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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요없었다"…미르·K스포츠 출연기업 '오리발' 릴레이

'강제모금' 증언 물꼬 터지면 잇따라 번복 가능성

"강요없었다"…미르·K스포츠 출연기업 '오리발' 릴레이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과정에서 '강제모금'에 동원됐다는 논란에 휩싸인 기업들은 한결같이 청와대나 현 정권 '비선 실세'로 지목된 최순실(60) 씨 측의 강요는 없었다는 입장을 지키고 있다.

한류 확산과 체육 인재 육성이라는 재단 설립 목적에 맞춰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를 통해 사회공헌활동의 하나로 기부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실제로 일부 기업은 내부 회의를 통해 전경련의 출연 제의를 거절하기도 했다.

신세계 관계자는 2일 "미르재단 출연 여부를 논의했던 회의에서 찬반양론이 있었는데 (재단 설립 목적이) 우리 회사의 사업 방향과 맞지 않아 출연하지 않기로 했다"며 "다만, 스포츠 구단을 운영하지 않는 상황에서 체육 부문에 기여할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에 K스포츠재단에만 기부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속사정은 간단하지 않다.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 기업 관계자는 "전경련이 모금을 시작하면 먼저 삼성이 대략적인 액수를 정하고 다른 기업들이 거기에 맞춰 (재계 서열에 따라) 액수를 정한다"며 "이런 프로세스(체계)가 '관행'이 되다 보니 강요와 강요가 아닌 것 사이의 경계가 모호한 것"이라고 말했다.

재단 설립 외에 최순실 씨 일가를 위해 사용된 돈 등 다른 곳으로 흘러들어 간 자금에 대해서는 기업들의 '모르쇠 대응'이나 말 바꾸기가 더 두드러진다.

삼성의 경우 최순실 씨가 독일에 세운 회사 '비덱(Widec) 스포츠'에 지난해 280만 유로(약 35억 원)를 건넨 정황이 검찰에 포착됐다.

이 돈은 최 씨 딸 정유라(20) 씨가 말을 사는데 쓰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삼성은 비덱이 2020년 도쿄올림픽 비인기 종목 유망주를 육성하겠다며 4대 기업에 80억 원씩 요청했다는 보도에 "비덱으로부터 관련한 요구를 받은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특히 삼성은 정씨가 삼성으로부터 10억 원에 달하는 말을 지원받았다고 독일 언론이 보도했을 당시에도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삼성은 "검찰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며 원론적 입장만 밝히고 있지만 검찰에서는 승마협회 추천으로 비덱의 전신인 코레(Core) 스포츠와 컨설팅 계약을 하며 돈을 건넸다고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그룹 역시 K스포츠재단에 대한 추가 출연 요구를 받았던 사실을 쉬쉬하다 K스포츠 내부 문건과 계좌 물증 등이 일부 언론에 노출되자 "사회공헌활동의 하나였다"고 말을 바꿨다.

앞서 K스포츠재단은 '5대 거점 체육인재 육성사업'의 하나로 경기도 하남에 체육센터를 짓는다며 롯데에서 70억 원을 받았다가 돌려줬다.

롯데 관계자는 "센터 설립 취지가 좋아 기부를 결정했기 때문에 별다른 압력도 없었다"며 "다만, K스포츠재단 측이 센터 부지를 정부가 불하(정부나 공공기관이 민간에 토지·건물을 매각하는 것)할 것이라고 설명했는데, 이는 정부 관심 사업이라는 뜻이므로 이런 부분도 고려된 것은 사실"이라고 전했다.

롯데가 검찰에서 최 씨 측근에 의한 모금의 강제성을 인정했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서는 "사업 제안을 최 씨 측근인 고영태 씨가 했다는 뜻이지, 압력을 받았다는 뜻은 아니다"라며 "당시에는 고 씨가 최 씨 측근이라는 점을 알지도 못했다"고 강력 부인했다.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기업 관계자는 "지금은 말 한마디가 조심스럽다"며 "기업은 '팔 비틀기' 당해 돈을 낸 피해자에 불과하지만 대가를 바라고 돈을 댔다는 의심을 살 수 있고, 여전히 '눈치'봐야 할 대상도 많다"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검찰의 수사 강도가 높아지고 어느 한 기업에서 '강제모금'에 대한 진술이 나올 경우 다른 기업들까지 진술을 번복할 가능성도 적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도 검찰 조사에서 "안종범 전(前) 청와대 정책조정수석비서관 등 청와대 측이 '미르·K스포츠재단 자금 모금에 힘을 써 달라'고 지시했다"며 기업의 자발적 모금이었다는 기존 입장을 번복했다.

대기업 계열사 관계자는 "유력 정치인들도 줄줄이 이번 사건과 관련된 '선 긋기'를 하고 있어서 삼성이나 SK·롯데 등이 (강제 모금이었다고) 진술할 경우 다른 기업들도 입장을 뒤집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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