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문소리는 메가폰을 잡은 이유에 대해 프랑스 누벨바그의 거장 프랑수와 트뤼포의 말을 인용했다. 자신의 첫 번째 연출작 '여배우는 오늘도'를 통해 영화를 사랑하는 최상위 방법을 실천한 것이다. 각본을 쓰고, 제작하고, 연출했다. 하나도 제대로 해내기 힘들 역할을 무려 세 가지나 병행했다. 그것도 아주 잘.
오는 14일 개봉하는 '여배우는 오늘도'는 여성으로서의 삶과 배우로서의 삶을 고민하는 문소리의 이야기를 경쾌하고, 유머러스하게 담은 작품. 대학원 과제로 만든 3편의 단편('여배우', '여배우는 오늘도', '최고의 감독')을 장편으로 완성한 결과다.
문소리는 인터뷰 내내 연신 휴지를 뽑아서 코를 풀었다. 전날 걸린 감기 때문이었다. 피곤해 보인다고 하자 "괜찮아요. 어차피 제가 벌인 일이잖아요"하고 웃어보였다. 그렇게 인터뷰가 시작됐다.
문소리는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의 전설이 됐다. 단 한 번의 휴학 없이 제 기간(2년)에 석사 학위를 따간 최초의 학생이기 때문이다. 학점 이수와 중간, 기말시험은 물론이고 2년간 3개의 단편 영화를 찍어 국내 영화제에 상영을 해야한다는 요건을 모두 채웠다. 동기, 선·후배 모두 혀를 내둘렀다.
"그렇게 한데는 저 나름의 이유가 있어요. 친정엄마가 아이를 봐주셨는데 '빨리 졸업하라'고 압력을 넣으셨거든요.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어요. (공부를) 할 수 있을 때 바짝 한 거죠."
알려졌다시피 문소리는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1999)으로 영화계에 데뷔했다. 학생때부터 영화보다 연극을 좋아했다는 그녀는 배우가 되고 나서 영화와 사랑에 빠졌다. 뒤늦게 빠져든 사랑은 깊이와 넓이도 남달랐다. 영화를 느끼고, 공부하며, 만들기까지 했다.
'여배우는 오늘도'는 픽션을 전제한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나면 '배우 문소리'와 '인간 문소리'를 함께 본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대학 과제로 구상하고 만든 이 내밀한 이야기는 한 여성의 진솔한 생활 다큐인 동시에 충무로 여배우의 삶을 그린 블랙 코미디다.
영화를 만들기에 앞서 문소리는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고 했다. '이 영화를 왜 만드는지', '이 영화가 세상에 존재해야할 이유는 무엇인지'에 관해 말이다. 이같은 고민은 영화감독이자 남편인 장준환 감독과 공유하며 답을 찾아나갔다.
"이 신을 어떻게 찍을지 또한 이 장면을 어떻게 편집할지에 대해 이야기해 본 적은 없어요. 이 영화가 존재해야 할 이유에 관해서 자주 이야기를 나눴죠. 그런 질문을 하는 과정에서 불편한 진실과 마주할 때도 많았어요. 어려운 과정이기는 한데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것 자체가 주는 만족감이 있더라고요."
◆ "문소리의 삶이 오해받는 것보다 중요했던 건…"
감독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영화 속 '배우 문소리'는 영화 밖 '문소리'의 삶과 겹쳐 보인다. 캐스팅에 탈락해 매니저에게 히스테리를 부리고, 친정 엄마의 임플란트를 위해 치과에 협찬 사진을 찍고, 술에 취해 감독인 남편에게 응석을 부린다.
캐스팅을 걱정하는 데뷔 18년 차의 배우, 응석받이 아내, 아마추어 엄마, 무심한 딸까지 1인 4역의 녹록지 않은 삶을 문소리는 '연기'했다. 픽션이라도 논픽션처럼 보일 수 있는 역할이기에 적잖은 용기도 필요했을 터.
본인이 영화에서 비치는 이미지보다 걱정했던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인물들에 대한 오해였다.
"어떤 이야기를 썼는데 인물이 다층적이지 않으면 오해할 수 있잖아요. 우리 영화에서는 실제 저와 관련 있는 인물들인 엄마, 남편, 아이가 나와요. 그 캐릭터들이 실제라고 오해하게 되면 그분들에게 누가 될 수 있잖아요. 저에 대해서는 실제와 판타지를 오해해도 상관없는데 제 주변 사람들은 이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니 오해나 왜곡되게 보일까 봐 우려했어요. 그 때문에 꾸며진 이야기 안에서도 진심을 전달하는 균형은 맞추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문소리는 "이 영화가 페미니즘과 상관이 있나요?"라는 남자 기자의 질문에 "제가 여성이니까 상관없다고 할 순 없어요. 여성에 대한 담론이니까요. 그것이 이 이야기의 가장 큰 핵심이나 틀은 아니지만 살아가면서 페미니즘과 제 삶이 굉장히 연관이 많다는 것을 느끼고 있고, 많은 이들의 삶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생각해요"라고 답했다.
"어디 가서 제 자신을 소개할 때 '여배우' 문소리라고 하지 않아요. 마찬가지로 직업란에 '배우'라고 쓰지 '여'배우라고 쓰지 않죠. 제목에 나오는 '여배우'는 여성으로서 삶과 영화를 만드는 여자 사람으로서 삶, 그 두 가지를 아우르는 표현이에요. 사회적인 젠더 감수성을 새삼 생각해 보는 표현이라 일부러 썼어요"
'여배우를 위한 영화가 없다'는 충무로의 해묵은 담론에 대해서는 "그건 뭐 새삼스러운 일을 아니니까요"라고 반응했다. 그러면서도 "리즈 위더스푼이 '와일드'라는 영화를 제작하고 출연했는데, 그 영화를 보면서 많이 울었어요. '저긴 할리우드니까 저런 영화도 만들 수 있지' 하면서 넘어갈 수도 있겠죠.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나도, 여러 가지 시도는 해봐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라고 말했다.
'여배우는 오늘도'에서는 천만 영화 제작자가 문소리에게 '나이 많은 정육점 여자' 캐릭터를 제안하면서 "캐릭터,죽여~"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큰 웃음을 선사하는 장면인 것은 분명하지만, 뼈가 씹히는 장면이기도 하다.
문소리는 여배우의 설 자리가 축소되고 있는 충무로 환경에서 현명하게 자신의 길을 개척해나가고 있는 배우다. 독립영화 '만신'에 출연한다던가,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에서 조연으로 출연해 존재감을 뽐냈다. 그러나 상업영화에서 독립영화, 주연에서 조연으로 욕심을 내려놓는 과정도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캐릭터는 옷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오늘 트렌치코트를 입었으니까 내일은 입고 싶지 않지만, 입어야 한다면 입어야죠. 어떤 옷이든 때와 장소에 맞게 입는 게 중요하니까요. 그게 본질이에요. 마찬가지로 캐릭터보다 중요한 것은 그 작품이 무슨 작품인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가 가장 중요해요."
극장 개봉을 염두에 두지 않고 만들었던 영화는 영화진흥위원회의 독립영화 지원을 받아 정식 개봉하게 됐다. 손익분기점을 묻는 말에는 난처해하며 2,3만 명이라도 들면 영화 작업을 도와준 스태프들과 기쁘게 웃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답했다.
"독립영화 시장이라는 게 파이가 아주 작잖아요. 제 영화를 많이 걸어달라고 조를 순 없는 입장이에요. 지금 상영 중인 '더 테이블'은 제 친구(김종관 감독) 영환데 그걸 내리고 제 영화를 걸어야 할 상황이에요. 또다른 김양희 감독이 만든 '시인의 사랑'과는 같은 날 개봉을 하게 됐어요.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죠. 그래도 모두 다 잘 됐으면 좋겠어요."
(SBS funE 김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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