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칼럼] 요리로 보는 프랑스살이

[칼럼] 요리로 보는 프랑스살이
“선배가 관심 있을 것 같아서요”하면서 문화부 후배 기자가 가져다 준 책이다. “신경 써 줘 고마워.”하면서 받 긴 했지만 요리책은 부담이다. 책보고 요리 만들어 먹을 일이 거의 없는 데다가 요즘은 레시피가 궁금하면 인터넷에 물어보면 된다. 출판사에서는 사진 작업 등으로 원가가 많이 들어 비싸게 내놓는 책이긴 하지만 두꺼운 요리책은 잘 보지도 않고 둘 데도 없어 집에서 이리저리 굴러다니기 일쑤다.

그런데 ‘도대체 프랑스 요리를 어떻게 집에서 만든다는 거야? 프랑스 가정식 요리라는 게 어떤 거야?’라면서 가볍게 책장을 넘기다 보니 빨려 들어버렸다. 이건 요리책이 아니다!

저자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전설적인 레스토랑 <셰 파니스>출신의 일류 요리사 데이비드 리보비츠. 그는 머리말에서 살인적인 물가를 자랑하는 파리에서 좁은 원룸형 스튜디오에 자신의 부엌을 직접 만드는 과정부터 소개했다. 파리의 환상에 빠져 에펠탑이 보이는 근사한 다락방(과거에는 주로 하녀들이 사용했던 방이다!)을 사진만 보고 구해 놓고는 부엌을 만드느라 고생했던 이야기가 눈앞에 보이듯이 펼쳐진다.

만든 음식을 그릇에 옮기고 나서는 빈 그릇 둘 데가 없어 지붕(다락방은 창문만 열면 지붕에 닿으니까)위에 올려놓거나, 허공에 받쳐 들고 어정쩡하게 서 있기도 했다는 거다. 제대로 된 개수대를 구하기 위해 온갖 인터넷 사이트를 다 뒤져 찾아내 프랑스 북부까지 차를 몰아 가서 개수대를 실어왔다.

이렇게 완성된 조그만 부엌에서 프랑스 가정식 요리 레시피 100여 개가 탄생했다! 이걸 보면 크고 훌륭한 부엌이 아니라도 좋은 요리는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내 이야기는 결코 아니지만.
부엌을 정비한 뒤부터 본격적으로 파리 정착을 위한 고생담이 쏟아진다. 파리에 정착하기 위해 공무원들이 요구하는 엄청난 서류들을 준비하기 위해 고생했던 이야기부터 멋쟁이 파리지엥의 이미지와는 정반대로 줄서기를 할 때는 정신 바짝 차리고 다른 사람들을 밀치지 않으면 절대 맨 앞으로 도달하지 못한다는 이야기, 은행에서 현금 떨어져 인출이 종종 안되는 경우를 대비해 여분의 현금을 준비해 둔다는 이야기 등은 파리에서 살면서 고생해 본 사람들은 누구나 공감하는 이야기이다.

요리사로서 전문 분야에 대한 통찰력도 보여준다. 미식의 나라 프랑스에서 패스트푸드가 전통 요리를 앞지르고, 간단히 데워먹는 냉동식품 체인이 폭넓은 인기를 누리고, 유명한 레스토랑 뒤편 쓰레기통에서 패키지로 포장된 메인 요리들이 발견되고, 아르헨티나에서 온 마늘, 모로코에서 들어온 딸기를 프랑스 로컬푸드라고 우기는 장사꾼들을 지적하며 한탄한다.

20년이 넘게 인기 요리 블로거로 자리잡게 한 그의 글솜씨는 책을 읽는 동안 계속 키득키득 웃게 만든다.

-(올리브씨를 빼는 과정을 설명할 때)
 “올리브씨가 ‘아주 멀리까지’ 자신의 ‘자유’를 선포하니 꼭 어두운 색 셔츠나 앞치마를 입어야 한다.”

-(양파수프를 먹는 과정을 설명할 때)
 “움푹 팬 구덩이마다 펄펄 끓는 국물이 고인 빵 조각을 떠먹느라 쩔쩔매거나, 그 위에 용암처럼 덮인 치즈를    베어 물고 입에서 숟가락을 뺄 때마다 치즈가 침 줄기처럼 늘어지는 광경은 공공장소에서 어울리지 않으니까  나는 이것을 집에서 즐긴다.”
자신이 직접 특산품을 찾아 여행했던 경험들을 재미있게 풀어써 놓아 프랑스 여행서로 삼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저자는 프랑스에 사는 재미 가운데 하나를 치즈 가게에 들러서 매일매일 다른 치즈를 살 수 있는 점이라고 말할 정도로 치즈 애호가이다. 때문에 콩테 치즈의 산지 쥐라 산맥으로 한겨울에 여행을 떠나 원하던 치즈와 쥐라 지방의 와인을 곁들여 먹었지만 가는 길에 차 사고가 나 목숨 걸고 치즈를 먹었다고 너스레를 떤다.
파리에서 10년을 ‘파리의 아메리카인’으로 살면서 미국과 프랑스인의 식습관, 성격 등을 자세히 비교한 부분도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한다. 요즘은 여름철에 프랑스인들이 맥주도 많이 마시기는 하지만 자신은 얼음 넣은 로제 와인을 즐긴다는 것. 얼음을 넣은 로제를 우려 섞인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파리 사람들은 ‘어떻게 감히 저런 식으로 와인을 더럽힐 수 있지?’ 라고 말하고 싶어한다고 썼다.

실용주의의 나라 미국인들이 모든 것을 슈퍼마켓에서 해결하는 것과 달리 전통적으로 먹거리 쇼핑은 노천 시장에서 하는 것이 프랑스인들의 습관. 자신도 그런 ‘노천 시장파’이지만 단골 상인과 안면을 트면 수다스러운 프랑스인들은 곧 잡담이 길어져 장 보는 속도가 너무 느려진다는 게 단점이란다.
프랑스 바르베스 시장 (사진=게티이미지/이매진스)
치즈 이야기는 여기서도 빠지지 않는다. 미국인들이 부드럽고 약간 달콤한 치즈를 즐기는 반면 프랑스인들은 ‘잼이나 견과, 과일처럼 치즈를 분산시키거나 이질적 재료로 치즈를 차려 입힐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치즈를 치장한다고 해봐야 동네 빵집에서 견과와 말린 과일이 박힌 빵을 사다가 곁들여 먹는 정도’라고 치즈를 대하는 미국과 프랑스의 차이도 설명한다.

요리책인 만큼 목차는 전체와 전식부터 메인 요리, 디저트까지로 나눠지고, 식재료, 조리 도구, 그리고 자신의 식료품 저장실에 항상 구비돼 있는 식재료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와 함께 식재료들을 살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도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책을 읽는 동안 요리를 눈으로 보고 머리로 떠올리며 안 먹어도 먹은듯한 포만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부엌에 두기보다는 거실에 두고, 편안한 의자에 앉아 프랑스 여행하는 느낌을 가지며 보고 싶은 책이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오늘의 숏뉴스

많이 본 뉴스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댓글

    방금 달린 댓글
    댓글 작성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300

    댓글 ∙ 답글 수 0
    • 최신순
    • 공감순
    • 비공감순
    매너봇 이미지
    매너봇이 작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