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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촛불 민주주의' 언제·어디서 시작됐을까

대한민국 '촛불 민주주의' 언제·어디서 시작됐을까
2016년 대한민국 사회 변혁의 구심점이 된 촛불집회는 언제 어디에서 시작했을까.

희생자 추모의 뜻으로 밝히는 촛불이 우리나라의 집회문화에 등장하게 된 최초의 계기는 14년 전 미군 궤도차량에 의해 숨진 여중생 사망사건이었습니다.

2002년 6월 13일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효촌리 56번 지방도로에서 갓길을 걷던 신효순· 심미선(14·당시 조양중2) 양이 미2사단 소속 가교 운반용 장갑차에 깔려 그 자리에서 숨졌습니다.

'2002 한일 월드컵 응원의 장'이던 시청광장을 6개월 뒤 촛불로 뒤덮이게 한 바로 그 사건입니다.

대규모 촛불집회가 있기 전 양주시 인근 의정부시에서는 청소년들이 참여하는 작은 시위와 집회가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의정부시는 해당 미군 부대가 주둔하고 효순·미선이의 언니 둘이 각각 의정부여고를 다녀 학생들 사이에서 안타까움과 분노가 퍼졌기 때문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촛불'은 주한미군이 처음 밝혔습니다.

당시 사건을 급히 마무리 지으려던 주한미군은 6월 18일 부대 안에서 미선·효순양 추모식을 열었고, 이때 촛불이 처음 등장한 것입니다.

희생자를 추모하는 뜻으로 미군 병사들은 촛불을 들었습니다.

종이컵으로 초를 감싸는 모양이 아닌 떨어지는 촛농을 밑에서 받치는 형태였습니다.

이를 본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살해사건 경기북부대책위'는 회의를 열어 집회에서도 촛불을 들기로 했습니다.

이어 6월 20일 저녁 미2사단 레드클라우드 앞에서 열린 주한미군 규탄 집회에서 청소년들의 손에서 촛불이 타올랐습니다.

사건 발생 약 일주일 뒤였습니다.

집회를 이끌었던 심우근 의정부여고 교사(58·현 평택비전고 교사)는 "촛불은 흔들리고 연약해 보이지만 정신이 집중되고 자신의 몸을 태워 빛을 밝힌다는 희생의 의미가 있어 집회에서도 초를 들기로 했다"며 "약한 자가 권력에 대항할 수 있는 작은 방법"이라고 말했습니다.

가해자인 미군 측 추모행사에서 먼저 피어난 촛불을 시민들의 손 위로 옮겨왔다는 데서도 의미가 컸습니다.

의정부지역에서 촉발된 촛불집회는 이후 미군 측 가해 병사들이 '무죄 평결'을 받으면서 민심의 분노가 전국으로 옮아갔습니다.

12월 내내 주말 저녁마다 광화문 일대는 촛불로 밝혀졌습니다.

촛불집회는 '촛불 문화제'라는 이름으로, 야간 시위를 금지하는 우리나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을 거스르지 않는 형태의 집회이기도 했습니다.

앞서 온라인 서비스의 유료화에 반대하는 첫 촛불집회가 1992년 열린 것으로 알려졌긴 하나 '야간 시위' 문화를 주도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촛불은 2002년 미군 궤도차량 여중생 사망사건 규명 촉구 집회가 꼽힙니다.

이후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시위,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집회, 2011년 대학생 반값등록금 집회,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집회 등으로 이어졌습니다.

역사적인 첫 촛불집회 현장을 촬영했던 이용남(61) 사진가는 "초점을 제대로 맞추지 못할 정도로 화가 났지만, 촛불을 보는 순간 희망이 보이는 등 만감이 교차했다"며 "어른으로서도 아이들에게 미안했다"고 당시 소감을 전했습니다.

이어 이씨는 "요즈음 국민의 힘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여전히 촛불을 들어야 문제가 해결된다는 건 슬픈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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