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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칼럼] '왜 다시 기자일까'…실제 기자 입장에서 살펴본 '기자 드라마'

[연예칼럼] '왜 다시 기자일까'…실제 기자 입장에서 살펴본 '기자 드라마'
탄탄한 연출력과 배우들의 호연, 그리고 거듭되는 반전으로 첫 회부터 종영 때까지 시청률 1위를 독주하고 있는 SBS 월화드라마 ‘조작’.

지난 4일 첫 선을 보이자마자 화제의 중심에 선 tvN 새 월화드라마 ‘아르곤’.

평일 안방극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두 드라마엔 공통점이 있다. 바로 ‘기자’를 전면에 배치시킨 드라마라는 점이다.

물론, 과거에도 기자를 소재로 하거나 기자들을 중심으로 줄거리를 전개해 나가는 드라마들이 있었다. 하지만, 반짝 관심에 그쳤을 뿐 흥행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다면, ‘조작’과 ‘아르곤’은 왜 흥행에 성공했을까. 기자 소재 드라마의 과거와 현재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그리고 ‘왜 다시 기자일까’. 실제 기자 입장에서 살펴봤다. 

● 연애하거나, 바바리맨이거나

우리나라 드라마를 두고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의학 드라마는 ‘병원에서 연애하는 얘기’, 법정 드라마는 ‘판검사들이 연애하는 얘기’라고.

그렇기에 멜로드라마 일색이었던 과거 드라마에서 기자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기자는 ‘언론사에서 연애하는’ 인물들이었다.

하지만, 팍팍하고 고단하기 그지없는 기자의 직업적 특성 안으로 ‘달달한’ 연애가 녹아 들어가기도 힘들었고, 그렇기에 극 전개도 어려웠다. 무엇보다 재미도 없었다.

아니면, ‘기자가 연애하지 않는’ 드라마의 경우, 그나마도 단역 혹은 주인공 주변에 맴돌면서 주인공을 괴롭히는 악역인 경우가 많았다. 그렇기에 캐릭터 설정과 묘사도 현실성이 떨어졌다.

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어김없이 ‘바바리맨’ 차림으로 등장했다. 수첩과 카메라를 들고 주인공들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출생의 비밀이나 불륜 현장을 캐내 주인공을 협박하는 역할이 대부분.

좋게 얘기하면 ‘씬스틸러’고 나쁘게 얘기하면 ‘하이에나’였다. 이들에게는 담당 취재 분야도 전문성도 없었다. 취재, 스틸 사진, 영상 기자가 분업화 된 지 오래되었지만, 극 중 기자들은 1인 다역을 척척 해냈다.

이처럼, 극 중 기자는 등장인물 중 하나였을 뿐 기자의 세계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은 없었다. 다루기도 까다롭고, 굳이 재미도 없는 기자 얘기를 풀어놓을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 왜 다시 기자일까

하지만 몇 해 전부터 변화의 조짐이 불기 시작했다. 드라마 속 기자는 변방에서 중심으로 다시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회부 기자의 세계를 본격적으로 그렸던 ‘스포트라이트’를 필두로 ‘피노키오’, ‘힐러’ 등이 호평을 얻었으며, 최근 ‘조작’과 ‘아르곤’이 흥행 쌍끌이를 하며 기자의 세계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사회부 사건 담당 기자의 실생활에 대한 묘사가 다소 아쉽다는 평가가 있었지만 ‘스포트라이트’는 기자의 연애담이 아닌, 직업인으로서 기자를 제대로 고찰한 첫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스포트라이트’의 주인공이자 사회부 신입기자인 손예진은 그동안 받던 스포트라이트 대신 화장기 없는 얼굴과 헝클어진 머리로 사실감을 더했고, ‘피노키오’의 수습기자 박신혜도 취업준비과정부터 신입기자로서 고생하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담아내며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특히, 최근작 ‘조작’과 ‘아르곤’은 사회부 사건 담당 기자를 넘어 탐사보도, 기획취재팀까지 영역을 확장시키며 디테일을 더하고 있다.

‘조작’은 남궁민과 유준상이 권력-돈과 결탁한 변질된 언론에 통쾌한 일격을 가하는 이야기로 인기몰이 중에 있으며, ‘아르곤’은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열정적인 탐사보도팀 기자들의 치열함을 조명하고 있다.

이들 작품 속에선 사랑싸움으로 고민하는 기자는 없다. 오히려 취재 과정, 그리고 취재 중 부딪히는 사람들로 고민하는 기자들이 있었다. 연애가 빠진 자리에 기자의 고뇌를 채우니 좀 더 사실적인 이야기를 풀어내기도 수월해졌다.
아르곤
그렇다면 달달한 로맨스도 재미도 없었던 ‘기자 이야기’는 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을까. 가장 큰 이유로는 최근 한국 사회를 강타한 일련의 사회 이슈와 관련이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세월호를 둘러싼 여러 의혹 등 그동안 잠복해있던 굵직한 정치 사회 이슈들이 기자들의 특종으로 인해 세상 밖으로 나왔고, 결국 우리 사회를 바꾸는 도화선이 됐다.

이에 진실을 추적하는 기자들에 대한 궁금증도 다시 커져갔고, 기자들의 삶도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숨 돌릴 틈 없는 그들의 24시간은 드라마에 긴장감을 불어넣기에 충분했고, 시청자들도 우리네 현실을 투영한 드라마에 보다 깊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울러, 천편일률적 소재와 장르에서 탈피하려는 방송가의 움직임도 이런 시류와 때를 같이 했다.

멜로와 막장이 대세를 이루던 드라마들 속에서 스릴러, 범죄 수사극 등 소위 ‘장르물’이 시선한 바람몰이를 했고, 방송사와 제작사들도 새로운 소재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레이더망에 포착된 것이 바로 기자였다.

● 유준상 김주혁 같은 데스크가 어디 있냐고

이처럼 드라마 내 외적인 배경을 둘러싸고 극 중 기자 캐릭터는 현실적으로 진화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맞았다.

‘조작’의 유준상과 ‘아르곤’의 김주혁이 수트핏 사는 멋진 기자, 혹은 후배 여기자를 구해주는 백마탄 왕자님이 아닌 밤낮없이 후배 기자와 스태프를 달달 볶는 까다로운 데스크로 등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실제로 기자 역할을 맡은 배우들은 방송사 내 드라마 세트장이 아닌 보도본부를 찾아, 기자들의 일상을 관찰하고 취재했다. 김주혁은 “기자 겸 앵커 역을 위해 직접 기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전해 듣고 모든 뉴스 프로그램을 챙겨봤다”며 캐릭터 준비 과정을 설명했다.

계약직 말단 기자 천우희도 마찬가지. ‘아르곤’에서는 천우희를 통해 기자뿐만 아니라 언론사가 처한 현실도 적나라하게 그려내고 있다.

해고된 기자들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계약직을 채용하는 배경이나 이런 계약직 기자들이 공채 기수가 아니라는 이유로 ‘기수 열외’ 당하고 무시당하는 모습은 최근 언론사와 기자들의 현실을 잘 반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 중 기자들에 대한 아쉬운 점은 여전히 남는다.

기자들 사이에서 우스갯소리로 “유준상 김주혁 같은 데스크가 어디 있느냐”, “천우희 손예진 같은 여기자는 없다”는 평가도 있다. 외모를 빗댄 농담이지만 그만큼 현실에 대한 반영이 아직 완벽하지는 못하다는 뼈 있는 농담이기도 하다.

과거에 비해 직업적 측면에서의 현실과 고뇌가 좀 더 리얼하고 자세하게 묘사되고는 있지만, 극적인 요소를 강조하다보니 기자 캐릭터를 지나치게 미화하거나 윤색하는 일도 잦은 것.

결국, 기자 캐릭터는 대중들이 신뢰하고 동경하는 기자상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고, 이로 인해 주인공은 늘 ‘정의로운 기자’였다.

이런 올곧은 기자 캐릭터가 중심이 되다 보니, 작품마다 지향점과 결말이 비슷비슷해지는 문제점도 생겨났다.

한 시청자는 “지난 가을과 겨울, 광화문 촛불집회 광장에서 손가락질 받는 매체와 기자도 분명 있었다. 드라마에서 기자를 그리면서 그런 이야기들 다루지 못한 것은 아쉽다”고 지적했다.

업계 이야기가 드라마화 되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던 기자들도 “기자 캐릭터가 과거에 비해 현실성 있게 그려지는 건 맞다. 다만 최근 MBC, KBS 총파업 등 기자들을 둘러싼 언론계의 문제를 다루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있다”며 “대기발령, 소위 ‘한직’으로의 좌천, 기자업무와 관계없는 부서 배치 등 기자뿐만 아니라 언론사에 대한 조명, 더 나아가 언론의 시대상을 제시할 수 있는 작품이 탄생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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