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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에 묻힌 후배들 찾아 신혼여행 떠난 50대 산악인

히말라야에 묻힌 후배들 찾아 신혼여행 떠난 50대 산악인
▲  2009년 안나푸르나 직지원정대.
홍정표(사진 오른쪽 세번째)씨, 박종성(왼쪽 네번째)·민준영(맨 오른쪽)씨 (사진=연합뉴스)

 
"종성아, 준영아, 너희가 노총각이라고 놀렸던 형이 이제 결혼했다. 히말라야 어느 계곡에선가 외롭게 잠들어 있을 너희의 축하를 받고 싶다"

지난달 27일 늦깎이 결혼을 한 산악인 홍정표(50)씨가 부인(47)과 신혼여행을 떠난 곳은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홍씨는 산악구조대원 후배인 민준영(당시 37)·박종성(〃 42)씨를 잃은 2009년 9월 25일의 안나푸르나를 7년 동안 하루도 잊지 못했습니다.

이들은 청주지역 산악인들로 구성된 '직지원정대'의 대원이었습니다.

원정대는 안나푸르나 히운출리의 새로운 등산로를 개척해 '직지 루트'라고 명명하기 위해 그해 8월 27일 출정했습니다.

직지는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의 약자.

고려시대 청주 흥덕사에서 간행돼 청주를 상징하는 직지를 전 세계에 알리자는 취지로 계획된 프로젝트였습니다.

안나푸르나에 도착한 원정대는 서북능선과 북벽으로 정상 등정 루트를 잡고 2개 팀으로 나눴습니다.

홍씨가 대장을 맡은 서북 능선팀이 사전 정찰을 마치고 9월 13일 먼저 정상 공격에 나섰으나 눈과 얼음이 녹아 등반이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결국, 이틀 만에 베이스캠프로 철수한 뒤 박씨가 대장으로 나선 북벽팀의 루트개척 준비를 돕다가 그달 18일 산에서 내려와 귀국했습니다.

그로부터 1주일 뒤 그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비보를 접했습니다.

23일 등반에 나서 5천500m 지점에 있던 북벽팀 대원 2명의 교신이 25일 오전부터 끊겼다는 것이었습니다.

직감적으로 크레바스에 추락한 사고라고 생각했지만, 국내에 있는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저 히말라야에서 전해주는 두 후배의 생환 소식을 초조하게 기다릴 뿐이었습니다.

현지에서 6일간 수색이 이뤄졌지만, 결국 두 대원의 흔적조차 찾지 못한 채 원정대는 철수해야 했습니다.

이듬해 홍씨는 실종된 후배들의 시신이라도 찾기 위해 다른 원정대원들과 다시 안나푸르나에 올랐습니다.

계곡 곳곳을 샅샅이 뒤졌지만, 후배들을 찾지 못했습니다.

희생된 후배들은 홍씨의 가슴 속 깊은 곳에 아픔으로 남았습니다.

홍씨는 2013년 추석 때 산악구조대원과 유족, 동료 산악인 등과 함께 안나푸르나를 방문해 베이스캠프 인근 4천200m 지점에 후배들의 넋을 기리는 추모비를 세웠습니다.

그렇게 또 3년의 세월이 흘러 50살의 늦은 나이에 결혼하게 된 홍씨.

안나프루나에 외롭게 묻혀 있을 후배들의 모습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결국 홍씨 부부는 신혼여행지로 안나푸르나를 선택했습니다.

홍씨는 "종성이와 준영이는 오랫동안 충북 산악구조대원으로 동고동락했던 동생들"이라며 "그들이 숨졌다는 것을 지금도 믿을 수 없다"고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홍씨는 신혼여행을 떠나기에 앞서 원정대원, 산악구조대원들과 함께 촬영한 결혼식 사진과 소주, 맥주 1병씩을 정성스럽게 챙겼습니다.

"종성이는 맥주, 준영이는 소주를 좋아했습니다. 항상 마음의 한구석에 있던 동생들에게 결혼을 신고하고, 평소 좋아했던 술 한잔을 건네려고 합니다" 홍씨는 그러면서 "결혼을 앞두고 예비 신부에게 가슴 아픈 사연을 털어놓고 신혼여행을 가자고 제안했는데 산악인도 아니면서 선뜻 따라나선 아내에게 너무 감사하고, 미안하다"고 덧붙였습니다.

당시 원정대장을 맡았던 박연수(52)씨는 "직지원정대는 항상 가슴 한쪽에 실종된 대원 2명을 품고 살아가고 있다"며 "늦은 나이에 결혼한 정표가 준영이와 종성를 보러 안나푸르나로 신혼여행을 가겠다는 말을 듣고 가슴이 먹먹했다"고 말합니다.

지난달 30일 네팔에 도착한 홍씨는 모레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도착해 안나푸르나를 지키고 있는 두 동생들과 3년 만에 재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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