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년 대학에 입학한 윤형주는 캠퍼스에서 만난 통기타에 흠뻑 매료되기 시작했다. 동갑내기 이장희 등 연세대 학생들로 구성된 ‘라이너스 트리오’를 결성해 대학 1학년부터 서울은 물론 전국을 돌며 공연을 다녔고, 마냥 행복했다. 20살에 통기타 하나 들고 시작한 공연은 전국 어디를 가든 박수갈채가 쏟아졌고, 그만큼 실력이 탁월하니, 당대 가장 인기를 끌던 음악 감상실 ‘쎄시봉’ 무대에 서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던 셈.
윤형주, 이장희, 이익균, 그리고 조영남, 송창식, 김세환, 양희은 등 훗날 한국 포크음악은 물론 대중음악의 거장이 되는 이들이 역사적으로 조우한 공간이 바로 ‘쎄시봉’ 이었던 것이다.
1966년에서 꼭 반세기가 지난 2016년 가을, 서울 당산동의 한 연습실에서 이들이 모였다. 가장 빛나던 시기를 추억하며 무대에 오를 준비가 한창이었다.
우리 나이로 일흔. 외모로도 전혀 일흔으로 보이지 않았고, 연습을 시작하니 꼭 스무 살 무렵으로 돌아간 듯, 목소리에선 싱그런 젊음의 기운이 흘러나왔다.
노화는 목소리에도 찾아올 텐데, 목소리에는 변함이 없는 걸까? 막내(?)인 김세환은 목소리는 여전하다고 자신한다.
“마음이나 생각은 50년 전 캠퍼스에서 윤형주 형님을 처음 만났을 때와 모두 똑같아요. 다만 몸은 나이가 들었죠. 그러나 목소리만큼은 우린 아직 녹슬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김세환)
언제나 현실인식이 가장 정확하다고 자신하는 윤형주의 의견은 조금 달랐다.
“사실 대부분 나이가 들면 목소리의 바이브레이션이(음을 상하로 가늘게 떨어 아름답게 울리게 하는 기법) 조금 쳐져요. 또 음이 저음 쪽으로 많이 내려가는 경향이 심해지면서 본래 지켜야할 음정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저희는 그렇게 음색이 많이 변한 것 같지는 않아요. 물론 20대 초반의 그런 목소리는 아니죠. 근데 좀 성숙해졌다고나 할까? 자리 잡은 목소리라고 할까? 여하튼 음색의 본질은 그렇게 변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익균은 군대를 가면서 음악을 그만 둔 뒤엔 건설회사에 다녔다. 최근 정년퇴직을 하고 다시 반세기만에 이들과 합류한 것.
“전 군대 가기 전 1년 남짓 쎄시봉에서 이 친구들과 함께 하며 노래를 불렀죠. 단 1년이지만, 사실 제 젊은 날의 추억은 이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노래를 불렀던 쎄시봉에서의 기억이 전부인 것 같아요. 젊은 시절 전 그냥 노래가 좋았죠. 가수는 꿈도 꾸지 않았아요. 가수란 노래를 불러서 돈을 버는 사람이잖아요. 저에게 음악은 영원한 취미이고 싶었고, 그래서 가수가 아닌 다른 길을 선택했고. 그 길을 잘 마무리 한 뒤 이렇게 친구들과 다시 노래를 부를 수 있어 참 기뻐요.“
‘쎄시봉’에서 함께 노래를 불렀던 어떤 이는 한국 최고의 포크가수가 됐고, 또 어떤 이는 성실하고 평범한 직장인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잘 살아냈다. 20살에도 친구였던 그들은 70이 되어도 여전히 친구인 채, 함께 노래를 부른다.
엄혹한 시절, 그들의 음악에 대중들은 위로받았다. 그저 좋아하는 음악을 했을 뿐인데, 사랑까지 받은 세월이 기적 같고 감사하는 그들. 목소리가 허락하는 한 계속 노래를 부르고 싶단다.
“나이가 쉰이 넘으면 정말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이 부쩍 들어요. 그런 면에서 친구들은 참 건강하게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가면서 살아가는 게 참 보기가 좋고. 젊은 시절은 그때대로 우리들의 모습이 아름답고, 젊음 하나만으로 참 보기 좋았을지 모르지만, 요즘은 그런대로 서로를 보면 ‘서로 참 잘 나이 들었구나’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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