문입니다. 방사성 원소인 라돈(Rn, 원자번호 86번)은 물리적으로 매우 불안정하기 때문에 강한 방사선을 방출하며 붕괴됩니다. 붕괴 과정에서 납(Pb), 비스무스(Bi), 폴로늄(Po) 등 '라돈 자손'으로 불리는 미세한 입자가 나오는데 주로 이것들이 먼지에 달라붙어 우리가 흡입할 때 몸속으로 들어옵니다. 이 입자들이 폐포나 기관지에 달라붙어 알파선으로 불리는 강한 방사선을 배출하는데, 이 방사선이 폐나 기관지 등 우리 몸 속 세포의 DNA를 손상 또는 변이시켜 결국 심하면 폐암에 이르게 하는 겁니다.
미국 환경보호청도 지난 2003년 미국에서 1년 동안 발생하는 폐암 사망자 가운데 10% 이상이 라돈에 의한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그 숫자가 무려 2만여 명에 이릅니다. 미국에서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보다 훨씬 많다는 이야기도 있었죠.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과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에서 라돈에 의한 폐암발생 위험도를 연구했는데, 우리나라 전체 폐암 환자 가운데 라돈 노출로 인한 경우를 12% 정도로 봤습니다.
최근 유럽에서 수행된 한 연구 분석에선 실내 라돈 농도가 100Bq/㎥씩 올라갈 때마다 폐암 발생률이 16% 올라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국내 다중이용시설 라돈 기준치는 148Bq/㎥, 주택은 앞서 얘기한 대로 200Bq/㎥입니다. 해당 침대에서 확인된 라돈 방출량은 가로 30cm, 세로 30cm 크기 샘플에서만 평균 620Bq/㎥였습니다. 이 라돈이 방 안 공기에 그대로 다 남아있지는 않겠지만, 수치만으로도 그 위험성을 대강 짐작할 수는 있어 보입니다. 정밀 분석을 진행한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이종만 박사는 "수치의 높고 낮음을 떠나 침대에서 방사성 동위원소가 나왔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몸을 맞대고 하루에 몇 시간씩 누워있는 침대의 특성상 그만큼 방사능 피폭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는 겁니다.
● 원인은 '음이온 가루'…순식간에 방사능 치솟아
다시 침대 이야기로 돌아옵니다. 우선 이 제품 하나만 그런 건지, 다른 제품에서도 라돈이 나오는지 확인해봤습니다. 대진 침대 측에 문의하자 자체 조사 결과 비슷한 소재를 쓴 다른 3개 모델(모젤, 벨라루체, 뉴웨스턴)에서도 라돈이 검출됐다고 밝혔습니다. 저희 취재진도 공장을 직접 찾아 간이 측정기로 해당 침대에 쓰인 매트리스 소재를 직접 측정했습니다. 역시 높은 수준의 라돈이 검출됐습니다.
그렇다면 원인 물질은 무엇인지, 추적에 들어갔습니다. 멀쩡한 침대에서 왜 방사성 물질인 라돈이 나오는지 알아야 했습니다. 몇 년 전 돌침대에서 방사능 물질이 나왔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지만 이 침대는 돌침대가 아니라 면과 솜, 스프링 같은 일반적인 소재로 만든 침대였습니다.
대진침대 측은 1차 자체조사 결과 매트리스 천에 갈아 넣은 '칠보석 가루'가 원인으로 추정된다고 밝혀왔습니다. 음이온 효과를 내기 위해 매트리스 천 안쪽에 광물 가루를 코팅해서 입혔는데 여기서 라돈이 방출된 것으로 보인다는 겁니다. '칠보석'은 음이온을 발산한다고 알려져 여러 돌침대나 건강 제품에도 널리 쓰이는 소재입니다.
취재 내용을 대진침대에 알리자 대진 측도 재확인에 착수했습니다. 그 결과, 원인은 칠보석이 아닌 희토류 원석을 갈아 만든 이른바 '음이온 가루' 때문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건강 제품 또는 원료를 취급하는 다른 업체로부터 음이온 가루를 납품받았는데 처음에 한 영업 사원이 이 가루를 '칠보석' 가루로 소개했다는 겁니다. 취재 결과, 문제의 음이온 가루는 칠보석과는 관련이 없었습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고상모 박사는 "희토류 자체는 문제가 없지만 광석에 함유된 토륨과 우라늄을 분리해야 하는데, 그 처리를 제대로 못 한 것으로 보인다"고 취재진에 답했습니다.
납품 업체를 접촉해 문제의 음이온 가루를 직접 받아봤습니다. 정말 원인 물질이 맞는지, 휴대용 라돈 간이 측정기와 휴대용 방사선 측정기로 측정했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비닐팩에 싸여 있는 약 50그램 정도의 분말에서 무려 3,696Bq/㎥의 라돈이 측정됐습니다. 방사능 측정기를 올려놓자 요란하게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하더니 시간당 9μSv (마이크로시버트)의 방사능이 확인됐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자연적으로 나올 수 있다고 규정한 환경방사선량율 변동 범위가 0.05에서 0.30μSv이니까, 허용치의 30배를 넘어선 겁니다. 가장 크고 중요한 물음표가 해소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대진침대 측은 전혀 몰랐다는 입장입니다. 음이온 기능을 넣기 위해 원료를 구매했고, 칠보석 가루라는 말만 믿고 썼는데 이런 일이 벌어지게 돼 굉장히 당혹스럽다고 밝혔습니다. 음이온 가루를 납품한 업체 측도 "침대 제조사가 주문해서 보냈을 뿐 어디에 쓰는지는 몰랐다"는 입장입니다.
"몰랐다"는 대진 측의 해명에는 수긍할 만한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취재진 역시 침대 제조업체에서 의도적으로 속였거나, 알면서도 해당 물질을 침대에 넣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침대 같은 공산품의 경우에는 사전에 라돈 혹은 방사능 수치를 측정하거나 신고하는 절차가 없습니다. 관련법인 '생활주변방사선 안전관리법'에는 음이온 가루같은 원료물질이나 공정부산물의 경우 신고를 하게 되어 있지만 가공제품에 대해서는 그런 규정이 없습니다.
더 큰 문제는 소비자 입장에선 생산자가 알려주지 않으면 전혀 알 길이 없다는 겁니다. 방사성 물질을 재료로 쓴다 하더라도 어떤 물질을 얼마나 썼는지 표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확인된 침대뿐 아니라 과거 온열 매트나 건강 팔찌, 베개 같은 일상 제품에서 방사능이 검출된 일들이 여럿 있었지만 바뀐 건 없었습니다. 이번에 보도해드린 침대 역시 라돈에 관심이 많은 한 소비자가 아니었다면 밝혀지지 않았을 겁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불안할 수밖에 없는 게 당연합니다.
● 우리집 침대는 안전할까…"추가 조사 필요"
보도가 나간 뒤 SBS 보도국에는 문의 전화가 폭주했습니다. 해당 모델은 무엇이고 다른 회사 침대는 괜찮으냐는 겁니다. 다른 제품에 대한 새로운 제보도 쏟아졌습니다. (제보에 대해서는 추가 취재를 통해 후속 보도할 계획입니다)
다른 회사 침대를 일일이 취재진이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 정밀 측정의 경우 적잖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는 데다 "라돈이 나오는지 측정기로 재보자"는 제안에 쉬이 응할 회사는 많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다만, '음이온 가루'가 원인 물질로 확인됐기 때문에 이 가루가 들어간 제품은 라돈이 검출될 것이고, 들어가지 않은 제품은 적게 나올 것이라는 추론은 가능합니다.
일단 취재진이 대진 침대를 통해 확인한 문제의 제품은 기사 앞머리에 소개해드린 4가지 모델입니다. 원인 물질로 확인된 '음이온 가루'가 들어간 제품입니다. 대진 침대 측은 문제가 된 4가지 모델의 경우 그동안 총 7천여 개를 생산했다고 답했습니다. 정밀 측정한 네오그린의 경우 2010년부터 생산을 시작해 2015년 단종됐고, 다른 모델은 현재까지 생산, 판매하고 있지만 문제를 인지한 지난 1월 이후 음이온 가루를 넣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또 이미 들어간 제품 150여 개의 경우 전량 폐기했다고 답했습니다.
이번 사례의 경우 라돈에 관심이 많은 한 소비자가 아니었다면 밝혀지기 어려웠을 겁니다. 보도를 준비하면서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취재 과정 자체가 쉽지 않기도 했거니와 소비자가 갖게 될 불안감, 침대 회사가 받게 될 타격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연 상태에서 나올 수 없는 양의 방사성 물질이 나오지 않아야 할 곳에서 나왔고, 그것이 국민 건강에 해를 끼칠 가능성이 있다면 적어도 소비자가 '알 권리'가 있다는 게 저희 취재진의 판단이자 저희가 만난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었습니다.
추가로 혹시 불안에 떠실 분들을 위해 우선 전문가들이 소개한 임시방편을 덧붙이자면, "자주 환기를 하라"는 겁니다. 라돈 자체가 공기보다 8배 무거워 아래로 가라앉는 습성이 있고 그렇게 쌓이다보면 고농도로 농축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겠지만, 자주 환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상당 수준 실내 라돈 농도를 낮출 수 있다고 합니다. 보다 나은 대책이나 조치가 있을 때까지, 저희 취재진도 후속 취재와 보도를 이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