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이 1차 유동성 위기를 겪던 2014년 한진그룹으로 편입되면서 2년 뒤 두 회장의 처지가 엇갈렸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물류대란이 번지는 가운데 당시 경영권을 넘겨받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문제 해결에 책임을 져야 할 처지가 됐다.
반면 7년간 회사를 경영해 위기에 빠뜨린 장본인인 최은영 전 회장(현 유수홀딩스 회장)은 남아있는 알짜 자산으로 수입만 올릴 뿐 정작 한진해운 사태에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7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최 회장이 대표로 있는 유수홀딩스는 현재 서울 여의도 한진해운 사옥을 소유하고 있다.
이 사옥은 현재 2천억원대 가치가 있고 연간 벌어들이는 임대료는 140억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이 건물에 입주해있는 한진해운이 내야 하는 임대료는 연간 40억원 정도다.
한진해운은 경영 악화로 일부 임대료를 연체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최 회장은 남편인 조수호 전 한진해운 회장이 사망하면서 2007년 회사를 넘겨받아 2014년까지 경영하다가 그해 5월 조양호 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겼다.
2008년 리먼사태 이후 지속한 글로벌 해운업 불황 속에 운임 하락, 고가의 용선료 등으로 경영 상태가 악화해 한진해운의 부채비율이 1천445%까지 치솟았을 때다.
경영권 이전 당시 최 회장은 한진해운 사옥뿐만 아니라 지주사인 한진해운홀딩스(현 유수홀딩스)를 챙겨 알짜 회사인 싸이버로지텍, 유수에스엠 등을 계열사로 편입했다.
정보기술(IT) 서비스업체인 싸이버로지텍은 지난해 영업이익률이 44.5%에 달했는데 일감의 상당 부분을 한진해운과 한진그룹으로부터 받았다.
결국 한진해운의 누적된 부실에는 전혀 책임을 지지 않고 침몰하는 회사에서 끝까지 본인 이익만 챙긴 셈이다.
금융감독원 공시에 따르면 최 회장은 지난해 유수홀딩스 대표이사로 재직하면서 11억2천200만원의 급여를 수령했다.
올 상반기에도 급여로 5억6천100만원을 챙겼고, 최 회장 일가가 소유한 재산은 공식적으로 드러난 것만 1천850억원 수준이다.
한진해운이 자구노력을 하는 과정에서 유동성 확보가 간절했지만, 최 회장은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자율협약을 신청하겠다고 발표하기 전에 한진해운 잔여 보유 주식을 모두 처분한 것으로 드러나 여론의 지탄을 받기도 했다.
회사가 끝내 법정관리에 들어선 뒤에도 최 회장은 미동도 없이 무책임한 행보로 일관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최 회장이 2014년 한진해운홀딩스와 한진해운의 분할합병 당시 채무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도록 안전망을 깔아놨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진해운 채무에 대해 한진해운홀딩스의 연대 책임을 면제해주는 대신, 이전한 의무 중 한진해운홀딩스의 연대로 한진해운에 수혜가 발생하면 한진해운홀딩스가 그 대가를 청구할 수 있도록 분할합병계약서를 작성했다는 것이다.
최 회장은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서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돼 곧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이와 대조적으로 조양호 회장은 이미 부실할 대로 부실한 한진해운을 떠안아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으며 회생시키려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이제는 법정관리에 따른 물류대란에 일부 책임을 인정하며 사재 400억원을 출연해야 하는 상황이다.
조 회장이 열악한 경영 상태를 알면서도 한진해운을 넘겨받은 것을 두고 업계에서는 장남으로서 부친의 가업을 살려야 한다는 의지가 강하게 작용했다고 본다.
부친인 고 조중훈 창업자 때부터 이어져 온 육·해·공 물류를 아우르는 '수송보국'의 꿈을 포기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당시 한진그룹 참모들이 한진해운을 떠안으면 위험하다고 조언했으나 조 회장이 뜻을 굽히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해운업계의 한 관계자는 "조 회장이 한진해운을 살리기 위해 노력한 점은 분명히 있다"면서도 "그러나 결국 회사를 지켜내지 못해 물류 혼란을 유발한 1차 책임이 있고, 사재 출연 요구가 계속 있었는데도 뒤늦게 결단을 내린 것에 대한 비판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