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 국회의장이 27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특검 연장 신청 불승인으로 또다시 시험대에 섰다.
특검 수사기간 연장의 사실상 마지막 수단이라고 할 수 있는 직권상정 카드를 놓고 또다시 결단을 내려야 하는 갈림길에 올라있는 형국이다.
정 의장은 현재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인 특검연장 법안에 대해 여야간 사전 합의 없는 직권상정은 없다는 원칙을 고수해왔다.
그러나 특검연장 무산에 분노하는 여론을 등에 업고 야권이 또다시 직권상정을 압박하고 나서면서 정 의장으로서는 심리적 부담이 클 수 밖에 없다.
당장 이날 오전부터 야당 지도부와 일부 주자들 사이에서는 정 의장을 향해 직권상정 권한을 발동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금 대두하기 시작했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이날 '특검연장 거부 황교안 규탄대회'에서 "특검법 연장을 국회에서 다시 논의하겠다. 직권상정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대권주자인 이재명 성남시장은 페이스북에 "사변적 국가비상사태라는 법적 요건은 이미 갖춰져 있습니다. 의장님의 결단으로 역사를 바로 세워 주십시오. 심사기일을 지정해서 직권으로 28일 본회의를 소집해 주실 것을 간청드립니다"고 썼다.
국민의당 주승용 원내대표는 의원총회에서 "정 의장께 특검법을 직권상정 해달라 요구했지만 묵살했다. 민주당은 그 자리에서 국회의장을 설득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국회의장의 뜻에 동조했다"고 비판했다.
고연호 대변인은 논평에서 "대통령 유고로 국정이 마비된 것이 국가비상사태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 국가비상사태란 말인가"라며 "국민의 명을 받들어야 하는 국회의 수장으로서 정 의장은 특검법 직권상정을 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다시금 직권상정 요구가 커지자 정 의장은 이날 오후 '특검 연장 불승인에 대한 국회의장 입장'을 내놨다.
황 권한대행의 불승인에 대한 유감을 표하면서도 직권상정을 하지 못하는 이유를 소상히 설명하며 기존 입장을 고수하는 기조였다.
그러면서 "첫째, 국회 스스로가 법의 권위와 원칙을 지킴으로서 예측 가능한 정치, 과거와는 다른 정치의 길을 열고자 함이며 둘째, 구악과 구습의 단절을 위한 정부의 최소한의 양심을 기대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 의장은 이어 "국회는 법과 원칙의 준수라는 국회의 책무를 성실히 수행하되 국민의 대의기관으로서 국회 구성원들은 여야를 떠나 정의의 가치를 지키는 길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 의장 발언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여당인 자유한국당을 겨냥한 압박성 발언의 성격이 짙다.
야권이 일제히 특검연장법안 통과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당이 민심을 거스른 채 법사위에서 '발목'을 잡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려 했다는 분석이다.
정 의장으로서는 일단 기존 입장을 유지하면서 당분간 법사위를 중심으로 한 여야의 논의상황과 여론의 추이 등을 관망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정 의장은 이날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야당 측의 직권상정 요구를 수용할 것이냐는 질문에 "아직 이렇다저렇다 얘기할 상황은 아니다"라며 즉답을 피했다.
정 의장은 '직권상정을 결심했느냐'는 질문에는 "그건 아니다. (입장문) 글자 그대로"라고 답했다.
정 의장 측의 한 관계자는 "황 대행이 특검 연장 신청을 불승인한 것에 대한 유감을 표한 것"이라며 "현 상황이 국회법에서 직권상정 요건으로 규정한 비상사태가 아니라는 데는 입장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지금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직권상정을 했다가 악영향이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특검이 계속돼야 한다는 입장은 변화가 없지만, 이런 것들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