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화재 원인은 당국의 조사결과를 좀 더 지켜봐야겠습니다만, 병원 건물의 불법 증축과 비상발전기 미작동 등의 문제가 제기되는 걸로 볼 때 이른바 '인재(人災)'라는 지적이 나올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인재가 맞는다면 누군가의 책임론이 불가피합니다. 세종병원 병원장과 이사장 등 3명이 피의자 신분으로 바뀌었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청와대는 어떨까요? 세월호 참사 때부터 재난 컨트롤타워는 청와대이어야 한다고 강조해왔던 현 정부인 만큼 역시 책임론을 피해가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문 대통령도 29일 잇단 다중이용시설 화재 참사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면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최종적인 책임은 정부에 있다는 더 큰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자문해봅니다. 정말 이런 잇단 참사에 청와대가 책임을 질 수 있을까요? 청와대가 느슨하고 정신을 차리지 못해 이런 참사가 발생한 걸까요? 청와대가 모든 재난을 막을 방법이 있었을까요? 그렇지 않다면 왜 청와대는 그런 책임론을 걱정하거나 혹은 무리한 책임론에 시달려야 할까요? 스스로 자초한 면은 없을까요?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충북 제천 화재 당시 다수의 인명피해가 발생하자 다음 날 곧바로 현장을 찾았습니다. 화재 현장에 이어 병원과 장례식장도 방문해 유가족들을 위로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습니다. 사실 어느 정도 예상됐던 일이었습니다. 대형 사건 사고가 났을 때 대통령이 곧바로 가지 않는 건 이런 점을 고려한 조치입니다.
당시 청와대 참모들도 대부분 문 대통령의 현장 방문을 말린 걸로 알려졌습니다. 상황이 어느 정도 수습된 뒤 찾자는 거였습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설사 가서 싫은 소리를 듣더라도 피해자들과 함께 해줘야 한다며 뜻을 굽히지 않았던 걸로 전해졌습니다. 박수현 대변인은 이날 대통령의 심정을 '울음'이란 말로 대신했습니다.
● '靑이 재난 컨트롤 타워' ≠ '모든 재난은 대통령 책임'…하지만
문 대통령은 지난달 초 인천 낚싯배 사고가 났을 때에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관한 국가의 책임은 무한 책임이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이런 사고를 막지 못한 것과 또 구조하지 못한 것은 결국은 국가의 책임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국가의 책임'이 곧 '대통령의 책임'을 의미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재난은 국가 책임'이라는 대통령의 발언과 '재난 컨트롤타워라는 청와대'라는 말이 재난은 청와대의 책임, 즉 대통령의 책임이라는 인식을 만들어내는 데 역할을 한 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간 공약 등을 통해 대통령과 청와대가 국가 재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겠다고 강조해왔습니다. 실제로 청와대 위기관리센터를 강화하고 또 그렇게 운영하고 있습니다. 국가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과 청와대가 재난의 컨트롤타워를 맡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걸 다 청와대가 맡아 처리할 순 없습니다.
그래서 총리도 있고 행정안전부 장관도 있고 소방청장도 있는 겁니다. 앞에서 문 대통령이 언급한 국가란 이렇게 각 기관들이 결합해 이루어진 시스템으로서의 국가를 말한 걸로 봐야 합니다. 국가원수이자 행정부 수반으로서 대통령이 국가적 재난에 총체적 책임을 지는 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포괄적 의미이지 현장에서의 대응, 특정 영역에서의 관리부실과 불법행위까지 일일이 다 대통령이 다 챙길 수도, 책임질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시스템으로서의 국가가 챙겨야 할 몫입니다. "이 책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정부, 지자체, 국회, 정치권 모두 공동 책임을 통감하면서 지금부터라도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마음을 모아줄 것을 요청한다."고 29일 문 대통령이 말한 것도 이런 맥락입니다. 혼자서 책임질 수도 없는 일에 대해 자꾸 책임을 거론하고 그 컨트롤타워가 어디라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무책임이 될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지난 세월호 사태를 거치면서 우리 국민의 머리 속에 대형 사고와 재난에 대한 ‘대통령의 책임’은 거의 절대적인 것으로 각인됐습니다.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 역시 이런 인식을 강화하는데 한 몫 했습니다. 물론 전 정권에서 대통령이 제 역할을 못한 부분은 비난 받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앞서 문 대통령의 말처럼 국가적 재난에서 정부, 지자체, 국회, 정치권 가운데 자유로운 곳은 없을 겁니다.
여기에는 국가적 재난을 정치적 공격 수단으로 악용해 온 우리 정치권의 오랜 악습이 깔려 있습니다. 그런 점에 있어서는 지금의 여야 모두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 최근 잇단 참사를 정쟁에 이용하려는 듯한 야당의 행태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현 여권도 그런 행태를 반복해왔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를 게 없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대형 재난을 완전히 피해가는 건 불가능합니다. 어떤 선진국도 100% 안전한 곳은 없습니다. 중요한 건 대형 사건사고나 재난이 터졌을 때 각급 단위에서 각자 맡은 일을 충실히 처리해 나가는 겁니다. 지금부터라도 재난적 상황을 정치적 책임론으로 끌고 가는 구태부터 버려야 합니다. 그만큼 대통령이 마치 모든 걸 다 책임질 것처럼, 혹은 그래야 하는 것처럼 몰고 가는 것 또한 없어져야 하지 않을까요?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